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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Jun 14. 2024

너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거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

친정을 다녀온 날 수면제를 먹고 쓰러지듯 누워 밤새 끙끙거리는  소리에 몇 번이나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는지 모른다. 결국 다음날 늦은 오후가 되도록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벌떡 일으킨 건 친정에서 온 전화 한 통이었다.


병든 홀어머니에 외딸을 누가 거들떠보기나 할 줄 알아? 지니  결혼 안돼. 못해! 할머니가 상대 집이라도 너 같은 조건이라면 싫다고 할 거야. 결혼 못 해. 그리고 지금 네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엄마 병간호한다고 집에만 있던 네가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을 같니? 경력도 스펙도 없는 네가 어디 취직이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지금 네가 할 일은 아빠한테 없는 애교 라도 부리고, 아빠하고 엄마 사이에서 중간 역할 잘해가지고 이혼한다는 못하게 아야지. 할머니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친정 엄마가 지니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으셨다.




나는 나의 부모님을 어떤 들이라고 여기며 살았던 걸까.

나쁜 의도가 없다는 것, 아이에게 현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건넨 말이었다는 걸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귀 난치 병으로 스스로를 잃어가던 엄마를 지키기 위해, 갖은 고난과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딘 아이에게 할 말이 아니라는 명약관화하다. 지니가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는지는 지니를 간병하게 만든 그 주체인 나 조차도 다 알지 못한다. 그만큼 아이에겐 힘들고 아픈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아이는 지금 현재 누구보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다.(그리고 아이는 이미 취업을 했습니^^)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가 자식이든, 손녀든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 절대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건 사랑도 아니고 염려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이고 정서학대이다.

지니는 이번 일로 또다시 깊은 상처를 받았다.


학교를 다니며 나를 간병하고 아빠 회사일을 도우며 집안 살림을 하는 동안 지니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도움을 주었던 가족은 한 사람도 없었다. 자세한 내용을 설명할 수도 없게 화를 내시며 연락을 두절하다시피 하셨던 부모님과 친정 가족들은 지니가 MS가 발병되어 눈이 보이지 않고 편마비가 오는 사태가 생기고 나서야 다시 내게 기회? 를 주셨다. 병원에 있는 지니를 만나러 오신 엄마가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라 말씀하셨고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에 놀라 휠체어에 앉아 기절을 밥 먹듯 하고 있던 나는 터질 듯한 마음을 부여잡고 잘못을 구했었다. 그때에도 이사 당일에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이유를 물어보신 것이 아니라 그저 잘못했다고 말하라고만 하셨다. 그리고 그대로 지니는 나를 간병하며 자신의 병까지 함께 투병해야 했다.

지니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후 가족들은 여전히 나는 투명인간 취급을 하며 지니를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도 지니를 도와주지는 않았다. 지니 홀로 견뎌내야 했다.

그 모든 것들이 지니에겐 상처가 됐다. 자라면서 봐오던 모든 것들 부정당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챙겨 주는 것으로 자기 면피에만 신경 쓰며 엄마를 버린 외가 식구들에게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엄마를 버린 외가 식구나, 자신과 엄마를 버린 아빠나 뭐가 다를까 모르겠다고 말다.

 



나와 다른 생각과 표현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틀리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나 근거 없는 확신을 설파한다면 그 의도가 상대에게 바르게 닿을 수 있을까?

친정 엄마가 지니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건 처음이지만 지난 10년간 내가 상처받은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예전 같았다면 분통이 터져 눈물을 쏟아가며 며칠 밤낮을 이 생각에만 매달려 힘들어했을 나지만 지금은 그 생각조차 사치다. 다시는 누구도 지니에게 그런 모진 말을 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할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모른다고 할 만큼 몰염치한 인간은 아니다. 친정 부모님이 지금껏 내게 어떤 마음으로 헌신해 주셨는지 모르지 않는다. 부모님 역시 내가 지니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셨을 거란걸 잘 알고 있다. 부모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두 분의 부단한 노력으로 자식들에게 베풀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으셨다. 강남에 자리를 잡고 우리 세 남매의 시작 역시 모두 같은 곳에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무엇보다 지니의 교육을 위해서라도 절대 살던 곳을 떠나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었었는데... 남편의 사업으로 인해 모든 게 틀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 없었다면 훨씬 더 힘들고 고단한 세월을 살았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고 내가 찾아가지 못하고, 찾아가고 싶지 않았을 때에도 지니로 하여금 매주 찾아가 뵙도록 했다.


아프기 전에 난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K-장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태어나 인지하고 있 순간부터 항상 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부모님의 손발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랑스러운 딸이 되길 바라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남편이 저지른 잘못으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가족 중 누구라도, 부모님 중 어느 한 만이라도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줬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이 되진 않았을까 수없이 생각했지만 이젠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crps의 고통과 남편의 거짓말로 무너져 달라 보이는 내게 아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화만 냈던 가족들 부모님. 이렇게 아프고 힘든 내게 더 참고 이해하라고 지난 일들도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그들. 이미 우리를 버린 남편을 다시 붙잡고 매달려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들.

내게 더 이상 그들은 가족이 아니다.


그리고 난 부모님께 내 이혼에 대한 허락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다.  이상 다른 오해와 억측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남편과 헤어지게 된 사실을 말씀드리 간 것이다.

한때는 나를 힘들게 한 모든 일들, 내게 상처를 준 가족들... 그들도 언젠가는 내가 겪은 만큼의 고통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이젠 모두 상관없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 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게 가족은 오로지 지니 하나뿐이다.(누나와 함께 저를 간호하던 늙은 강아지 콩이말괄량이 막내 리아도 있습니다^^)

내 남은 가족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난 못할 짓이 없는 가장이고 엄마이다. 내가 미움과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고 원한다.


그리고 한 가지, 하고 싶은 말 살다 보면 알게 되지만 인생은 부메랑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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