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투표는 잘하셨나요? 갑작스러울 수 있겠지만 제 앞으로 빠르게 뛰어가는 당신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아 편지를 써봐요.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글을 당신이 읽는다면 함께 커피나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저는 오늘 오랜만에 학기 중의 활력을 느꼈어요. 여성들로 가득 찬 교정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잘한 웃음소리, 그리고 사거리의 마카롱 집 앞에 늘어선 긴 줄까지. 제가 좋아하던 우리 학교의 모습들이에요. 졸업 전에 다시 보게 되니 너무 반가웠습니다. 몽글몽글하게 떠오르는 추억에 푹 빠진 채로 걷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는 걸 느꼈어요. 시선을 내려 시계를 보니 5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더군요. 저는 옆의 여성에게 발맞춰 점점 속도를 높여가며 걸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함께 우르르 뛰기 시작했습니다. 서로를 모르지만 익숙한 친밀감을 느끼는 여러 명과 학교 정문을 향해 뛴 지는 일 년도 더 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수업에 늦었을 때도 뛰어가는 학우들을 바라보기만 하고 느긋하게 뒤따라 걸어가는 학생이었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그들과 함께 뛰었어요. 정문에서 행정관의 작은 정원길을 지나 명신까지, 중간중간에 자신이 속한 단과대학의 투표소로 가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우리는 투표소에 들어갈때까지 쉬지 않고 뛰었습니다. 발열 체크를 할때 모두들 열이 한껏 올라 여러번 다시 검사를 받았을 정도로요.
투표소에서 나오니 어느새 5시까지 2분이 채 남지 않은 시간이 되었어요. 그때 제 앞으로 당신이 뛰어갔어요. 질끈 묶은 당신의 머리가 사방으로 흔들릴 정도로 빠르게요. 코너를 돌 때 속도를 이기지 못한 당신은 잠깐 휘청했고 샌들이 벗겨졌어요. 지켜보다가 함께 놀란 저는 신발을 주워 주기 위해 가까이 갔어요. 저는 당연히 당신이 멈추고 신발을 고쳐 신을 거라 생각했기에 괜찮냐는 말을 건네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바로 투표소로 달려가시더군요. 저는 말 한마디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바닥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샌들과, 건물 안으로 사라진 당신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면서요.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등에 맞닿아있던 가방의 안쪽 면이 축축하더군요. 더운 날씨 때문에 조금은 얼룩진 땀자국이 남아있던, 당신의 뒤집어진 샌들이 다시 떠오릅니다. 오늘은 저에게 꽤 오랫동안 진한 감동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벅찼던 우리들의 달리기는 학교에 또 새로운 활력과 변화를 일으켜 주었어요. 얼어붙을 듯 추웠던 겨울의 집회와 우리들의 목소리를 거쳐, 올해부터는 드디어 학생, 직원, 동문까지 투표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올해의 변화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학생의 투표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은 7.5%밖에 안되고, 학생들의 투표율이 40%가 넘어야만 반영이 된다는 사실에 굉장히 분노했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기말고사까지도 비대면으로 실시하는 상황에서, 오후 5시까지 진행하는 오프라인 투표소에서만 투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걱정이 앞섰어요. 지방에 있거나, 시험시간 등 여러 일정이 겹치는 학우들은 투표에 참여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거든요.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은 형식적인 진행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투표소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뛰어다니는 총학생회 여러분과, 마지막까지 투표를 하기 위해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학우분들의 모습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향한 첫 뜀박질을 시작하는 거였네요. 아직은 부족하고,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우리들의 벅찬 달리기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2차 투표가 실시된다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바로 이틀 후에 진행이 된다는데, 그때는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교정을 채워줄지 기대가 됩니다. 그날에 당신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날에는 같이 달리고 싶어요. 당신을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이만 말을 줄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 #총장 직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