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나루 May 17. 2024

이렇게 아플 거면 차라리 죽을병에나 걸리지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이 죽을 때까지 겪어야 한다는 공포

결혼하기 전에는 몸이 약하긴 했지만 특별히 아픈 곳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비록 입이 짧기는 했어도 먹는 것을 가리지 않기도 했지만 약한 체력임에도 무엇이든 악착같이, 완벽하게 해내려 애쓰는 나를 보시며  걱정하신 친정 부모님께서 철이 바뀔 때마다 몸에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해다가  먹이셨기 때문이다. 한약은 기본이었고, 어느 해 여름엔 아버지께서 아침마다 작은 병에 담긴 약을 건네주시며 마시라고 했던 약이 있었다. 내용물이 궁금해 아무리 여쭤봐도 무엇으로 만든 약인지를 알려주지 않으셨고 너무 궁금했던 난 약을 꺼내 오시던 안방 베란다에 가서 약을 찾아내 큰 박스 안에 들어 있는 작은 박스를 찾아 마침내 설명서를  수 있구나 하는 승리감잠시 마음이 부풀었지만, 역시 아버진 치밀하셨다. 내가 찾아볼 것을 염려해 작은 박스 안의 설명서를 일일이 꺼내어 버리신 것이다. (아무튼 전 쓰레기통까지 뒤져 그 약의 성분이 뭔지 알게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 약의 성분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뭐가 됐든 체력이 약한 딸을 걱정해서 챙겨주신 약이니까요)

결혼하고 내가 희귀 난치병에 걸린 후에는 귀한 산삼까지 구해다 주시며 내가 낫기만을 바라셨다.




내 병은 남편의 외도로 인한 깊은 우울증과 갑상선 항진증, 그리고 갑상선 항진증의 증상 중 하나인 부정맥 두 가지로 시작됐다. 

남편이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그런 일을 쉽게 받아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할까? 게다가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고 있을 당시 내게 그 일을 들켰을

나한테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당신이 알게 될 줄 알았어.

하!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데?

거기까진 생각 안 해 봤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내 억장이 무너지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랬으니 그 난리가 나고도 몇 달이나 훌쩍 더 지난 후에야 쉽게 떨어지지 않는 그 여자를 해결해 달라, 내게 애원을 하며 매달리고 부탁할 만큼 몰염치하게 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그 여자를 남편에게서 떼어내 주었다. 그리고 회사로 전화를 해대며 남편을 찾던 그 여자의 행동 때문에 남편의 외도를 모두 알고 있던 남편 부서의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려 대접하며 웃음 띈 얼굴로 얘기를 했다.

ㅂㅂ씨가 바람피우는 거 다 아셨으면서 어쩌면 아무도 저한테 귀띔을 안 해 주셨어요. 다들 저희 결혼식도 오시고 집들이도 오셨으면서...^^. 다음에 이런 일 또 생기면 저 그냥 있지 않을 거예요. 호호호.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가세요. 양주 한 병 딸까요?

내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제대로 못 알아들은 건 오직 남편뿐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한 번만 이라도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남편을 포함한 윗사람들도 '품위유지의무'위반과 그에 대한 관리 소홀로 회사에 투서를 넣을 각오를 마음에 새겼다.




외도를 눈감아 주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남편은 아무렇지 않아 지고 나만 지옥 속에 살기 시작했다. 어쩌다 말다툼 중에 그 얘기가 나오면 지나간 얘기 그만 좀 하라고 언제까지 그 얘기를 할 거냐며 오히려 적하장식으로 짜증을 부리듯 얘기했다. 아이 앞에서 남편의 허물을 들추지 않으려 노력하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은 내가 약자라도 되는 양 착각하기 시작했고 남편 스스로 더욱 당당해져 갔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난 용서하지도 잊지도 못하 병들어 다.

