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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un 28. 2024

아빠를 증오하는 딸

함께 살래? 함께 죽을래?  

남편 자기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집에서 나간 후 곧바로 주소 이전을 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 자신의 개인 회생 신청 절차를 준비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식구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던 지니는 아픈 엄마와 자신을 두고 오로지 스스로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아빠의 몰염치함과 극단으로 치닫은 개인주의적인 모습에 치를 떨었다. 그것으로 자신이 아빠를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명징.


사실 지니가 아빠를 증오하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된 일이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될 무렵부터 내가 아무리 덮어주고 감추려 해도 아이의 눈으로 보기에도 아빠의 행동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친정 가족 함께 가까이 살면서 또,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외갓집에서 자라며 예의범절을 중요시 여기고 엄하게 키운 딸아이의 눈으로 보기에 아빠의 행동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남편이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전에 없이 날카롭고 버릇없게 구는 아이를 내가 훈육하기 시작하자 아이는 아빠와 소통을 단절해 버렸다.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아빠 때문에 행여나 스스로가 바깥에서 실수하지 않을까 싶었던 딸 고육지책 이었다.


부모라고 해서 자녀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모두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이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혼란을 줄 뿐이다. 하지만 못난 부모도 부모라 여기며 반항 없이 살아야 했던 세대의 나에 딸의 모습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부모도 인간 인지라 모두 완벽한 모습을 이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부모의 마음과 사랑을 알아챈다. 그래서 남편의 노력과 부재가 더욱 안타까웠고 남편이 조금만 노력했다면 딸이 아빠를 증오하는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고 가슴 아프게도 그런 행복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모도 아이를 기르며 함께 성장한다. 기만 했다고 다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남편은 내가 참아주고 덮어주며 그렇게도 지키고 싶던 우리 가정을, 그렇게 오랜 시간과 노력들을 무참하게 망가뜨려 버다. 설마 정말로 자신의 살길만 찾으며 딸을 돌보지 않을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받는 도움과 사랑은 당연한 것이고 베풀어야 하는 사랑은 자신의 구미들어맞는 사람 이어야만 했던 걸까? 남편은 교회에서 안수집사의 직분을 맡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교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의료 봉사를 나가는데 그 봉사단의 단장이다. 그곳에서 베푸는 사랑이 너무나 값지고 귀해 교회에 나가 앉아 있을 만큼의 체력도 되지 못해 유튜브로 예배를 보는 나보다 자신이 훨씬 고귀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는 게 아닐까? 자신의  아픈 자녀와 아내는 내팽개쳐버리고 의료 봉사단장으로서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주님이 보시기에 어떤 믿음과 사랑이 더 커 보이시는지 진심을 다해 고 싶다. 남편이 우리에게 말하던 사랑은 항상 남편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던 여러 가지 헛된 약속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남편은 자신의 개인 회생 절차를 진행시키면서 지니에 뜻밖의 것을 요구했다.

마 인감증명서 하고 공인 인증서 좀 챙겨줘. 그거 있으면 서류 준비를 빨리 할 수 있대. 아빠 회생 신청을 빨리 해야 네 것도 도와줄 수 있지.

남편은 모르는 게 한 가지가 있다. 지니가 나를 간병하 10년간 사랑스럽고 여리기만 하던 딸에서 투사  있다는 사실을.

딸은 지독하게 아픈 나를 간병하며 내게 닥쳤던 모든 일들을 나를 대신해서 처리를 해왔던 것이다.

남편은 내가 베체트와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기타 20여 가지의 합병증으로 사람의 삶이라 볼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내게 개인 회생신청을 하라 말하곤 전혀 도와주지 않았고 맨 정신이 아닌 채로 걷지도 못하고 수시로 기절하는 날 휠체어 태 데리고 다니며 모든 걸 해낸 사람이 지니였다는 걸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인감증명서하고 공인 인증서가 왜 필요한데? 필요한 서류 있으면 나한테 얘기. 얘기하기만 하바로 보내줄게. 어디서 대리해서 준비하는지 모르지만 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엄마걸 보내줘야 하는지 모르겠네. 그걸로 뭘 하려고 하는데? 구렁이처럼 대충 눙치고 넘어갈 생각 말고 제대로 얘기해.

아... 하긴 뭘 해. 서류 빨리 준비해서 빨리 진행시키려고 그러지. 무슨 딴 뜻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러고는 남편 개인회생을 맡은 법무의 실장이 전화를 바꾸더니 목소리를 높이며

아니, 가족이 곤경에 빠져서 힘들어하는데 그깟 서류 좀 보내 주는 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협조를 안 해 줍니까? 가족이 힘들어하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구는 집은 처음 봤네. 이거 안 주면 돈 한 푼 못 받고 고생하는 건 그쪽이라고요.

 큰소리를 쳐댔다. 필요한 서류를 제때  제공하겠다고 말했음에도 다른 이를 통해 가족을 협박하 이가 남편이었다.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남편은 그 후로도 인감증명서와 공인 인증서 얘기를 몇 차례 더 했고 참고 참던 내가 결국엔 이유를 물어보게 됐다. 그 이유가 걸작이었다.

사실 사업자 명의를 당신으로 바꾸려고 그랬어.

