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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May 10. 2024

그래 그만하면 인정할게 당신은 골프가 지병이다 지병!

이사하는 날 골프를 치러 가버린 남편

지난 브런치 북  '결혼, 사랑으로만 하는 게 아니더라 2'에서도 골프에 대한 일화를 얘기했던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oska0109/154


사실 남편은 접대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단순히 이벤트로 넘어가지 못할 만한 일들을 여러 가지 저질렀지만 남편은 자신이 특별히 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주위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빠져드는 경향이 짙었다. 그중에 골프가 가장 심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칠일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골프를 치러 가는 사람이니 말해 무엇하랴!

골프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에요. 우선순위를 모르는 남편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얘기입니다.


남편의 직업은 대부분의 개인 사업자들이 그렇듯 영업직이다. 집에서와 달리 바깥에서 보이는 남편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친절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며 사교적이고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 그런 사람다. 디서나 쉽게 어울리고 겉으로 보기에 한없이 편안해 보이는 사람. 결혼 전에 내게 보여줬던 모습, 그러 결혼 이후 단 한 번도 내게 보여주려 딱히 애쓰지 않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본모습이 어떤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친정아버지의 배려(능력)로 결혼 후에 같은 동네에 함께 살며 남편을 매일 보다시피 한 친정 가족들도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 외도를 했던 남편의 잘못을 덮기로 한 후부터 부부간의 신뢰나 사랑은 비록 되돌릴 수 없다 해도 딸에게 부모의 존재를 남겨주기 위해선 가족들에게도 남편의 거짓된 모습묵인하기로 작정했던 내 잘못 때문 이기도 했다.

하지만 함께 일을 해보거나 깊은 얘기를 나눠 본 사람 중에 간혹 남편의 본모습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처음 함께 교회를 다닐 때 낯가림을 하며 똑 부러지듯 행동하는 나와 아무 하고나 잘 어울리며 열심히 일하는 듯 보이는 남편을 두고 내가 남편을 잘 만난 것이라 얘기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얘기를 하는 것을 들으며 천성을 완전히 감출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회사의 영업부에도 거래처를 만나 계약을 따내려다 보면 피치 못한 접대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남편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수많은 접대로 돈이 필요했고, 많은 술을 마셨다. 그런 것쯤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는데 감내하지 않고서야 무슨 방법이 있었을까.

그리고 마침내 골프로 접대하는 시기가 왔다.

처음엔 연습장에서 배우기 시작해 매달 연습장에 들어가는 비용만 백만 원이 넘어가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실력이 붙은 후에도 남편은 연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남편이 그렇게 바깥으로 도는 동안 아픈 나 자신을 케어하고 사춘기 아이를 돌보며 아이의 입시를 준비하는 것은 모두 내 몫이 되었다.

골프를 치는 것이 가정과 우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면 내게 이렇게 상처로 남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남편이 '적당히'라는 선을 지켰다면 지금 이런 글을 쓰게 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이의 학원비와 과외비가 모자라 쩔쩔매는 나를 바라보며

능력이 안되면 분수껏 살아야지. 돈이 없으면 과외시킬 거 학원 보내고, 학원 보낼 돈 안되면 인강 듣고. 남들 하는 데로 다 어떻게 따라 하면서 사냐?

애타하는 내게 남편은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였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그 정도의 분수로도 못살게 만든 것이 본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기적이고 멍청한 인간. 그러면서 자기는 어쩔 수 없이 접대를 위해 해야 한다는 듯이 동남아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수  없이 골프 여행을 다다. 친목 모임이란 핑계로 골프를 치고 자신이 모임을 만들어 또 치고...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프로 선수라는 여자와 사진을 찍어 카톡 프사에 올려놓고 집안이 어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희희낙락 골프만 치고 돌아다녔다. 남편은 골프에 미친 인간다.


아이의 입시를 위한 과외비와 학원비는 첫 번째 희귀 난치 병인 베체트를 앓고 있던 내가 조카를 돌봐주며 번 돈으로 해결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하던 날은 새벽부터 부슬비가 내렸다. 비가 오기 2~3일 전부터 항상 심하게 아픈 몸이지만 그날은 진통제를 계속 먹어가며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다. 몇 달 전부터 정해진 이삿날이었는데... 남편이 골프를 치러 가버렸다. 으득으득 이가 갈리고 몸의 통증은 말할 것도 없으며 난치성 혈관 두통이 심해져 죽을힘을 다해 버텨도 신물이 넘어오도록 구역질을 해대는 나를 바라보며, 내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딸을 생각해 억지로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짐을 빼고, 부동산에서 마무리를 하고, 다시 짐을 올리고, 주민센터를 다녀오고, 관리사무소를 다녀와 내가 잠시라도 누울 곳을 만들어 주느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아픈 딸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딸아이 역시 힘든 내색을 감췄다.

새벽같이 골프를 치러 가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돌아온 남편은 미안하다는 소리 한마디 없이 자기 방 만 정리하고 잠들어 버렸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남편이 정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어디가 잘못된 건지는 의사만이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 자신이 망가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내가 남편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남편과 떨어져 지내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이혼인지 별거인지 형식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남편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기억하고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예 기억에 없다고 주장한다.

기억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억의 왜곡을 바로 잡는 일이 생겼다.

회사를 다니던 남편은 결국에 친정아버지에게 손을 벌려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잘 나가는 듯해 보였던 사업을 흔든 건 바로 골프였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접대였다.


그놈의 접대가, 남편의 지병인  망할 놈의 골프가 우리 집이 망하게 되는 지름길 이끌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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