남편이 마음이 담긴 제대로 된 사과를 했다면 지금처럼 내가 온갖 병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커져  갔다. 교회를 다니며 잠시 진정된 것 같던 몸에 베체트라는 희귀 난치병이 생기면서 급격하게 컨디션이 다운되기 시작했고 오른쪽 어깨의 회전근개 파열 때문에 했던 수술 이후에 오른 팔이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판정을 받게 되면서 내가 견디며 살던 세상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Wash Out을 위한 입원을 앞두고 준비 용품을 챙기던 욕실에서 미끄러져 부러진 발목 역시 수술 후에 CRPS 판정을 받게 되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앓고 있던 만성 두통은 CRPS 통증을 겪으며 난치성 두통으로 변해 버렸다. 난치성으로 변한 두통은 안면통으로까지 번져 통증이 심한 날엔 누군가에게 계속 심하게 뺨을 얻어맞는 느낌에 얼굴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아다. 여러 가지 중증 질환을 앓으며 몸의 균형이 무너져 자율신경실조증이 생기면서 추워서 떨면서도 선풍기를 쐬야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오한에 몸부림다. 시시때때로 장소를 불문하고 실신을 반복해 하루에 대 여섯 번이 넘도록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지만 딸인 지니는 혼자서 나를 침대로 끌어다 옮겨 눕혀 놓고 남편은 찬 바닥에 이불 한 장 덮어 주는 법 없이 그냥 깨어날 때까지 두는 날이 허다했다.


처음에는 나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생경하고 무지막지한,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통증에 적응할 수가 없어 무섭고 두려움에 떠는 것이 고작이었다. 돌발통이 찾아오는 시간 동안 울며 비명을 지르고 몸을 뒤틀고 땀범벅이 되어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봤지만 한 번 찾아온 통증은 극한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끝나는 법이 없었다.


내게 투병은 가능한 겉으론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미칠 듯 다가든 통증이 흉측한 형상을 한 체 광포한 이빨을 드러내고 내 살과 뼈를 찢고 부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언제나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심한 고통을 겪어도 또,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차마 알지 못할 여러 가지 복잡한 몸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웃기 위해 애썼고 나만 바라보고 있는 딸과 콩이(누나를 도와 엄마를 간병하는 강아지 아들, 푸들), 리아(철부지 막내 강아지, 비숑)를 위해 망가진 마음과 정신을 되돌리고 붙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이 고통이 차라리 끝이 보이는 길이었다면.

언제까지만 고생하면 된다는 시한이 정해진 고통이라면.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며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다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병이라면... CRPS 통증은 이제 신경 한 줄기, 줄기마다 생생하게 아픔을 전하고 난치성 두통은 머리가 아픈 걸 넘어서 안면통으로 번져 커다란 손으로 따귀를 연거푸 맞고 있는 것처럼 아프고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언제 기절할지 몰라 조금만 컨디션이 나빠도 나는 여전히 이라는 감옥에 갇힌 집순이를 면하지 못한다.


내 병의 모든 원인이 남편이 아닐 수는 있다.

남편은 이렇게 심하게 아픈 모습의 나를 보며 10년이 넘는 세월을 지냈다. 6년쯤 지났을 무렵 한 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남편이 말했다.

자주 실신 하고요, 실신하고 나면 꼭 통증이 생겨요.

남편의 인터뷰는 완전히 엉터리였다.

실신의 증상은 자율신경 실조증 때문이고 통증이 생기는 건 CRPS(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 때문인데 CRPS 발생 원인은 기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멍청하고 잔인하며 이기적인 인간!!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이런 병을  심지어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편으로 인해 얻은 이 고통스러운 병을 무엇 때문에 견디는 건지. 무슨 좋은 꼴을 보자고 내게 이런 참담한 병이 생긴 건지.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남편을 바라보며, 내게 생긴 모든 병이 그저 잘못된 선택의 대가라 여기기엔 제대로 천천히 풀어야만 하는 실타래 같은 문제를 가위로 싹둑 잘라놓은 것만 같아 뒷맛은 여전히 개운치 않은 상태이다.


차라리 죽을 날이 정해진 병이라면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죽도록 아픈 고통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지금이 내겐 형벌 그 자체이다. 잘못은 남편이 저질렀는데 왜 내가 벌을 받아야 하는지 어디에 물어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다. 그 사실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To be continued...

이전 05화 그래 그만하면 인정할게 당신은 골프가 지병이다 지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