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어릴 때 외화를 몹시 좋아해 혼자 영화를 즐겨 보러 다녔는데 내가 번 돈으로 처음 관람한 영화가 <시네마 천국>이었다.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영화티켓을 사서 영화를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고 이제야 제 몫을 다하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물론 영화 내용도 좋았다. 극장의 공기, 소음들, 영화 사운드 트랙, 어른이 된 토토가 알프레도가 남긴 마지막 필름을 혼자 앉아 보면서 울던 장면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이탈리아가 나를 부른 건 커피가 아니라 영화 <시네마 천국>이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분위기에 떠밀려 여권을 만들었고 주식투자로 번 돈을 들고 유럽으로 떠났다. 일정 중에 이탈리아도 있었는데 시칠리아섬에 꼭 가보고 싶었다.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 된 도시들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 책자에도 등장하지 않는 체팔루(Cefalu)와 팔라쪼 아드리아노(Palazzo Adriano)에 가기 위해 로마의 테르미니역에서 팔레르모행 야간기차를 탔다. 팔레르모는 시칠리아의 주도로 그때 로마에서 팔레르모까지 한 번에 가는 기차가 있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이동수단으로 페리를 타게 되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은데 이탈리아 본토에서 팔레르모로 넘어가려면 기차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타고 있던 기차 그대로 페리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기차 길이가 길기 때문에 몇 량으로 나누어 페리로 들어가는데 페리 안에 기차선로가 있다.
그렇게 물어물어 도착한 시칠리아에 정말 아무것도 없어 어찌나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황량함, 그 자체였다. 이틀을 놀다 다시 기차를 타고 북상했는데 요즘 다큐멘터리나 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시칠리아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엔니오 모리코네 타계 소식을 듣고 내가 그간 여행했던 이탈리아 도시들을 중심으로 랜선 투어를 했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옛날인데 그때의 나는 어디에도 없어 아쉽고 짠하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