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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y 31. 2024

온 가족이 모두 신용 불량자가 됐다

사업만을 주장하던 남편의 무능함

세상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나 평생을 함께 할 인연을 만난다는 것 정말 어렵고 신비로운 일이. 하지만 그렇게 만나 부부로 맺어진 인연을 끊어야 한다는 것 생살을 도려내는 것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럽다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남편 나를 개인 회생 시고 종국에는 딸까지 모른 척한 체 자신만이 살길을 찾겠다고 집을 나갔다. 모양새는 우리가 남편을 쫓아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를 진작에 버린 건 남편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요목조목 하나부터 열까지 다 꺼내어 따지고 잘잘못을 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나간 일은 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우리 부부의 사사로운 인연을 정리하려 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입을 피해를 모른 척한다는 것이 두려워 어떻게 말문을 꺼내야 할지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했었는지 자세히 밝히지 않아도 대충 짐작할 수 있도록 얘기해보려 한다.




남편은 처음에 내 명의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것도 친정아버지의 돈을 빌려서. 친정아버진 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당신이 생각하시기에 그럴만한 상황이라 여겨지면 내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도움주셨지만 돌려드리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가져온 돈은 단돈 10만 원이라도 원금을 챙기시는 분이셨다.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말하는 남편을 처음부터 말렸다. 개나 소나 사업으로 성공할 것 같았으면 세상에 넘치고 넘쳐나는 게 성공한 사장님들뿐이었겠지. 그리고 남편은 사업을 할만한 재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려도 하겠다는 남편에게 사업자금은 어쩔 거냐고 물었더니 대뜸 처가에 얘기하자는 말부터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속이 뒤집어졌었다. (친정집 재벌  아닙니다. 혼자 자수성가하셔서 노후 걱정 안 하실 정도예요. 처가가 조폐공사도 아니고 처갓집돈이 조조군사도 아니고...) 리고 말려도 소용없는 남편에게 아버지께 돈을 얻으려면 사업에 대한 계획서부터 제대로 만들라고 말해줬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주시는 친정아버지께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던 남편은 결국에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 한 장 준비하지 않고 돈을 받아냈고 돌려드리겠다는 약속도 결국 지키지 않았다.


남편에게 회계는 맡기는 곳이 있으니 회사 관련 일은  모두 당신이 제대로 해내야 한다고 얘기했다. 난 그때 이미 베체트를 앓고 있었고, 지니의 수험생 생활도 끝나지 않았으며 아직도 동생의 아이인 조카를 돌봐주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남편은 손사래를 치며 자기는 죽어도 못한다고 굳이 아픈 내게 회사와 관련된 업무를 모두 떠 넘겼다. 

원래 있던 거래처가 있었기 때문에 시작은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큰 구멍이 있었다. 우리에게 입금되는 수입이 전부 우리 것이 아니었다. 반만 우리 것인데 분기별 세금과 각종 세금은 우리에게 입금되는 총액으로 계산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의 맹점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문제없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자 당연히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벌어오는 건 한정적이고 수금의 반은 도로 빠져나가고 세금은 두배로 내고 있고 기타 등등 내야 할 돈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남편은 처음 수금된 돈만 생각하고 골프 연습장에 골프 여행에... 남편에게 상황의 부조리함을 설명해도 이해를 못 하겠다는 멍청한 말만 되풀이했다. 

난 당신이 하는 말 잘 이해가 안 돼. 많이 들어올 때 좀 모아뒀다가 수금이 적게 들어오면 모아둔 돈을 쓰면 되잖아.

수금이 많아지면 분기마다 내야 하는 세금 기타 등등도 많이 내게 되는데 무슨 수로 돈을 모은다는 건지... 남편 말대로 하려면 거래처를 더 늘야 했고 총입금액에서 빠져나가는 금액을 줄이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기초적인 흐름조차 이해 못 하는 사람하고 얘기하고 있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한동안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으로 메꿔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곧 한계에 다다랐다. 대출을 받거나 다른 사람의 돈을 잠시 빌리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순간들이 다가왔다. 더 이상 견디다 못한 내가 어느 날 남편을 불러 얘기했다.

지니아빠. 내가 처음 시작할 때도 말했지만 이렇게 더 유지 못해. 이렇게 힘들어질 줄 알고 나한테 맡긴 거잖아. 부족하면 어떻게든 메꿀 줄 알고. 나 못하겠으니까 당신이 해.

