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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오순 Jan 04. 2024

독일 여행 - 프랑크푸르트

가끔 훌쩍 여행 떠날  있잖아. 특히 바빠서 여유는 없는데 겨우 시간을 만들어서 떠나는 여행, 좋지 않아? 나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었고, 그런 마음으로 도착한 곳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였어. 대개 도심과 공항은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크푸르트는 공항에서 도심이 아주 가까웠어. 기차로 20분쯤 걸렸던  같애.


거기서 열흘 정도 지낼 생각이었지만 호텔 예약은 첫날 하루만 했어. 그 호텔이 좋으면 계속 묵고, 마음에 안들면 다른 곳에서 묵을 생각이었거든. 공항에서 밖으로 나오는데 좀 막막한 거야. 호텔을 어떻게 찾아가야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도심으로 가는 전철 타는 곳으로 나와버렸더라고. 그때 스마트폰 사용을 안했던가, 기억이 안나네.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탔는데 역 플랫폼에서 그 유니폼 입은 승무원이 보여서 미안한 얼굴로 호텔 위치를 물었어. 종이에 약도까지 그려주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깜짝 놀랐지 뭐야. 불친절한 독일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거든.


전철을 타고 창밖을 감상하면서 호텔 근처 역에서 내렸는데 한달간 주변에 공사가 있어서 루프트한자 승무원의 위치 설명은 무용지물이 되었어. 수트케이스를 끌고 헤매다 겨우 호텔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야. 아직 오전이라 체크인을 하고 아침을 호텔에서 먹었지. 나 그때도 아침 많이 먹는 사람이었거든. 호텔 리셉션 직원한테 근처 공원 위치를 물었고 노선이 가장 긴 버스 번호를 몇 개만 알려달라고 하고 호텔 밖을 나왔어. 나는 여행을 떠나면 길에서 늘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 호텔 밖을 나설 때 별 두려움은 없었어. 버스를 타러 가면서 공원을 가로 질러 갔고 노선이 긴 버스를 몇 개 탔더니 내가 도착한 도시가 어떤 곳인지 조금 가늠해 볼 수 있겠더라고. 버스 노선에 보이는 대학에 잠깐 내렸고, 마음에 드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거기서 만난 학생들한테 몇 군데 도서관을 안내 받았어. 그중 한 학생과는 버스를 같이 타고 오후에 시내 여행을 했어. 수줍어하며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오래전이라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생각이 안나. 공연장도 몇군데 갔었는데 오페라 ‘카르멘’을 꽤 좋은 좌석에서 봤어. 거길 떠날 때 공항에 있는 서점에 들렀는데 아는 인도 교수님을 우연히 만났어. 거기서 둘이 한 시간도 넘게 이야기를 하며 우리 카페라도 갈 걸 왜 이렇게 서서 오래 이야기했지, 하면서 웃으며 헤어졌어. 그러게나 말이야.


그때 기차 창밖으로 본 풍경, 따뜻한 햇살, 걸으면서 만져본 돌담과 내가 밟았던 공원의 폭신한 잔디, 들렀던 서점들과 도서관, 인디고 블루 벽지에 노란색이 많이 들어간 그림의 액자가 걸린 호텔 방, 며칠간 아침을 함께 먹었던 노부부, 버스 여행을 같이 했던 키가 크고 곱슬곱슬한 금발 머리가 인상적이었던 남학생,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 물흐르듯 이야기를 나눴던 인도 교수님,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한 감자가 들어간 음식들이 생각난다.


미국 작가가 충동적으로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 집을 사서 수리하며 적응해가는 영화를 봤다. 나한테 그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라 한달 정도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 ‘아무런 책임감 없이’ 지내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생활이 맞을 것 같다. 갑자기 지난 여행 이야기가 떠올라서 한번 적어봤는데 프랑크푸르트같은 곳에서 한달 정도 지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내 인생의 바쁜 날들이 다 지나고 나면.


#프랑크푸르트 #독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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