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이어달리기를 준비하며

by 오솔


버스에서, 엘리베이터에서, 그리고 은행 ATM기에서 항상 상냥하고 아름다운 안내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친절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듣지만, 들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넘겨버리곤 한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렸기에 의식하지 않으면 당연하게 지나쳐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본인 혹은 주변 지인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굿즈(Goods)를 갖고 있냐고 물었을 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의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매일 수요일 광화문광장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가 열린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전국의 학교에서는 평화나비 네트워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정규 역사 교육과정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특별한 카테고리로 떼어서 배우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이 일본의 사죄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위안부 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더 나아가 후원과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를, 그리고 ‘위안부’ 운동을 모른다. 여태까지의 위안부 운동에 대한 그간의 관심과 지지의 크기에는 일종의 착시 효과가 있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의 인식 수준 역시 몇십 년째 같은 자리에 머물러있다. 대중의 기억에서 피해자의 이미지는 ‘일본군의 총검 앞에 강제로 끌려간 소녀’로 굳어졌고, ‘피해사실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배상’ 그 이상의 논의들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중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후원과 굿즈 소비에만 집중되었고, 직접적인 참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지난 5월, 이용수 피해 생존자의 기자회견의 후폭풍은 거세고 예상치 못한 파장들을 가져왔다. 정의 기억 연대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후원금 회계. 안성 쉼터에 대한 온갖 의혹과 비방이 있었다. 같은 달 11일에 있었던 정의 기억 연대의 기자회견은 영수증 세부 내역 전체를 공개할 수 있냐는 압박 질문들로 점철되면서 굉장히 강압적이고, 감정적인 분위기 속에 이루어졌다. 혐오는 눈덩이처럼 불어, 일본군 ‘위안부’ 인권운동과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언론과 네티즌들의 일방적인 비난으로 변했다.


일본군 ‘위안부’ 활동가들은 지난 30년 동안, 대중에게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알리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현재의 여성인권을 수행해 왔다. 위안부 피해 여성들과 함께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없는 사비를 보태가며 재판을 다니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몇 날 며칠 동안 비바람을 맞기도 했다. 일본의 극우 세력은 “한국은 귀여운 나라다.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정말 귀엽다"라고 그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런 모멸감을 견디며 이 사안에 무관심한 정부와 국민들을 움직여 지금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일본군 성노예제 인권운동 활동가들과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대중들의 비난의 화살들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그리고,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6월 7일 우리는 비보를 접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기거하셨던 공간이자 삶의 공동체였던 ‘평화의 우리 집’ 손영미 소장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었다. 한 평생 피해자와, 우리의 운동을 지켜오던 한 명이 또 별이 되었다. 운동을 지켜주고 있는 활동가들은 피해자들과 같은 ‘피해 자성’을 갖는다.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란 단지 생존 피해자들의 의사를 받드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그들을 보살피고 지지하는 분까지 포함하는 ‘피해자 공동체’의 요청을 문제 해결에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0. 6. 10.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그들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한평생 운동을 알리고 투쟁하면서, 피해자에게 바통을 받아 위안부 운동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여성인권을 위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의 미래에는 이러한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앞장서서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디 모두가 비난의 화살을 거두어 주길 바란다. 정의연에 책임이 있다면 그것을 물어야 하겠으나, 언론과 대중의 무고한 의혹과 일방적인 비방에 대해서는 해명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검찰과 언론, 그리고 시민들은 위안부 운동을 현재까지 발전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끝없는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고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세상을 떠나는 중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 피해자성을 인지하고, 활동가들과 함께 바통을 이어받아 계속해서 이 운동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2020.06.28.


#일본군'위안부' #여성인권운동

keyword
작가의 이전글뒤집어진 샌들의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