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마음(2023.10)
곰곰이 생각해 보니, 52년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은 ‘나는 괜찮아’였다.
부모님을 걱정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애쓸 때, 실수 한 번에 무너진 자존감을 감추려 할 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지쳐갈 때도 나는 늘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남편의 외도로 마음이 무너졌을 때조차, 그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을 때조차, 나는 결국 또 그 말을 꺼냈다.
나는 괜찮아.
나만 참으면, 나만 괜찮다고 생각하고 일을 키우지 않으면, 아주 잘 살았다고는 못 해도 그럭저럭 평범하게 살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은 마법처럼 작용했다. 어디서든 인정받았고, 부족함 없는 삶과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인연들이 내 곁에 남았다.
나는 스스로 실수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열이면 열 가지를 다 완벽하게 해내려 발버둥 치며 살았다.
그러기 위해선 언제나 ‘나는 괜찮아’야 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를 악물고 잘 해내려 애썼는지, 이제 와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짙게 남는다.
진심으로 내가 ‘괜찮다’고 느낀 순간이 과연 있었던가.
내 마음을 먼저 챙기고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희귀 난치 질환인 베체트를 진단받고 투병을 시작했을 때조차 그랬다.
내가 정말 이렇게 아픈 것이 맞을까?
혹시 아프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는 건 아닐까?
내가 느끼는 이 통증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끝없이 나 자신을 의심하며, 아픈 몸보다 먼저 마음을 들볶았다.
돌이켜 보면, 단 한순간도 상처받고 지쳐 있는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일에 내 마음만을 생각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부족한 내가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받고,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너무 컸던 탓이리라.
난 전력을 다해서 나를 제외한, 내가 속한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중요한 것들이 차고 넘쳤지만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을 얻고 난 후에 내게서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로 인해 받은 상처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나를 망가뜨려 버렸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나를 버린 사람은 남편과 친정식구들이었다.
그리고 난 더 이상 괜찮을 수 없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고 죽는 것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나루야, 네가 힘들면 너만 생각해. 네 마음이 어떤지만 생각해.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 사람이 네 인생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울고 싶으면 울어.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열 가지라고 생각되면 그중 한두 가지만 잘해도 그건 이미 성공한 인생이야.
누가 뭐라 하겠니. 남의 눈 신경 쓸 거 없어.
사람들은 원래 남의 일에 크게 관심 없어.
열 가지를 다 잘 해내려 하니까 병이 생기고, 그 마음이 지쳐버리는 거야.
넌 이미 너무 잘해왔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야.
아프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리고 마음 편히 먹는 것. 그것만 잘해도 지금은 100점이야.
그리고 나루야,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린 사람이잖아. 어떻게 항상 괜찮을 수 있겠어.
괜찮지 않을 때는 서로 기대고, 위로하며 살면 되지.
언니가 언제든 옆에 있을게.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우리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자.
결혼하기 전, 같은 직장에서 만나 누구보다 깊은 우정을 나누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의 곁을 지켜온 언니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의 참된 의미를.
그건 결국,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내가 내 마음을 먼저 돌아보고 다독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운명이 던져준 삶의 기로에서 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둠으로 한 없이 곤두박질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딸과 함께 겪으며, 딸에게 말이나 책으로는 알려주기 힘든 삶의 지혜를 부모인 내가 함께 하는 가운데 알려줄 수 있었다는 사실도 큰 위로가 되고 있다.
그리고 30년을 함께한 보물 같은 우리 언니, 양여사와 자식을 함께 나누며(언니 큰 딸을 제 첫 조카로 삼고 손주를 낳아 2년간 매주 찾아와 큰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백일 지나고 1년 동안은 매일 왔고요) 또 다른 행복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나는 한참 동안은 괜찮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병으로 인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이 나를 놓지 않고 있고, 남편과의 관계와 친정 엄마와의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내야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젠 견딜 수 있는 한 가지 힘이 내게 더 생겼음을 믿고 천천히 기다리려고 한다.
나는 이제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