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작가님께.
안녕하세요 민경 작가님, 벌써 7월의 마지막 날이에요. 작가님의 7월은 어땠나요? 저에게 7월은 저에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절대 끝이 나지 않았으면 했는데, 벌써 7월이 하루가 채 남지 않았네요.
5월부터 코시사를 구독하고 코시사에 푹 빠져 살았지만, 한 번도 작가님께 메일을 보낼 용기가 나지 않았었어요. 최근엔 한 여성을 정말 지독하게 사랑하게 되어 엄청난 고민의 늪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여러 번 고민 메일을 썼다 지웠다 아주 변덕만 부렸지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습니다. 7월의 마지막 날에 닿아서야 용기를 내어 코시사의 마지막 설렘과 아쉬움을 담아 작가님께 편지를 써요.
고등학생 때 한 친구의 꿈을 연달아 꾼 적이 있었어요. 하루는 그 친구가 자고있는 제 위에 올라타서 저를 꾹 누르는 꿈을 꿨어요. 잠에서 깨고 나서 혼자 그 친구를 생각하며 다시 필사적으로 잠에 들려고 노력했었지만, 정말 아쉽게도 꿈을 이어 꾸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이 외에도, 우연히 팔꿈치가 맞닿았을 때 떼지 않고 싶었던 수업시간이라던지, 열이 많아서 담요가 필요하지 않지만 그 친구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매주 빨래를 하며 털 담요를 가지고 다녔던 것이라던지, 제가 그 친구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던 수많은 신호가 있었어요. 하지만 전 그 꿈을 피곤해서 가위에 눌린 것이라고, 요즘 스킨십에 익숙해진 것이라고, '제일 친한 친구한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라며 넘겨버리곤 했어요. 저는 꽤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매주 가는 교회에서 수많은 여성 혐오와 동성애 혐오를 답습했기에, 제가 같은 여성을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꽤 여러 번 여성들에게 타오르는 끌림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한 번은 친구의 팔 안쪽에 뽀뽀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는데, 그 마음을 누르지 못할 것 같아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도 있어요.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후였기 때문에 '내가 여성을 좋아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레즈비언이라고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해서 계속해서 혼란 속으로 더 깊이, 더 멀리 헤엄쳐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 혼란 속에서 끝없는 잠수를 하고 있을 때,
작가님과 같은 이름의, 저 멀리서 봐도 동그란 두 눈이 가장 먼저 보이는 한 여성에게 지독하게 빠져버렸어요. 서로 닮은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저와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었어요. 저보다 세 살이나 어리고, 전혀 다른 지역에서 자랐고, 좋아하는 음식도 전혀 달라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하기도 힘든, 낯을 무척이나 가려 제가 다가가면 눈을 피해버렸던 그 친구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자각했을 때 정말 너무 놀랐어요. 이 감정 또한 예전처럼 꾹꾹 누르며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번에는 정말 성난 불도저 마냥, 뭐하냐고 카톡을 보내고, 꾸역꾸역 만날 상황을 만들어내고,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피곤해도 그 친구를 바래다주고 싶어 따라나서게 되더군요.
하루는 그 친구가 한 주 모임을 쉬어도 괜찮겠냐고 물어봤어요. 이유를 물어보는 게 실례라는 것은 알았지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어서 이유를 물었어요. 그 친구를 한 주간 못 보는 것이 너무나 싫었던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작가님의 몸 글 강연을 들으러 부산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저도 함께 가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모임의 장으로써 한 주 모임을 펑크 내면서까지, 그리고 저에게 무척이나 낯을 가려하는 친구에게 같이 부산에 가자고 한 것이니 정말 과했죠.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새벽의 힘이었는지 같이 가자고 해줬어요. 6월 한 달간 부산으로 떠나는 전날까지 아주 설레고 신나서,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정말 애를 먹었었습니다.
그 친구와 다른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고,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자도, 모임 시간 이외의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사실이 너무 소중했어요. 저희 둘 말고도 다른 친구도 함께 간 자리였지만, 온통 그 친구만 보이고 그 친구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도 같은 마음이었던 건지, 우연히 둘이 있게 되면 술기운을 빌려, 새벽 감성을 빌려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들을 와르르 쏟아냈어요. 여자를 좋아해 본 적이 있는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묘한 감정들이 많이 흘렀네요. 다른 친구가 일찍 잠에 든 새벽, 저희는 반쯤 마신 맥주를 들고 동이 튼 해운대를 걸었어요. 반쯤 꺼진 네온사인들이 다채롭고, 시원한 파도소리와 눈이 시리게 밝은 일출 때문에 참 예뻤던 그 새벽에, 저희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차가운 모래로 제 손을 덮어주고, 그 위에 손을 얹었을 때 너무 숨이 벅차서 더 이상 이 감정을 누를 수가 없었어요. 정말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횡설수설하며 마음을 고백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사람과 광화문의 한 카페에 앉아, 작가님께 메일을 쓰고 있어요. 정말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를 가장 많이 변화시킨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 덕분에 코 시사를 구독하고 읽게 되었고, 함께 서울에서 부산까지 몸 글 강연을 다녀왔고,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레즈비언의 연애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어요.
작가님이 계셨기에, 코시사가 있었기에 저희는 더 단단해졌고 앞으로 더 단단해질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그 선을 넘어 더 멀리, 더 깊이 가보려 합니다. 민경 작가님, 항상 감사하고 고마워요.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다양한 선택지를 찾아,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용기를, 위로를, 사랑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시사가 끝이나도 정말 오랫동안 코시사 안에서 작가님과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기억할게요. 항상 애정하고 응원합니다.
응원과 사랑을 담아, 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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