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Jun 05. 2023

나를 일으키고 그녀를 붙잡고 1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운명이 던져주는 질곡에 매여 다시는 사람답게 살 수 없을 거라 믿던 때가 있었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의 세월 지나도록 살아오면서 운명이 내게 던져주는 크고 작은 부침은 겪을 만큼 겪으며 살. 그 부침들로 인해 건강을 잃고 돈을 잃으며 그리고 엇보다 중요하다 여기던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배신하고 떠나가는 가슴 아픈 을 겪으며 내가 노력하고 헌신한다고 해서 그것 전부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며 살아온 세월기도 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notforeverhappy


https://brunch.co.kr/brunchbook/oska0109


내게 큰 병이 생겨 나 자신을 잃게 되고 평생 헌신했던 남편과 가족들이 나를 외면했다는 큰 상처로 인해 죽음으로 내몰렸던 사건 이후로 나는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죽음과 같은 시간을 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를 밀어낸 다른 가족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 시간에 대한 미련과 처를 벗어 버릴 수 없어 깊은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렸고 해리성 장애로 인한 기억상실과 인격장애로 나 자신을 망칠 뻔 한 수많은 위기를 겪어야 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loveisnotmarry


다행히도 태어나면서부터 생김새가 그는지 자라면서 그렇게 변했는지 몰라 난 내가 가진 것들을 남들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덕분에 내가 진심으로 대한만큼 내 곁엔 항상 좋은 사람들이 많다.

지금도 많은 지인들이 아픈 나를 응원하고 낫기를 기도해 주고 있다. 그 덕분에 지옥 같은 고통을 껴안고 이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남들에게 이럴진대 가족에겐 오죽했을까.

가족들에게 헌신적으로 살았던 건 내 성격이 워낙 베풀고 나누길 좋아했던 탓도 있었지만 삼 남매 중에 둘째로 자라며 나 스스로 살 길을 찾았던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색을 내고 싶은 마음도, 보답을 바랐던 적도 결코 없었다.(남에게도 바란 적 없고요)

오직 한 가지 내가 힘이 들고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나를 도와줄 든든한 아군이 돼줄 거라는 변치 않는 믿음은 언제나 확고했었다.

하지만 족들은 그 믿음을 보기 좋게 배신했고 그 사실로 인해 내 병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지나 저절로 사람들이 걸러졌다. 정성을 들이고 나와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진작에 멀어져 갔고 반드시 나를 지켜 줄거라 믿었던 가족들 조차 병을 앓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게서 멀어져 갔다. 오히려 가깝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나를 지키기도 했으며 그런 중에도 나를 지켰던 (그리고 지금도 지키는) 사람들은 내가 어떤 어려움에 빠지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내 곁을 굳게 지켜 주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된 세월이었다. 그리고 내 삶의 방식의 옳고 그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중요한 turning point 가 되었다.




브런치엔 여러 가지 사연들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일을 소재 삼아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 인생의 밑바닥 경험하고 있는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나 역시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각자가 겪은 난은 모두 본인 스스로에겐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고 불행이 된다. 그것을 어떻게 떨치고 이겨내느냐가 그 사람의 역사가 되고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은 것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은 또 다른 미래를 꿈꿀 자격이 주어지는 거라고 믿다.


그녀를 알게 된 건 2021년 4월 어 날 브런치에 올려진 격적인 글을 읽은 후였다. 

브런치에 올려진 여러 가지 힘들고 불행한 사연들 중에 내가 겪고 있는 고통 외에 내 심장이 발 밑으로 떨어지는듯한 느낌을 받은 글은  작가님의 글이 처음이었다.

처음 올라온 글은 달필도 아니었고 정제된 글도 아니었다.

놀라고 혼란스러우며 고통스러운 마음에 날것 그대로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낸 상처 투성이의 글이었다. 이 글을 읽으며 심장이 떨어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던 건 누구든 당장 노력하지 않으면 작가님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던 탓인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탓인지 작가님의 글에는 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하지만 난 아무런 댓글을 달지 못한 채 업로드되는 글들을 조용히 읽어 가고만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큰 상처를 견디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겪어 봐서 아는데...' 또는, '그 마음이 어떨지 짐작하는데...' 식의 섣부른 위로와 격려를 가장한 충고? 는 오히려 이 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떤 놀라운 일이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에겐 무뎌지게 마련이다. 구독자의 숫자는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당장 눈앞의 자신들의 문제에 눌려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갔다.

그때쯤이었다.

나 역시 아직도 내가 가진 문제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채 여러 가지 병들로 인해 고통에 짓눌려 하루도 편한 삶을 살고 있지 못했지만 병을 얻으며 통째로 부정당했던 내 삶의 방식, 측은지심을 가지고 내 사랑과 정을 나누며 살았던 마음이 잘못된 방법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은 그녀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녀 옆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하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반드시 그녀를 붙잡아 주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매일 나 자신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 수시로 불안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시시때때로 죽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가 어려워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죽음보다 두려운 CRPS 돌발통에 시달리며 구토와 이명, 시력 저하를 동반하는 지독한 두통과 싸우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절을 반복하는 내가 글을 올린 작가님을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답장이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