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잠 못 이루는가

by 오솔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일했던 습관이 남아있어서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카카오톡과 메일함을 차례대로 열어보곤 한다. 일을 그만둔지는 반년이 넘었다. 더 이상 나를 찾는 초단위의 업무 연락도 없다. 하지만 아직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난 작년까지 ‘슈퍼 막내’였다. 방송국에서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일을 하는 막내작가들을 그렇게 부른다. 일머리가 좋다는 칭찬의 의미도 물론 있겠지만, 사실 어떠한 업무에도 토를 달지 않고 모두 해내서 마음에 든다는 말일 거다.


매일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막차가 끊기기 직전까지 일했다. 더 늦을 때는 선배 차를 빌려 타거나 택시를 타고 다녔다. 집에 가서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늦은 새벽에도 업무 연락은 끊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힘들다거나, 부당하다고 목소리 내지 않았다. 난 프리랜 서고, 막내였으니까. ‘막내’이기 때문에 당연히 참고 넘어야 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방송 3일 전, 이틀 동안의 밤샘 노동을 마치고 오전 11시가 넘어 집에 들어왔다. 점심때가 되었지만, 밥을 챙겨 먹을 생각도 없이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싸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 오후 5시가 가까웠고, 5통의 부재중 통화가 와있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을 때, 날 찾는 수많은 카톡과 메일들이 도착해있었다. 6시간도 채 못 잤고, 씻지도 못 했지만 칫솔을 챙겨 바로 택시를 탔다. “지금 빨리 여의도로 가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퇴근한 지 6시간 만의 출근이었다. 그렇게 이틀 밤을 더 새우고, 방송 당일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잠 못 이루는 1년을 버티고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퇴직금도, 고생했다는 인사도 없었다. 담당 PD와의 마지막 면담에서 들었던 말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중에 지금을 다시 떠올리면 생각이 달라질걸? 아직 어려서 그래.’ 날 책망하는 말들로 비정상적인 강도의 업무환경과 그동안의 나의 고생을 모두 부정해버렸다. 기가 찼다. 프로그램에 필요한 섭외부터 취재, 그리고 사소한 잡일들까지 모두 작가의 몫이다. 굉장한 헌신과 시간, 전문성을 요하는 업무를 담당하지만 나 같은 막내작가들은 그저 어리고 미성숙한 ‘막내’ 일뿐, 우리들의 전문성과 노력은 쉽게 무시당한다.


코로나 19로 어수선했던 3월에 함께 일했던 막내작가 A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코로나 19로 방송작가들의 일감이 뚝 끊겼고, 부당해고를 당하는 일도 너무 많아졌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19의 여파로 방송작가 6명 중 1명이 실직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기사를 보고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다. 며칠째 통 잠을 못 자고 방송국에 남아있는 동료들의 일상을, 나의 과거를 곱씹어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계약조건은 프리 하지만, 업무는 프리 하지 않다. 방송국에서는 직군에 상관없이 누구나 힘들다지만 작가들은 프리랜서라는 이유 때문에 제대로 된 노동환경도, 급여도, 고용안정도 보장받지 못한다. 정해진 퇴근 시간도, 휴일도 없고, 방송일과 팀 일정에 내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젊은 여성이 주인 직군이다 보니 차별과 혐오에도 취약하다. 회의나 업무 중에도 ‘애교 있는 목소리’와 ‘부드러운 말투’를 요구받고,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방송작가들의 구체적인 현실을 알리고, 개선하기 위한 노동조합과 개인들의 꾸준한 노력이 있다. 2017년에는 방송작가 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이 생겨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하기 쉬웠고, 여전히 빠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나와 같은 사례와 나에게 연락해온 막내작가 A와 같은 사례가 해결된 바도 없다. 약자를 위한, 여성 노동자를 위한 법과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여성 프리랜서를 사람이 아닌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만 취급하는 지금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년을 맞았다. 전태일 열사가 바꾸려고 했던 50년 전의 노동 현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여성 노동자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세상,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구만 리이다. 난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잠 못 이루는 방송작가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사회에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사람을 모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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