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끈을 조용히 내려놓고 말했다(2022.12)
수면제를 먹고도 하얗게 밤을 지새워 멍한 가운데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두통을 느끼고 있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6과 10을 가리킬 무렵이 되면 내가 누워 있는 안방 천장 위로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듯, 쿠당 하며 둔탁한 소리가 천장과 벽을 타고 크게 울린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에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들어온 윗집이 내고 있는 층간 소음이다.
처음 들려오는 그 큰 소리를 필두로 잠시 후부턴 온통 집안을 뛰어다니는 아이의 발 망치 소리와 그 아이를 쫓아다니며 출근 준비를 하는 어른들의 배려 없는 발소리, 화장실을 타고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 부모들의 고함소리... 흡사 학대를 의심할 만한 무시무시한 소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온 집안을 울리는 층간 소음에 수면제를 먹고도 하얗게 밤을 지새운 나는, 뒷골을 타고 올라와 왼쪽 눈을 감기게 하고 안면통을 일으키는 두통의 통증지수가 금세 8에서 10을 뛰어넘어 버린다. 그리고 두통에 질세라 어느새 다른 통증들도 기지개를 켜며 오늘도 험난한 하루가 될 것임을 예고하기 시작한다.
견디는 일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나는, 또 하루를 버텨내야 한다.
우리의 삶의 공간이 아파트나 빌라, 연립, 혹은 오피스텔 같은 공동주택의 형태로 많이 변하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층간 소음의 문제를 피하고자 나 역시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사실 지니를 낳기 전, 남편과 둘이 살 때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른 두 사람이 서로 조심하자고 말을 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딸이 태어나고 난 후였다.
아이들은 걷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능숙하게 걸음을 옮긴다고 느껴지는 찰나, 그때부터는 날 듯이 뛰어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이후부턴 아무리 많은 어른들의 눈이 아이를 쫓고 바라보아도, 아이가 어느새 시야를 벗어나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활달했던 딸아이도 바깥 활동 중에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아찔한 순간을 여러 번 겪은 뒤로는, 자연스럽게 ‘안전이 최우선'인 외출을 선호하게 되었다.
밖에서도 이런데, 하물며 집 안에서는 오죽했을까.
딸이 아이를 낳자마자 온 집안 바닥에 두꺼운 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층간소음 방지를 위해 두툼한 슬리퍼를 신긴 뒤, 남편과 아이에게는 주문처럼 말했다.
*집 안에서는 뛰면 안 돼.
*문은 손으로 끝까지 잡고 살살 닫아.
*의자는 끌지 말고 들어서 옮겨.
*잘 시간엔 돌아다니면 안 돼.
*집에서는 항상 발레 하듯 걸어 다녀.
그 잔소리들은 어느새 노랫가락처럼 입에 붙었고, 다행히 아이가 자라는 동안 큰 문제없이 이웃과 잘 지낼 수 있었다. 동네가 함께 기르던 그 시절, 아이를 배려해 주던 이웃들의 마음이 늘 고마웠다.
나 역시 이웃을 생각하며 웬만한 소음은 감수했고, 그 감사함을 마음 깊이 새기며 나누며 살았다.
배려는 멀리서 오는 게 아니라, 바로 내 발끝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그렇게 평생을 조심하며 산다고 애썼던 나 역시, 아파트 생활 중에 인생 최대의 ‘역대급 층간소음 빌런’을 겪게 되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 빌런과 층간소음 문제로 마찰을 빚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릴 적엔 얼마간의 배려와 양보, 그리고 조금의 조심성만 있다면 이웃 간 문제쯤은 얼마든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요즘의 층간소음 문제는 단순히 말다툼을 넘어, 사람의 마음이 상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런 세상 속에서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각박하게 느껴졌다.
그 일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기 바로 전, 그러니까 약 3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 나는 꼬박 2년 동안 그 층간소음 빌런에게 시달리며 살았다.
그 집으로 이사하던 때만 해도, 내가 앓고 있는 여러 병의 증세가 가장 심했던 시기였다.
기절하는 일도 잦았고, 팔과 다리에 생기는 CRPS로 인한 돌발 통증 때문에 응급실을 찾거나 구급차를 부르는 일도 여전히 잦았다.
