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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상흔으로 변하지 않는다

상처받던 처음 모습 그대로(2023.07)

by 강나루

베체트라는 희귀 난치 질환을 앓고 있는 중에, 그보다 더 극심한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를 진단을 받으면서 여러 합병증과 정신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렇게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을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스스로의 회복을 가로막는 나의 행동에도 역시 이유가 있었다.
그건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상흔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니면, 상처가 흉터로 변할 만큼의 시간이 아직 충분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8년이면 짧은 세월은 아니다.
처음엔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내 결백을 밝히고 싶었다. 가족들과 시시비비를 가리며 진실을 알리고자 매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집착하고 노력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단순한 이치를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중병에 걸려 더 이상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게 된 나는, 이미 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존재였다.
만약 그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조금의 측은지심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한 부모 밑에서 함께 자라온 인연에 대한 역지사지의 마음이 단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내가 가장 힘들던 그때, 그들은 나를 그렇게 잔인하게 밀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언제나 나와 같을 거라 믿었던 나의 어리석음, 결국 그 믿음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또 한 번 미련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모든 가족들이 그러는 데는 정말 내게 치명적인 잘못이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하는 안타까운 생각.

그러면서 한동안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월들을 복기하며 나 자신을 괴롭혔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소용없는 짓이었다.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단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이 행복해할까'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온 나였다.

나를 낮추고 내 즐거움과 나의 필요를 누른 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하다고 여기며 산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제대로 깨달은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




40년이 넘도록 살던 집에서 이사를 나오던 날이었다. 잔금이 부족했는데도, 남편은 그 사실을 내게 먼저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랬던 이유를 3년이 지난 후에야 들을 수 있었다.

이사 몇 달 전, 몸이 급격히 나빠져 정신이 없던 나에게 남편은 큰 소리를 쳤다.
걱정 마, 내가 확실히 챙길게. 당신은 몸만 신경 써.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그건 그저 말뿐이었다.
이삿날 짐을 모두 뺀 뒤, 친정집에 누워 있던 내게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어떻게 해. 잔금이 6천만 원이나 모자라대.
말 그대로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이사 일주일 전까지 입원해 있을 정도로 통증과 고통에 시달리던 나에게, 남편은 그렇게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부족한 돈을 메워주신 친정 부모님은 내가 남편과 짜고 돈을 뜯어내려 했다고 오해를 하셨다. 그게 아니라고, 수십 번 설명하려 했지만 부모님은 내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남편을 아무리 다그쳐도 그는 끝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작 잘못을 저지른 남편은 입을 다물어버렸고, 나는 한순간에 ‘사기꾼’, ‘도둑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3년 만에 꺼내놓은 대답은 기가 막히기만 했다.
돈이 모자란 다고 하면 네가 해결할 줄 알았어. 그때 이사 할 때 보태라고 아버님이 주신 돈 있었잖아. 그걸로 될 줄 알았지.

하....! 그래 있었지. 그건 말 그대로 집 구하는데 보탰지. 그 돈이랑 잔금 모자란 게 무슨 상관인데? 내가 알고 있는 거랑 금액이 맞지 않으면 미리 얘기했어야지. 내가 서너 달 전부터 수십 번을 물었는데 당신 확실하다고 했잖아.

그럼 결국엔 당신 때문에 난 가족을 잃은 거네?

그나마 실낱같이 유지되던 남편에 대한 신뢰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남편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용서를 빌고 노력을 했더라면,

처음부터 내게 진실을 말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줬더라면,

26년을 기르시고 40년이 훌쩍 넘도록 나를 봐오신 부모님께서 나를 조금만 더 믿어 주셨더라면,

오빠가 오빠보다 먼저 취직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외면한 적 없이 돈이든, 마음이든 필요하다 말하는 걸 거절해 본 적 없는 동생의 투병을 한 번만 이라도 위로해 줬더라면,

하나뿐인 여동생, 처음 3년 부부 싸움 할 때마다 밤낮으로 불러대는 걸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위로했고 11개월 조카 맡아 9년을 길러주고 나보다 공부 잘했다 나부댔어도 너그런 맘으로 사랑했건만 그들은 모두 너무 쉽고 차갑게 나를 버렸다.


아버지는 기억 못 하신다 하지만 내겐 너무 생생했던 모진 말에 난 목숨을 한번 끊었었고, 엄마가 홧김에 한 얘기라 당신은 잊어버렸다는 이 말 때문에 난 다시 한번 기로에 서있다.

너 때문에 지니가 아픈 거야. 네가 그렇게 만든 거야.

엄마가 내게 상처를 주려고, 홧김에 일부러 그런 말을 하셨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지니가 아픈 건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난 모른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잊고 내려놓는 것이 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여기 이렇게 있다. 다만 내가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젠 더 이상 과거에 매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살고 싶은 마음에서다.


흐린 날씨 탓에 온몸이 부서져 내릴 듯 아프고 매 순간이 고통이지만 가족으로 인해 생긴 상처만 할까.


가족이 내게 준 깊은 상처가 어서 빨리 상흔으로 변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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