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확인하니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거짓말을 대하는 나의 자세

by 강나루

남편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 자체가 치밀하지 못했고 얼굴로 감추는 것에 능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무엇이든 나를 속이려 계획하면 계획의 어느 부분이든 허술한 곳이 반드시 있었고 나에게 얘기를 할 때 떨리는 입의 근육, 제 멋대로 움직이는 입꼬리, 불안에 떨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 거짓말은 바로 탄로가 나고는 했다.

그리고 얘기를 해보면 해볼수록 앞뒤가 맞지 않고 다르게 얘기하는 부분이 점점 많아져 종내에는 사실을 토로하고야 말았다.


그 일도 그런 식으로 밝혀졌다.

몇 달간 눈에 띄게 달라진 남편의 태도와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빈 시간의 공백들로 인해 내 의심의 촉이 날카로워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오랜만에 일찍 퇴근을 하고 와서 아이와 거실에서 놀아주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줄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도 남편의 휴대폰을 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마침 안방에 남편의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몇 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잠금이 돼있지 않았던 남편의 휴대폰에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다.

남편이 사용할 만한 번호를 세 번쯤 눌렀는데도 번호는 풀리지 않았고 이제 두 번 정도의 기회가 남았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IMF가 시작되기 넉 달 전에 새 차로 교환하며 팔았던 우리 첫차의 차 넘버를 눌러보기 시작했다.

거짓말 같이 휴대폰의 잠금이 풀리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놀라는 일이 생길 때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너무 무섭고 놀라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면 은 크게 '떡'벌어질진 몰라도 비명소리는 바로 튀어나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때에 우리 친정집은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었다.

그때에 오빠는 군대에 가 있었고 동생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엄마가 부녀회장을 하시던 때였는데 전날 저녁 식사시간에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요즘 새벽 1시쯤 넘어서 아파트 복도에 남자가 돌아다니면서 복도 쪽 방을 여자가 쓰고 있는 집만 들여다보고 이상한 사진을 꽂아놓고 다닌다고 조심하라고 얘기가 나왔어요.

8층엔 아기 낳은 며느리가 와 있는데 한참을 들여다보는 걸 모르고 있다가 너무 놀라서 산후조리도 다 못하고 돌아가고, 9층 여학생은 하도 많이 놀라서 정신과 다니고 혼자서 잠을 못 잔대요.

11층엔 할머니 하고 막내딸하고 둘만 있었는데 그래서 결혼한 아들이 와 있고요.

잡힐 때까지 당분간 조심해야겠어. ㅇㅇ이 혹시 공부하다 그런 일 생기면 너무 놀라지 말고 엄마 아빠 먼저 깨우고. 알았지?"

얘기만 들어도 너무 무섭고 끔찍했지만 설마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길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들은 다음날 새벽 2시가 조금 넘었을까? 창문 단속을 잘하라는 엄마의 말씀을 깜빡 잊고 바깥쪽 창문을 잠그지 않고 닫아놓고 안쪽 간유리로 된 창문만 조금 열어놓은 상태로 정신없이 공부를 하고 있 때였다.

새벽녘의 고요한 침묵을 깨는 작은 소리가 내 정수리 쪽에서 들려왔다.

"탁"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채 닫지 않은 간유리에 사람 모습이 어릿어릿 비치며 바깥쪽 창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입을 크게 벌렸지만 비명 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팔다리에 힘이 쭉 빠져 버렸다.


그러다 문득 뒤에서 이불을 깔고 자고 있는 동생이 생각나 벌떡 일어나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 떨며 손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상태에서 필사적으로 간유리를 닫고 창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힘이 다 풀려버린 다리로 안방까지 간신히 기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 그 남자가 우리 집에도 왔다고 간신히 말하고는 그제야 큰 소리로 목 놓아 울 수 있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야구 방망이를 가지고 그 남자를 잡겠노라 뛰쳐나가셨고 다행히 다른 층에서 다른 집을 엿보고 있던 그 사람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소동 끝에 피해를 본 적 있었던 아파트의 사람들이 다 일어나고 경찰들이 출동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경찰에 넘길 수 있었다.




휴대폰을 보기 전에 이미 마음으로는 어떤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막상 그것을 눈앞에 대면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눈앞이 하얘졌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한번 '훅'들이마셔진 숨은 나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마의 시간을 보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얘기하고 결정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우리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준 남편을 단죄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내가 잘 해낼 수 있기를.

모두에게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to be continue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