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기에 산다-희생과 봉사 정신

남편감으로 내놓아서 누구 신세 또 망치려고

by 강나루

결혼 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툭하면 친정집으로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치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건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 가지였는데 손님들과 트러블이 생기거나 직원들과 의견 차이가 생겨도 내가 내 할 일을 바르게 해 놓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이상에는 시간이 조금 걸리다 뿐이지 잘잘못은 반드시 가려지게 마련이고 잘못을 한쪽이 더 나댄 경우엔 훨씬 대미지가 크다는 걸 알고 있기에 웬만하면 가만히 두고 보는 편이다.


특히 결혼생활은 누군가의 옳고 그름보다 누가 더 많이 배려하고 양보하느냐가 결혼생활이 발전하고 편안해지는 지름길이라는 걸 먼저 결혼한 많은 은행 언니, 선배님들의 가르침 덕에 미리 깨우치고 있던 나는 남편이 너무하다 싶게 잘못한 일은 차라리 시엄마에게 말씀을 드려 경고를 주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봐야 팔은 안으로 굽고, 언발의 오줌누기 정도의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지만 만약 내가 이혼할 작정이 아닌 상태에서 문제가 생긴 걸 친정에 얘기했다가는 불벼락 정도록 조용히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항상 꽉 다문 조가비처럼 아무 일도 없는 듯 행복한 일만 친정에 말씀을 드렸었다.


남편이 를 배신했던 일, 집안에 중요한 일이 생기거나 하면 일의 경중을 무시하고 우선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일부터 중요시하고 모든 일을 나에게 미루었던 것들에 대해 그때 당시 현직에 계시고 힘이 있으셨던 아버지가 아셨다면 린 당장 이혼해야 했을 것이고. 나는 이혼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텐데 아버지의 질책과 아버지 자신이 그런 일들을 막아주지 못하셨다는 자책, 내가 당신의 오점이 됐다는 미움 등... 그런 것들까지 견뎌야 했을 터였다.

그리고 남편은 아마 사회에서 매장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친정아버진 무섭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말로 다할 수 없는 분 이셨기 때문이다.




얼굴이 돌아가고 혀가 말려 입안의 뿌리까지 꼬이며 말려 들어가 당장이라도 혀의 뿌리가 뽑힐 듯이 너무 아파 목소리도 낼 수가 없 상태에서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신히

"엉마. 어굴이 돌아가고 혀가 뽀피커 가타.

빠래 짜듯 도라가며 마려서 혀 부리가 뽀피커 가타. 나 좀 사려저" (엄마, 얼굴이 돌아가고 혀가 뽑힐 것 같아. 빨래 짜듯 돌아가며 말려서 혀뿌리가 뽑힐 것 같아. 나 좀 살려줘)

간신히 말을 마치자 눈물이 쏟아져 더 이상 말을 이을수는 없었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엄마는 이제 겨우 36개월 4살이 된 딸을 전화로 바꾸라 하더니 차분차분 물어보셨.

"할머니, 엄마가 많이 아프대요. 그리고 계속 울어요. 빨리 오세요."

엄마는 정말 총알같이 달려오셨다.

그리고 내 상태를 보시고는 엄마가 잘 아시는 한의원에 데려가셨다.

내 맥을 한참 짚고 있던 한의사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애기 엄아가 아기 키우느라 힘든 건 알겠는데 화가 왜 이렇게 많아요? 처음엔 맥이 너무 약해 죽은 사람인가 했네. 허 허.

뭐가 그렇게 힘들고 참을게 많을까... 침을 놓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어쨌든 얼굴 돌아가는 거랑 혀 말리는 거는 가라앉혀야 되니까 선은 시도를 해봅시다."


몸이 너무 쇠약해져 있고 명치부터 배꼽까지 부근은 손을 댈 수도 없이 아픈 상태여서인지 침을 오래 맞을 수도 뜸을 오래 뜰 수도 없는 상태라 하여 우선은 잠깐의 침 시술로 얼굴이 돌아간 것도 혀가 말린 것도 제자리로 돌릴 수는 있었다.

