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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ul 05. 2024

15년 동안 찐 살이 1년 만에 빠졌다

구덥같던 시간의 무게를 벗어버렸다

처음 희귀 난치 병인 베체트를 진단받았을 때 3차 의료 기관인 삼성 서울병원으로 전원을 하기 전까지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아 복용했다. 삼성 서울 병원에서 재검과 재진단을 하기 전까지 베체트가 아닌 류머티즘 관절염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의 가장 큰 부작용 중 하나는 중증가와 부종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진단받은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비롯해 난치성 혈관 두통, 그리고  섬유 근육 통증을 다스리려 먹는 마약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 부작용으로 몸은 점점 부어가기 시작했고 붓기는 고스란히 몸무게로 자리 잡다. 1년에 분기마다 입원해서 받던 Wash out도 초기 몇 년 동안은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며 진행을 했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보며 병원에선 그제야 리도카인으로 변경을 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 해서 이미 찐 살 빠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베체트가 악화될 때마다 일시적으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있다.


처음 몇 해는 겨울엔 살이 찌고 여름엔 빠져(원래의 몸무게에 못 미치긴 하더라도) 옷으로 잘 커버하면 내가 살이 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 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먹는 의 개수가 늘어가며, 새로운 병이 한 가지씩 생길 때마다 몸무게는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무게를 갱신해 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입던 옷들을 못 입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XL 사이즈의 고무줄 허리 바지도 터질 듯해 간신히 입고 나면 숨 한번 마음 놓고 쉴 수 없었다. 원피스를 사도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자루 같은 옷을 입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이 쪄서 항상 옷이 터지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비단 옷뿐만이 아니었다.

딸을 임신했을 때에도 트지 않았던 살이 온 데가 미어지고 터져 보기 흉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팔다리가 쭉쭉 빠지고 팔등신의 예쁜 몸매는 결단코 아니었지만 S 사이즈의 옷만 입던 내게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것만 같이 변한 내 모습은 그나마 가진 자존감 마저 박살 내 버리기에 충분했다.

키가 159.8cm인데 최고로 정점을 찍은 몸무게는 77.62kg이었으니 팔, 다리만 조금 몸에 오그려 붙이면 그 자체로 굴러 다니는 인간 공이라 말할 수 있었다.


발목이 부러지고 수술 후에 crps진단을 받고 어쩌면 평생을 휠체어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될 거란 말을 들었을 땐 걷지 못하게 된 나도 말할 것 없이 불행했지만 이렇게 무거운 날 휠체어에 앉히고 온갖 진료를 함께 보러 다녀야 하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평생 나을 수 없다는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깟 외모가 무슨 대수냐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달라져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진 생경한 나를 바라보는 일은 서글픔을 넘어 참담이 되었다. 내가 살이 쪄 뚱뚱해지기 전부터 이미 그렇긴 했지만 병이 심해지고 몸무게가 완전히 자리 잡고 나자 남편은 내게 따뜻한 손길 한 번, 눈길 한 번을 건네지 않았다. 어느샌가 난 여자도 아내도 아닌 그저 늙고 뚱뚱한 환자에 불과 해져 버렸다. 


예쁘다고 말할 순 없는 얼굴이지만 촌스럽게 생기지 않았고, 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태를 낼 수 있을 만큼 센스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항상 주변에 좋은 사람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 나였다. 가진 걸 자랑하지 않았고 함께 나누며 사는 걸 기쁨으로 생각했으며 사랑이 많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삶이, 인생이, 사랑하고 믿었던 남편이 빅 엿을 먹였고 온갖 병들과 그 병들로 인해 찐 살들에 갇혀 꼼작 없이 집 안에 갇히고 말았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찐 살은 어떤 방법을 써도 꿈적하지 않았다.




남편과의 갈등이 더 이상 내가 참는 문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때가 작년 중순 무렵이었다. 남편은 집에 돌아와 인상을 쓰지 않는 순간이 없었고 어떤 말을 꺼내도 시비조로 얘기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모든 걸 망친 건 본인인데 그걸 인정할 용기도, 책임감도 없으면서 똥 싼 놈이 성을 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남편이 퇴근하기만 하면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신체반응이 동반된 공황발작이 밥 먹듯 일어났고 어쩌다 돌발통 중에 공황이 함께 오기라도 하면 그날 그 시간 그 자리가 바로 지옥이 됐다.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날 이어도 남편이 퇴근하는 순간 먹 있던 밥부터 먹기 싫어질 만큼 모든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의 숨소리, 냄새, 웃음소리, 목소리...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고 이를 악물어 멘털을 붙잡으려 해도 아픈 몸은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무게는 변치 않게 75~77kg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더라도 음식을 많이 먹어 찐 살이 아니다.

독한 약을 먹는 내가 입맛이 없어 잘 먹지 않는 것에 안달이 난 딸이 온갖 것을 들이밀어도 잘 먹지 다. 원체도 하루에 많이 먹어야 두 끼. 아니면 한 끼. 오히려 한 끼만 먹는 날이 훨씬 많았다.

런데 작년 5월 말이 지난 후 어느 날부터 철옹성 같기만 하던 몸무게가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 몇 개월은 하룻밤 사이에 1~2kg이 넘게 빠지는 날도 많았다. 앓고 있는 병들 외에 특별히 다른 증세를 느낀 것도 아니다.(사실 지극히 주관적인 주장입니다. 지금 혈액으로 할 수 있는 암 검사와 갑상선 검사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몸무게가 계속 빠지기 시작하자 기록을 위해 디지털 체중계로 교체를 하였다. 그래서 기록은 10월부터 남겨 놓았고 혹시 몰라 몇 장 사진으로도 남겨 놓았다.


15년 동안 차근차근 살이 쪄 77kg이 넘던 몸무게가 1년 사이에 50kg까지 빠져 버렸다. 대략 27kg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아이 한 명의 몸무게가 내게서 빠져나간 것이다. 그것도 1년 만에. 운동이나 식이 조절 따위 전혀 없이!!

역시 다이어트엔 맘고생이 최고인 것 같다.


사실 몸무게가 빠진 것이 악재인지 호재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53살의 50kg과 35살의 50kg은 다르다. 내가 꾸준히 운동을 해서 세세하게 쪼개진 말근육을 가진 아프지 않은 53살이었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여전히 잘 먹지 못하는 상태에서 단기간에 빠져버린 몸무게이기 때문에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온몸에 탄력이 없이 주글거린다. 너무나 볼품없고 심하게 말라 보여 오히려 체중을 올리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허수아비에 사람가죽을 걸쳐 놓은 것 같다...


좋은 점이라면 뚱뚱해져서 못 입고 있던 나의 작고 예쁜, 좋은 옷들을 다시 입을 수 있게 됐다는 것과 나이가 들어 자연스레 잡힌 주름 외에 동안으로 보이는 얼굴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점이라면 너무 짧은 시간 안에 운동 없이 급격하게 살이 빠지는 바람에 심각하게 체력이 떨어졌다는 걸 느낀다. 운동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들로 여의치 않은 상태라는 게 문제다.


하지만 한 가지,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던 구덥같던 시간과 끝없이 이어지던 불행의 무게가 그 살과 함께 빠져나간 것이라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내게 오는 어떤 변화도 운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그 시작으로 나쁘지 않은 변화라고 믿고 싶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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