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는 여전히끝을 알지 못하고 빠지고있다. 딸지니역시죽고 싶은 마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괴로워한다.
만약에내가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남편이 처음 바람을 피웠던 당시에 바로 이혼을 했더라면... 만약에남편의 모든 잘못들을 그냥눈 감아 주지 않았더라면...미처 기억나지 않는 모든 만약에가 내게 뼈가 시린 실책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진작에 모든 일들이 이렇게 되도록 두지않았을 텐데.
하루에 단 한순간도 통증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런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조차 버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한동안 이 모든 일에 끝이 있기는 할까 싶은 마음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정말 죽어 없어져 버리는 것 말곤 방법이 없는 건가. 안 그래도 매일 죽도록 심하게 아픈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열면 희한하게 목이 막히고 눈물부터 쏟아져 내렸다.
내가 집 밖으로 혼자 나다닐 수 없어진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베체트에 걸리고 나서부터는 병원도 혼자 다니기 어려울 만큼 체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 탓도 있지만 CRPS와 혈관성 두통, 섬유 근육통, 자율 신경 기능 이상으로 혼자서는 절대 외출하면 안 되는 환자로 변한 건 10년을 가뿐히 넘겨 버렸다.
내가 앓고 있는 병들로 인해 생기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한다.하지만그나마도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던 다리로 걷게 된 것만도 천운이라 생각한다.
내가 외출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다고 해서 나만 괜찮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자신도 희귀 난치병에 걸려 있으면서 나를 돌보는 딸 지니의 컨디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다는 건 무엇이됐든 좋아하고 사랑하는것들을 위해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 어느새 신라호텔을 가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궁금하신 분들께 간략하게 설명을 해 보자면올봄 즈음에 메이커스와 신라호텔이 협력하여 더 파크뷰 조식 2인,더 이그제큐티브라운지2인, 석식 or룸서비스모두 20만 원 무료 이용권과 더불어 천만 원짜리 방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이벤트가 있었다. 제세공과금까지 주최 측이 모두 부담하는, 말 그대로 '영원한 주말'을 보낼 수 있는 이벤트였다.
조건은 가장 기억에 남는 휴가에 대해 댓글로 작성하면 되는 것이었다.
댓글을 남겨 신청을 하고 정말 까맣게 잊고 지냈던 발표날이 지나고서야 내가 당첨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당첨이 됐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확인했을 때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사실 댓글을 쓰면서도 내가 당첨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하지만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내게 기회가 생겨 당첨이 된다면 눈만 뜨면 더 깊고어두운 불행들이 연이어덮쳐들던 내게 드디어 눈에 띄는 좋은 일이 일어나기시작했다고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와 지니, 그리고 백일이 지나면서부터 우리 집으로 매일 출퇴근을 한 조카딸과 조카 손녀까지. 네 사람이 오랜만의 호캉스 나들이에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과 걱정들을 잠시라도 모두 내려놓기로 작심했다. 현실은 다 집에 놔두고 여행을 떠나듯 가볍고 행복한 마음만 가져가기로 약속했다.
우린 이벤트의 취지에 맞게 육퇴후 마실 맛있는 와인 2병과 안주가 될 과일들, 우육포, 컵라면을 준비하고 1박을 하러 가면서도 일주일은 지내다 올 것 같은 짐을 싸서 호텔로 출발했다. 호텔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즐기고 부족한 것은 알아서 채워 천만 원 보다 더한 휴식과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지니가 조카 손녀를 안고 모교인 동국대학교를 바라보고 있어요.
조카딸과 함께 찍은 사진 입니다.
룸의 거실 일부와 다이닝 룸 사진 이에요.
동국대학교 전경 입니다.
퀸 사이즈 보다 더 큰 침대가 있는 침실과 침실 사이즈 만한 욕실, 그리고 넓은 거실과 식탁이 놓여 있는 다이닝 룸까지. 우리 넷이 하룻밤을 실컷 뛰고 굴러 다녀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좋은 방과 서비스였다.
조카딸이 손녀의 늦은 점심을 챙겨주는 동안 나와 지니는 이그제큐티브 라운지에서 티와 간단한 스낵을 즐겼고 저녁은 모두 룸 서비스로 주문해 가져간 와인과 함께 맛있게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