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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인생 시간표

운명이 던져주는 삶의 고락 간(苦樂間)(2022.11)

by 강나루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에는 눈부신 성공을 꿈꾸지 않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삶을 성실히 마주하는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 노력과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과연 삶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마 '희로애락(喜怒哀樂)' 이라는 말이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

예측 가능한 인생 속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설 자리가 없으니 말이다. 사람은 그저 정해진 궤도를 따라가며 하루를 채워 넣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삶은 모호한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고 어쩌면 우리의 불행은, 삶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인간적인 숨결인지도 모른다.




사람들 대부분은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 유치원을 다니고 학교를 다니며, 비교적 비슷한 출발선에서 인생을 시작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걸 잘 알지만 보편적인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를 기준 삼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각자의 생각과 능력, 목표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인생의 시간표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 완성 됐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성공과 돈, 명예가 인생을 완성시키는 모든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출발이 조금 늦었다 해서, 뒤처졌다 생각을 하며 자신감을 잃을 필요는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에 빨리 내 달리는 것만이 옳은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자신을 가다듬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시간표로 인생을 완성해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과 고통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두 번째 희귀 난치 질환을 선고받고 쓰러졌을 때, 나는 내 인생이 끝났다고 직감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만큼의 힘듦과 또, 그만큼의 행복을 누리며 남은 인생도 그럭저럭 살아갈 거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준비하고 쌓아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들을 겪으며, 내 인생이 나에게 빅 엿을 먹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함께 살아온 남편조차 내 아픔을 남의 일처럼 여겼고, 평생을 함께했던 가족들마저 가장 힘든 순간에 나를 외면했다.
그 사실은 내가 앓는 병보다 더 깊은 절망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북 세 편에 나와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notforeverhappy

https://brunch.co.kr/brunchbook/oska0109

https://brunch.co.kr/brunchbook/loveisnotmarry


이미 베체트와 다른 병들을 앓고 있던 내게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는 치명적이었다.

죽을 것만 같이 아픈 통증을 겪으며 나는 정신도 함께 놓아 버렸고, 삶의 의지를 잃으며 날로 악화되어 가는 내 생명줄을 이 세상에 붙들어 놓은 사람은 하나뿐인 딸 지니였다.

자율신경 실조증까지 겹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나를 두고 의지할 곳도, 의논할 곳도 없이 아이 혼자 모든 걸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려와 한동안은 차마 말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정신이 조금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그 시간에 대한 위로와 사과였다.


사실 투병생활을 하며 무엇보다 가장 내가 견디기 괴로운 것은 아픈 딸이 나를 간병한다는 사실이다.

꿈 많고 재능 많은 자식을 나 때문에 주저앉혔다는 죄책감은 수시로 나를 괴롭혔지만 간병인을 쓰자는 내 말을 아이는 번번이 단호히 거절하며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엄마랑 단둘이 이렇게 시간 보낼 때가 또 있겠어? 엄마가 안 아프면 더 좋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그냥 엄마가 얼른 나으면 돼. 그거면 돼. 그리고 다른 사람 한텐 엄마 못 맡겨! 내가 해야지. 그러니까 엄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사리분별을 못할 만큼 급격히 쇠약해지고 불안정해졌던 난 나를 버렸던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과 여러 가지 병들에 휘둘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딸은 날 지키기 위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포기한 채 매달렸다.

심지어 자신마저 희귀 난치 질환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됐을 때에도 엄마인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살림을 맡고 병원 스케줄을 챙기며 나를 돌보던 지니의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새 지니는 항상 약을 챙기고, 병원을 오가고, 내 상태를 기록하며, 때로는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는 모습이 당연해 보였다.

그 당연한 모습이 말할 수 없이 처연해 보였다.


감당할 수 없던 통증과 남편의 무관심, 가족들의 대한 분노가 쌓여 내 모든 것이 끝이라 여겨져 죽음으로 내몰렸을 때도, 의식을 잃고 요단강을 건너게 된 나를 낚아채 다시 세상으로 돌려놓은 것도 딸 지니의 노력뿐이다.

그 후의 투병 생활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을 오롯이 견디며 나를 지키는 딸에게 항상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함께 느끼고 있다.




나는 안다. 인생의 시간표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의 젊음이 나를 위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항상 마음이 짓눌렸다.

나를 지키고 보살피느라 지니의 20대는 소리도 없이 스러져 가고 있다. 언제가 됐든 자신이 원하는 걸 하기 위한 시간은 주어질 것이라 말하며 딸을 위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 자식의 젊음을 볼모로 내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만 느껴졌던 때도 있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을 포기할 정도로 악화 일로를 달리기만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제대로 생활조차 하지 못하던 나를, 다만 몇 시간이라도 거실의 소파에 나가 앉아 있게 만든 딸의 노력과 사랑에 진심으로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항상 말해주고 있다.

딸의 헌신과 사랑이 아니었다면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모두 하지 못했을 일이다.

나는 매일 딸에게 말한다.
엄마는 네 덕분에 살아있어. 네가 준 사랑만큼 엄마도 너를 더 많이 사랑해 지니야.

지난 7년간의 시간을 다 기억하고도, 다시 옛날로 돌아가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 해도 자신은 변함없이 같은 선택으로 엄마를 살릴 거라 말하는 내 목숨보다 귀한 딸 지니에게 반드시 노력한 만큼, 헌신한 만큼 보상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시간표가 짜여 있을 거라 믿는다.


리고 딸의 인생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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