불면증 또한 극심해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대부분의 병이 그렇듯, 내가 가진 모든 병의 증상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고, 특히 저녁이 되면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런 이유로 내 방의 이삿짐을 제대로 정리하는 데만 6개월이 넘게 걸렸다.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진 채로, 잠을 청하려 애써도 눈은 좀처럼 감기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잠을 포기하듯, 미뤄두었던 책을 꺼내 읽거나 OTT 서비스로 영화를 보며 시간을 견뎠다.
그 무렵, 이사 오기 약 3개월 전부터는 ‘브런치’에 도전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투병 생활 속에서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고,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나를 회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아직 ‘노력’이라 부르기에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심해진 코로나 전염병으로 외출마저 줄어들면서, 점점 누워 지내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때의 나는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 있었고, 단지 ‘하루를 무사히 넘기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은 이사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가 돼서야 일어났다.
이삿짐을 정리하며 나온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온 남편이 쪽지 한 장을 가지고 들어왔다.
나갈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현관문에 붙어 있던 쪽지를 들어오는 길에 발견해 가지고 들어온 것이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0 0 0호에 사는 사람입니다.
어제 이사를 오신 것 같은데 우선 환영합니다.
쪽지를 남긴 이유를 짧게 말씀드릴게요.
어제는 이사하신 날이라 별 얘기 없이 넘어갔습니다만, 늦은 시간까지 너무 시끄럽고 큰 소음들로 밤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제가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라 밤 10시 이후로는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소음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사 나오기 전까지 쪽지를 보관해 놓았었고 이사 나오면서 쪽지의 내용을 옮겨 적어 놓았습니다)
이삿날의 정신없음에 미처 조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불편함을 느꼈을 아랫집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들로 인해 누군가가 불편을 겪었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남편에게 부탁해 가까운 과일가게에서 귤을 한 박스 사 오라고 부탁했고, 역시 짧은 쪽지 글을 써 아랫집의 현관 앞에 함께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그 쪽지에는 우리 집엔 이미 층간소음 방지용 매트를 깔았으며(강아지 때문에), 식구마다 3cm가 넘는 층간소음 방지용 슬리퍼를 신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덧붙여 놓았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환자가 있어 늦게 까지 잠을 못 자고 기절을 자주하여 119 구급대원 분들께서 자주 오신다는 얘기까지 전하며 양해를 부탁하였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은 원치 않는 순간이었지만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분쟁을 위해 만약의 경우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쪽지 속의 사과와 환자가 있으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쪽지를 주고받은 후 2년간, 없던 불안감마저 생길 만큼 미칠 것 같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무엇을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내 발소리가 크게 들리지는 않을까, 오후 8시 이후에는 당연히 청소기는 돌릴 수 없었고, 밤 10시 이후에는 화장실만 사용해도 난리가 났다. 불면증이 심한 내가 한여름 더위에 지쳐 시원한 물로 바깥 거실 쪽 화장실에서 샤워를 해도(안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면 샤워 시간까지 체크해서 따지고 화를 냈습니다. 아파서 기력이 떨어진 후엔 샤워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든요ㅠ) 물이 흘러가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쪽지와 전화에 불이 날 지경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새벽에 화장실 가는 횟수와 시간까지 세어가며 난리를 쳐댔다. 우리 집으로 연락을 하는 것도 모자라 관리실과 경비실에 전화해 수시로 연락이 오도록 만들었다. 내가 내 집에서 살면서 기본적인 생활조차 못하게 만드는 사람을 처음 겪게 되면서 집안에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경기를 일으키고 불안감에 약을 먹어야만 진정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돼버렸다.
또 어느 날은 우리 집 화장실 변기 물탱크의 물 내려가는 소리가 30분이 이어진다며, 들어보고 얼른 관리사무소에 하자 접수를 신청하라고 성화를 부리기도 했었다. 우리 집 변기 물탱크엔 아무 이상도 없었다.
어른들만 있어 발소리나 뛰는 소리로 층간 소음을 내지 않으니 불면증인 내가 늦은 시간에 화장실을 사용하고 씻는 것을 문제 삼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 문제는 아랫집의 침대 헤드를 다른 벽 쪽으로 돌리기만 했어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오래도록 아픈 나와 나를 돌보는 딸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심각한 불안증세가 생기도록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소름이 끼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배려가 넘치니 당연함을 넘어서 태어날 때부터 장착된 권리인 줄 아나보다. 한 번만 나를 더 건드리면 작신 밟아 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회는 오래지 않아 내게 주어졌다.
