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Jun 21. 2024

엄마, 나 도저히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지니가 함께 죽자고 말했다

남편은 항상 말했다. 

자신은 진심으로 딸을 사랑한다고. 지니를 위해선 못할 짓이 없다고.

하지만 그는 아이가 크는 동안 한 번도 아이가 몇 학년인지, 친구가 몇 명인지, 친한 친구의 이름이 무엇인지, 담임선생님이 좋은 분 인지 궁금해하지도, 알려하지도 않았다. 딸아이의 고민이 무엇인지, 아이가 행복한지 아닌지,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남편은 그 모든 것들 전혀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때 사랑하는 상대방의 모든 것들을 궁금해하지 않을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남편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그럴듯하게 모양새 갖춘 가족을 만든 후엔 사랑하는 가족에게 가져야 할 사랑과 책임, 의무 같은 것들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다. 나와 지니가 자신의 장식품도, 전리품도 아니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방해받지 않길 원했고 자신의 필요만이 중요했으며 잘못된 모든 일을 내 잘못이라고 떠넘겨 버리는 이기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한없이 못나고 부족한 인간이다. (도대체 10년이 훌쩍 넘도록 병석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무슨 재주로 사업을 망쳤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남편이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기만 바랐던 것 결코 이루어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결혼 생활 중에 수도 없는 크고 작은 다툼 후에도 내가 먼저 다시 손을 내밀었던 건 망가진 부부 관계를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니에게 조금이나마 정상적인 부모의 역할을 주고 싶었던 내 희망이고 최후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지니가 MS(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은 후에도 아이의 상태나 치료 방향에 대한 조금의 관심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얼마나 아픈지에 대한 걱정과 염려, 재발했을 경우의 위험성, 희귀 난치 병을 진단받은 후에도 변함없이 엄마를 간병해야 하는 아이의 막막한 마음과 힘듦 따위에도 일절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이의 MS가 재발해 응급실을 찾아가고 응급실을 통해 바로 입원을 해야 되는 상황에도 아이는 홀로 모든 것을 해내야 만 했다. 엄마인 나마저 심하게 아픈 몸 때문에 아이를 도울 수 없었다. 지니가 아파진 이후부터 내 몸이 아픈 것이 천형같이 느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남편은 딸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잊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지독하게 아픈 엄마에게 냉정하도록 무심하게 구는 아빠에게 이미  대로 질려버린 지니는 재발을 할 때마다 아빠와 함께 병원에 가라는 내 말을 단칼에 거절하며 말다.

엄마. 운전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정말 조심해서 갈게. 나 없는 며칠 동안 엄마 챙겨 줄 사람 없어서 큰 걱정이다. 약은 며칠 분 묶어 놨으니까 그거 순서대로 먹고 밥은 냉장고에서 꺼내 데워 먹기만 하면 돼. 약 독하니까 나 없다고 굻으면 절대 안 돼. 나 없을 때 기절하면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까 침대에 얌전히 있고. 금방 다녀올게. 회복해서 돌아올게. 걱정하지 말고 있어.

오히려 혼자 있을 나를 걱정하는 지니의 말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던 나는 말을 이을 수도 없을 만큼 울 수밖에 없었다. 울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그런 순간엔 유독 눈물 멈추지 않는다.


지니 MS(다발성 경화증)는 이미 뇌에 백색질의 병변이 상당히 퍼진 중기 이상의 상태에서 발견다. 상당한 기간 동안 매일 자신의 다리와 배에 자가 주사를 놓으며 치료를 이어가던 아이에게 다시 새로운 병변이 생겼고 더 이상 1차 치료제의 효과가 없다고 판단이 됐을 무렵 남편은 또 한 번 아이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남편이 집을 나가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개인 회생 신청을 서두른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니의 카드 일부 역시 생활비에 함께 사용을 하고 있었고 남은 여윳돈도 넉넉하지 않아 불안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자신만 챙길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신이 개인 회생을 해버리면 남은 모든 것들의 뒤처리를 아이가 해야 한다는 걸 잘 아는 남편이 그런 식으로 행동할 거란 걸 예측하지 못한 내 실수였다. 하여간 무엇을 상상하던 그걸 뛰어넘는 인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니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결제 대금이나 상환 일등이 다가오며 아이를 크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내가 남편에게 얘기를 하려 해도 집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앙심을 품은 남편은 내 연락은 받지 않았고, 지니의 연락을 받아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변명뿐이었다.

아빠가 돈이 어디 있어. 없으니까 개인 회생 신청한 거지. 조금만 기다려. 아빠 거 정리되면 네 거 도와줄게. 아빠가 가장인데 아빠가 살아야 다 같이 살지.

아빠! 그럼 그동안 나는? 아빠가 살 동안 나는? 내가 그 돈 나 꾸미고 놀러 다니는데 쓴 거야? 아빠 혼자 힘들어해서 보탠 돈인데 아빠 혼자 살 동안 아빠도 견디기 힘들어했던 연체 독촉받으면서 어떻게 살라고? 정신 놓을 만큼 아픈 엄마한테도 그러더니 이번엔 나야? 나 재발한 것도 모른 체하더니. 그냥 나 돕지 마. 끝까지 모른 척해.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던 일로 세상의 냉정하고 쌀쌀맞은 조리돌림을 처음 겪어 보는 딸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많이 힘들어했다. 아무리 엄마인 내가 끝까지 네 힘이 되어 줄 거라고 거듭 약속을 해도 지니가 볼 때 하루에 몇 시간도 깨어있지 못하는 엄마를 전적으로 의지하긴 어려웠으리라. 거기에 믿든 믿지 않든 자신을 낳아준 아빠의 배신은 뼈가 저리고 온몸의 피가 식다 못해 얼음이 되는 것 같은 고통이 됐을 거란 사실 말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빠와 얘기를 나눈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지니누워있던 나를 찾아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도저히 살아갈 용기가 나질 않아. 지난 10년 동안 엄마를 지키면서 죽을힘을 다했는데...

이제 그만하고 싶어. 더 이상은 못 할 것 같아. 그래서 죽으려고. 엄마만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서 얘기하는 거야. 나하고 같이 갈?

지니가 하는 얘기를 들으며 억장이 무너졌다.

지니가 무너져가고 있다. 

무너져 가는 지니를 붙잡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 지니야. 같이 가자. 엄마가 같이 가줄게. 어디든 너 혼자 보내지 않을게. 그 대신 절대로 말없이 혼자서 먼저 가버리긴 없기야. 알았지?

덜덜 떠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었다. 사랑하는 내 딸이 너무 가여워 울며 결심했다.


지니야. 이번엔 엄마가 너를 지켜줄게!!




To be continue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