미쳤구나. 그런 큰 일을 상의안 하고 멋대로 결정하고 인감증명서랑 공인 인증서를 먼저 달라고 한 거야? 당신 진짜 답이 없는 인간이다... 그리고 나 당신이 개인 회생 시켜 놓은 거 다 갚지도 못했어. 그거 어떻게 갚는지, 어떻게 됐는지 한  물어보지 않았잖아. 지금 8회 차 연체 중이야. 언제 폐지 예정 통지서 날아올지 모르는데 어떻게 새로 사업자를 만들어? 그리고 당신이 또 나 몰라라 하면 난 그냥 끝인데 여기서 어떻게 더 끝일 수 있어?

아냐! 방법이 있대. 조금 편법 이긴 하지만. 내 개인 회생 해주는 법무사가 도와줄 수 있대. 사업체는 살려놔야 돈을 벌지!!

기가 막혔다.

난 아직도 하루에 침대 밖으로 나와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고작 5~6시간뿐이다. 그리고 그 마저도 통증이 없는 순간이 없. 이런 몸으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 막막하다 못해 두려움에 떨며 매일 심한 신체 반응이 있는 공황 발작을 겪고 있는 환자이다. 그럼에도 남편은 날 이용해 먹지 못해 안달이 나있다.

남편이 그런 인간인 줄 모르지 않았는데 왜 매번 이렇게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픈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죽고 싶어 하던 지니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정말 들었다. 사실 그 마음을 다 돌려놨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나 역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같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과 닥쳐올 미래가 모두 우리에게 불리했다. 남편이 집을 나간 후에 경제적인 모든 어려움들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지니에게 덮쳐 들었다. 아이는 무엇부터 정리해야 할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고 10년이 넘도록 병석에만 누워있던 나도 바보 같기는 마찬 가지였다.

가진 것은 얼마 고 해결해야 할 것은 산더미였다.

하지만 아이가 흔들린다고 해서, 내가 바보같이 느껴진다고 해서 모든 걸 한 순간에 내려놓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난 지니의 엄마이고 콩이와 리아의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누구도 우릴 도와줄 수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지난 10년간 몸으로 체득. 그래서 오히려 지니에게 현실적으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니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마음 변하지 않았지? 너하고 나하고 죽으면 남은 걸로 빚잔치 하면 딱 맞을 것 같아.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거고. 네가 그렇게 힘들면 그냥 포기해도 뭐라 안 할게. 대신에 엄마하고 같이 가. 엄마  없으면 어차피 살 수 없으니까 먼저 보내고 애 끓일 것 없이 같이 가.

엄마 미안해.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어. 감당 못 할 것 같아. 어떤 아빠가 자식을 버려? 그것도 아픈 자식을? 한 번도 제대로 관심도 안 주고 치료비도 외갓집서 다 해주고... 아빠가 등급이 안 돼서 내 이름으로 대출받은 건데 어떤 20대가 시작도 하기 전에 파산부터 하냐고! 그냥 마음이 무너지고 내가 아빠랑 같은 성씨인 것조차 치가 떨려. 아빠가 먼저 우릴 버린 거면서 온 데다가 자기가 버림받은 거라고 떠들어대고... 엄마 아플 때도 내내 남처럼 굴어서 사람 미치게 만들더니. 내가 악착 같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 지니야. 엄마도 너도 서로 없으면 못 사니까 그렇게 하자. 방법은 많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에  해 끼치지 않게 죽자. 그리고 지니야. 제일 중요한 얘기 한 가지를 해야 돼. 콩이랑 리아 어쩔 거야? 콩이는 이미 너무 늙은 데다 병까지 있어서 우리가 두고 가면 100% 안락사될 거야. 엄마가 화장실만 가도 두리번거리면서 찾아다니는 아인데 다만 며칠이라도 어떻게 남의 손에 있다가 죽게 해? 우리가 데리고 가야지. 그리고 리아는 너무 예뻐서 다른 집에 입양 보낼 수 있겠지만 언니 어디 가서 안 오나 내내 궁금해하겠지? 자기가 뭘 잘못해서 버림받았나 생각하면서(실제로 유기견들이 버려지면 자신의 잘못으로 버려졌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너 기다릴 거고. 콩이는 엄마가 데리고 갈 수 있으니까 리아는 네가 결정해. 어떻게 할래? 너 리아 죽일 자신 있어?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 보내고 갈 수 있겠어?

리아 얘기를 꺼내자마자 그때까지 잘 참으며 얘기하던 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딸과 함께 나를 돌보던 콩이가 내 껌딱지가 돼버린 후, 마음 둘 곳 없던 딸이 분양되지 못하고 도로 농장으로 돌아가게 된 강아지를 데리고 와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다 주며 기른 강아지가 리아였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데려온 첫사랑 콩이나 자신이 힘든 순간에 웃음을 잃지 않게 해 준 존재인 리아를 생각하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딸은 다시 한번 힘을 내보자는 내 말에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앞으로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시간보다 힘들고 고단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미 시작도 전에 한풀 꺾여 힘들어하는 딸에게 말해 주었다. 세상에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저 엄마만 믿으며 살아보라고 말해주었다. 예전처럼 엄마가 너의 완전한 믿음이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말을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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