은행에 전화를 걸어 급하게 하루 병가 처리를 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기야. 난데. 자기 출근하고 나도 출근 준비하는데..."

남편에게 자세히 증상을 설명하고 오늘은 약속이 있더라도 가능하면 일정을 조정하고 일찍 퇴근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남편은 크게 걱정하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퇴근할 테니 걱정 말고 쉬고 있으라고 걱정 섞인 위로의 말을 건네며 전화를 끊었다.


약하게 맞은 침 탓이었을까 얼굴이 돌아가는 것은 진정되었지만 오후가 되자 혀가 말리는 것이 다시 시작됐다.

그 당시에는 약국에서 영양제 링거를 구입해서 주사를 놔주러 집으로 다니는 분들이 계시던 때였다.

물 한 모금도, 밥 한 숟가락도 제대로 넘길 수 없었던 나는 링거 놔주시는 분을 불러서 집에서 주사를 맞게 됐다.

예전에 간호사를 하시던 분 이셨는데 힘들어하는 나를 보시더니

"물 마시기가 힘드시면 아이가 쓰던 가재 수건에 물을 흠뻑 적셔 입술에 물고 있으면 훨씬 견디기가 나을 거예요. 아이고, 젊은 애기 엄마가 혈관도 너무 가늘고 왜 이렇게 말랐어요. 주사를 놓기가 어렵네. 아기 기르다 보면 힘들 때 많은데 자기 몸은 스스로 알아 잘 챙겨야 해요."

라며 끝까지 신경을 써주고 가셨다.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링거를 꽂은 불편한 팔로 아이의 저녁을 간신히 챙겨 먹이고 소파에 누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혈관이 너무 가늘어 2시간 반이면 맞을 수 있다고 했던 링거를 4시간이 지나도록 맞고 있었다.

그런데 일찍 퇴근하겠다고 분명히 말했던 남편은 11시가 다 되도록 전화 한 통 없이 퇴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네 번째에 전화를 걸었을 때 남편은 술이 잔뜩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나야. 왜? 지금 회식 중이야. 나 술 좀 취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기가 차고 또 한 번 믿음을 준 마음이 속았다는 기분에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그때가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ㅠ) 열심히 발버둥 치느라 내 몸하나 건사할 틈도 없어 나는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는데 남편은 조금도 나를 배려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데리고 살려고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우습게만 보였나 보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난 내가

"오늘 내가 너무 아파서 출근도 못했다고 했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아프다는데, 하루만 일찍 와서 도와주고 아이 좀 봐달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오늘 꼭 그렇게 술을 마셨어야 했니? 그래서 언제 들어올 건데?"

울면서 말하는 내 얘기를 듣던 남편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우냐? 회식이라고.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무리 속상해도 아이 앞에선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나였지만 그날은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입안이 말라 입술까지 찢어져 피를 흘리며 우는 나를 보고 있던 딸은 조그만 손으로 잘 닿지도 않는 세면대에 의자를 놓고 올라가 자신의 가재 수건에 물을 묻혀서 제대로 짜지도 못해 뚝뚝 물이 흐르는 수건을 가져와 내 입술을 닦아주려 애쓰며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아이의 옷소매도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ㅠ)

"엄마. 울지 마요. 아빠 나빠. 울지 마요. 내가 아빠 때지 해 줄게요"

나는 딸을 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언젠가 이 날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노라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해서가 아니라 내 딸의 마음을,

아무것도 모르는 4살짜리 어린 딸의 마음을 찢어 놓은 대가를 치르게 하겠노라고!


그날 남편은 들어오지 않았다.

술이 너무 취해서 찜질방에서 잤다는 핑계로 새벽 5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벌써 일은 진행되고 있었던 거였다.


지금 25살인 딸은 그날의 일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그때 이후로 딸의 마음엔 아빠를 향한 불신의 마음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누르고만 있던 문제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고 우리 가정엔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지나간 일들에 대한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글을 써서 나를 치유하고 다시 나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하다 여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다시 일어서야만 사랑하는 내 딸이 내 품을 편안하게 떠나 자신의 꿈을 향해 달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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