2년 간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던 그 집을 떠나며 꼭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일이 그 층간소음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정리하고 떠나지 않는다면 또 분명히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마침 이사 갈 집도 정해지고 어느 날밤 단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해 비몽사몽인 상태일 때였다. 일어나자마자 팔에 생긴 CRPS 돌발통으로 마약 진통제를 복용하며 하늘과 땅이 나를 가운데에 두고 그냥 붙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에 아랫집에서 걸어온 전화벨이 크게 울렸다. 생전 빠릿빠릿함이라곤 1도 없던 남편이 잽싸게 뛰어가 전화를 받으려고 하길래, 통증과 약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내가 크게 소리쳤다.
기다려! 그 전화 죽어도 내가 받을 거야. 옆에서 타이머 맞추고 시간 맞춰 약이나 먹여줘. 놓치지 말고. 알았지?
엄마! 여기 의자에 앉아. 약 내가 챙겨 줄게. 정신 바짝 차려. 기절하면 안 돼.
알았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저 아랫집인데요.
아니 내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됩니까?... 제가 출근을 일찍 해서 돼서 10시면 자려고 누워야 되고요, 6시면 일어나야 되는 사람이에요.
새벽에 3~4시에 그렇게 돌아다니시고 화장실을 몇 번씩 가시고... 잠을 어떻게 자라고 그러는 겁니까? 잠을 자야 출근을 하고 일을 할거 아닙니까? 아니 정상적인 사람이면 대부분 10시, 11시쯤 자서 6시, 7시쯤 일어나서 일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닙니까? 댁처럼 그렇게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거 보세요. 김 ㅇㅇ씨! 정상적인 사람이요? 대부분의 사람이 다 6시에 일어나고 10시에 잔다고요? 아니 그럼 사회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갑니까? 세상에 회사원만 있어요?
아파트엔 회사원만 사나요?
2교대 하시고 3교대 하시고 밤새워 일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김 ㅇㅇ씨 당신이 6시에 일어나고 10시에 잘 수 있는 거야.(이때쯤 뚜껑 날아가 버렸어요. 반말이 시작 됐어요 ㅎ ㅎ) 보아하니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빠닥빠닥 기어오르면서.... 내가 평소에 층간 소음을 냈었나? 시끄럽게 뛰어다니길 했었나? 매트 깔고 슬리퍼 신었잖아. 부러진 발목으로 발레 하듯 걸었잖아. 당신은 매너 없게 담배 빡빡 피워 대면서, 다른 사람은 다 당신 뜻대로 해야 되는 거야? 몸이 불편한 환자가 있다고 몇 번이나 양해 부탁한다고 말했잖아. 어쩌라고. 때려 패서 재워? 못 자는 환자를? 불면증 환자더러 밤새 화장실을 쓰지 말라는 게 말이 돼? 그게 정상이야? 고문이지!
여기가 연립이나 빌라도 아니고, 화장실 벽에서 침대 헤드를 떼 보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다른 벽으로 침대를 돌리던가. 당신은 노력 하나도 안 하면서 어쩌라고 맨날 지랄이야!!!! 당신이 보낸 쪽지, 전화 한 날짜, 시간, 내용 다 보관하고 적어 놨어. 지난주부터 층간소음으로 껄떡거리면 스토킹으로 신고하면 되는 거 알지? 당신 때문에 없던 정신병도 생길 지경이야. 스토킹으로 경찰 조사받으러 다니는 거 회사에서 알면 엄청 좋아하겠다. 너 앞으로 몸조심해라. 알았냐!!!
숨 한 번 크게 쉬지 않고 또박또박 말로 잡아 먹어 버렸다. 평소라면 제대로 못잔 상태에, 약에 취해 어버버 거렸을 단어들을 단 한마디도 절지 않고 내뱉었다.
내 기세에 놀란 아랫집 남자는 대답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곤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 어... 음... 탈칵!
그 남자가 예민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협조적으로 원하는 바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본인의 예민함 만을 내세우며 다른 이의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문제가 생겼을 때 외부에서 원인을 찾기 전에, 아니면 외부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사를 나온 후 그 집엔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이 있는 가족들이 이사를 왔다. 인과응보의 결과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