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하지도 않은 우유급식을 남겼다며 혼이 나다
나는 우유를 좋아한다. 그래서 커피 중에 라떼를 가장 좋아한다. 이런 우유 사랑은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우유를 달고 살았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집에서는) 젖병에 담긴 우유만을 고집했다. 아침에 등교할 시간이 되면, 할아버지는 분주히 우유를 젖병에 담아 따뜻하게 데워 오셨고, 나는 누워서 그 우유를 먹다가 젖병을 탁 던지고, 황급히 통학차를 타러 달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밤에는 내가 ‘할아버지, 잠 와’라고 하는 소리에 할아버지께서 엉금엉금 전자레인지로 돌린 따뜻한 젖병 우유를 갖다 주셨고, 그걸 먹다가 잠이 들곤 했다고 한다. 조금은 창피하면서도 따뜻한 이런 기억이 한 켠에 남아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 켠에는 우유 급식에 얽힌 시린 기억이 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래도 저소득층 어린이를 위한 복지가 점차 확대되고 있던 시기에 태어나 학교 우유 급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사실을 따로 알려주거나 하진 않았고, 알려 준다 하더라도, 칠판 게시판에 우유 급식 명단에 표시가 공개적으로 따로 되어 있곤 했었다. 그래서 우유 지원 대상인 걸 알았지만, 학기 초반에는 긴가민가 했으므로 눈치껏 우유를 먹어야 했었다.
매년 지원을 받는 걸 알면서도 학기 초는 따로 명단이 없으면 내가 다른 친구의 우유를 먹어버리는 게 될까 봐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학년에서 고학년이 되었던 4학년, 새 학기 그때도 그러했다. 심지어 그때는 개수만 알 수 있지, 우유 급식 명단이 따로 없었어서 우유를 먹고 싶었지만, 먹지 않았었다. 그렇게 우유가 꼭 하나씩 남게 되었고, 담임 선생님은 우유를 남기는 괘씸한 학생을 찾으러 벼르고 계셨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나는 심판의 날에 모든 내막을 알게 되었다.
그날 하교 전 종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유쾌하셔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무서울 때는 무서웠던 담임 선생님은 매서운 목소리로, 우유 급식을 남기는 아이를 나무라셨는데, 나는 처음에는 나랑은 상관없겠거니 했다가 점차 불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 범인 색출하고자 급기야 우유 급식 명단을 가져오셔서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공개 처형하셨고, 그 남은 우유의 주인은 나인걸로 밝혀졌다.
정확히 어떻게 혼내셨는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소심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신청하지도 않은 우유 급식 때문에 거의 처음으로 호되게 혼났고, 울음을 삼키려 입술을 꾹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아마도 모르셨겠지, 내가 우유 급식 지원 대상자라는 걸, 그래서 신청하지 않아도 본인의 몫으로 우유가 나오는지, 지원 대상자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것을. 그 상황에서 무력한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자 방어수단은 울음뿐이었지만, 그 무기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다. 울음을 통해 읍소하며 해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은 지원받는 아이라는 걸 모든 반 친구들에게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려서 속수무책으로 당한 일에, 조금은 억울한 이 일에 선생님께 제대로 해명을 못 한 게 끝내 아쉬운, 뒷맛이 씁쓸한 추억이다. 그때 느꼈던 서러움과 억울함, 그리고 무료 급식 대상자에 대한 낙인 등 복합적인 감정이 아주 가끔씩 잔잔히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한창 무상급식으로 논란이 일었을 때, 공짜밥을 원래 먹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친구들도 다 같이 공짜밥을 먹는 게 떳떳한 일일 수 있다고, 그날의 사건과 지원받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의 ‘왜 너는 돈 안 내도 돼?’라는 호기심 어린 질문을 견딜 수 없었던 어린 나를 자연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선생님은 모르고 하셨으니, 선생님으로서 본인의 역할을 하신 거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 보고 돌이켜보니, 조금은 씁쓸할 수밖에 없는 그런 기억이다. 그 당시에는 특정 어린이들을 위한 온갖 지원 옆에는 수치심이 붙어 있었다. 학교 스피커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지원 대상 어린이들을 소환하는 등, 그런 주목들 끝에서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소심했던 나는 ‘아이들의 각각의 사정을 배려하는 세심한 선생님’이 되어야지라고 하며 교사의 꿈을 꾸기도 했었다.
각자의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더 세심한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자고 다짐한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조금의 실천들이 모여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 과거에 비해 지금은 더 나아졌듯이.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나와 비슷한 이유, 가난과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낙인에서 학생들이 조금은 더 자유로워졌기를 바란다.
#에필로그
어렸을 때에는 어리다는 이유로, 내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누명을 쓰고 혼나는 기억들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기억이 몇 가지 있는데, 반 친구들에게 ‘너는 왜 그렇게 착해?’라는 말을 종종 듣던 내성적인 어린이였던 저도 억울하게 혼나는 일들이 종종 있었고, 그것은 제 환경과 무관하진 않았어서, 더 아리게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교사라고, 이런 상처들을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남기지 말고, 거기서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길 저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