이제 와서 당신이 못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 난 회사 경리나 경비처리 하나도 모르는데.

그러면 나는 알아? 내가 은행원이었지, 경리였어? 아프기만 해도 죽을 지경인데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르겠어. 너무 지쳤어.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여러 번 설명해 줬잖아. 아픈데도 불구하고 내가 애쓰는 거 안 보여? 편히 마음을 가져도 나을지 말지 모르는 병을 앓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더 혹사당해야 내 말 귀담아 들어줄 건데!

아유. 난 몰라. 아무리 알려줘도 모르겠어. 난 못하겠으니까 당신 맘대로 해.

남편 특유의 배 째라는 반응이었다.

사실 동생과 사이가 벌어진 것도 매 번 돈을 빌려야 하는 내 상황과 돈을 빌려주면서도 한 번도 편치 않게 굴었던 동생에 대한 내 마음, 그리고 그런 상황에는 관심이 조금도 없으면서 30년이 넘도록 살던 곳에서 이사 나오던 날 나 모르게 살던 집에 대해 담보 대출을 받았던 것을 비밀로 하고 이사 당일 날 이사 대금을 맞춰놓지 않아 친정 가족들이 내게 등을 돌리게 만든 남편의 만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사랑만으로 하는 게 아니더라

https://brunch.co.kr/@oska010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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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엔 상황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남편은 내게 개인 회생을 하라는 말을 전했다. 내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켜 버린 것이다.

자살 사고를 내고 일주일 만에 살아 돌아온 지 두 달이 넘지 않았던 때였다.

매일 몇 번씩 찾아오는 죽을 것만 같은 crps 돌발통과 해리성 기억상실로 어제와 오늘, 방금 전의 일도 제대로 기억 못 하고 수십 번을 같은 질문을 해대던 나였다. 그나마 돌발통이 잠잠한 순간엔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아지고 눈이 안보이며 누군가 귀에 음악을 틀어 놓은 듯한 이명에 시달렸고 자율신경 실조증의 증상으로 하루에도 예닐곱 번씩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기절했다.

뇌진탕으로, 뼈에 금이 가서, crps통증으로 모르핀을 맞으러 응급실을 제집처럼 들락거려야 했다. 이렇게 망가진 나를 휠체어에 싣고 주민센터며 병원이며, 법원으로 데리고 다니며 서류를 준비하고 나를 도운 건 오직 딸 지니뿐이었다.

개인회생을 하라고 말한 후 진척 상황을 묻거나, 아픈 내가 고생하는 것을 안타깝다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사람이 남편이란 사람이다.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모른 척할 뿐이었다.

개인회생을 하게 된 건 모두 나 때문이라고 남편은 얘기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 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을 만큼 제정신이 아닌 때였다.


나를 개인회생시킨 후에 남편은 자신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사업을 이어갔다. 더 이상 내가 돈 관리는커녕 몸 관리, 정신 관리도 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남편에게 집의 경제권을 넘겨주려고 마음먹었다.

그 지경 까지도 내가 돈 관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또 한 번 자신의 의무를 저버렸다. 자신은 죽어도 못하겠으니 휴학까지 하며 망가져 버린 엄마를 살리려 애쓰는 딸에게 살림과 회사일을 던져버린 것이었다. 딸 역시 MS(다발성경화증)로 매일 자신의 배와 허벅지에 자가 주사를 놓 투병하며 나를 간병하는 중이었다. 재발에, 재발에, 재발을 거듭하며 엄마를 간병하는 아이에게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재발하여 홀로 응급실을 찾아가 입원하는 아이를 따라가 챙겨주는 법 없이 나와 아이는 그렇게 그 시간들을 견뎌냈다.


그리고 몇 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자신의 상황도 어려워졌다며 딸에게 모든 짐을 맡겨 버린 체 자신의 개인 회생을 진행시켰다. 항상 부족하고 모자란 돈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카드를 만들어 생활비에 보태던 딸의 상황을 무시하고는

내가 살아야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지. 지니야, 넌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해결되면 도와줄게.

집을 나간 남편의 일방적인 통보에 연체 독촉에 시달리던 딸의 병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렇게 우릴 버렸다.


내가 살아야 우리 가족을 살릴 수 있지...? 그것은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나쁜 새끼야!!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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