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 얽힌 우여곡절
알고 봤더니 지난 8월 9일이 수능 D-100일이었고 한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주변에 수험생이 없어서인지 이번 수능 D-100일은 잠잠하게 지나갔다. 이렇게 수능 관련 날짜 감각도 옅어질 정도로 수능을 본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수능시험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지만, 수능은 여전히 내게 특별한 날이다.
고등학교 3학년은 모든 수험생에게 그렇듯 정말 힘든 시기였다. 공부를 하면서 동시에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내야 하는 ‘시험에 드는’ 기간이었다. 공부 그 자체보다는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압박으로 마음 편히 하루하루를 보낼 수 없었고, 자기소개서, 생활기록부, 면접, 내신관리 등 동시에 많은 것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며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특히 나는 형편상 재수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배수진을 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간절하게 보냈고, 그러는 중에 어느새 수험 생활의 정점인 수능시험이 다가왔다.
수능시험 장소는 무작위로 배정되었는데, 시험 장소가 발표된 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시골 버스 배차 시간으로는 입실시간 전까지 도착할 수 없는 위치의 시험장에 배정된 것. 수능을 보는 것은 고사하고, 수능시험장에 가는 것조차 하나의 고비가 되고 말았다. 지금이었으면 택시도 고민해봤겠지만, 버스비조차 아까워서 40분 넘는 거리를 가끔 걸어 다니곤 했던 나로서는 40분은 넘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수능 공부를 할 시간에 어떻게 시험 장소에 갈지 고민에 빠져있던 내게 친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자세한 상황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비교적 시험 장소에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친구네 집에서 같이 하룻밤을 묵고 시험장에 가기로 한 것이다. 친구네 집에는 전에도 한 번 묵은 적이 있었고, 다행히 친구는 이미 수시로 대학교에 합격했던 상황이었다.
수능 전날, 수능특강 몇 권을 챙겨서 가방에 넣고, 송구한 마음으로 친구네 집에 가서 친구와 수다를 떨며 싱숭생숭한 밤을 보냈고, 다음날 친구네 어머니께서 해주신 아침밥을 먹고 함께 친구 아버지의 차를 타고 수험장으로 향했다. 감사하게도 친구 어머니께서는 내 몫의 도시락까지 싸주셨고, 친구 아버지께서는 뜻밖에도 친구와 내게 각각 ‘수능 만점’이라고 적힌, 현금 만원이 담겨 있는 봉투를 건네주셨다. 그게 부적이 되었을까, 나는 생각보다 수능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수험생의 행사는 가족의 행사라고도 한다. 수험생이 집에 있으면 온 가족이 수험생이 된다고. 뉴스에서 그려지는 감동적인 수험생 교문 풍경은 내게는 없을, 그래서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 드는 풍경이었지만, 막상 나의 수능날은 친구와 친구 가족분들 덕분에 따뜻하고 감사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제2 외국어까지 응시하느라 친구는 먼저 떠났지만, 혼자 나서는 교문이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씩씩하게 길을 찾아 버스를 두 번 환승하고 해가 거의 다 저물었을 무렵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친구 어머니께서 싸주셨던 유부초밥을 꼭꼭 씹어 먹으며 떨리는 손으로 수능 답을 맞춰봤던 게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긴장하면 잘 체했고, 그날 아침도 체기가 있어 점심으로 귤만 조금 먹고, 도시락은 그대로 집으로 가져갔다.)
남들에게는 부모님의 힘을 빌리면 별 거 아닐 수 있는 일들, 이사, 수능 시험장에 가기, 운전면허 연습하기 등은 나는 혼자 오롯이 해내야 했기에 하나하나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렇기에 돌이켜보면 별 거 아니었던 것들도 종종 삶 속에서 ‘고비’의 모습으로 찾아왔고, 아등바등하다가 마음이 먼저 지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말 감사한 것은, 그런 난관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분들이 계셨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친구와 연락하고 지내는데, 그 시절 얘기를 꺼내며 아직도 그 수능 만점 봉투를 간직하고 있다고 사진 찍어서 보여주니 이런 일이 있었냐면서 본인은 기억도 안 난다며 즐거워했다. 이런 생색 없는 호의들을 받으며, 나도 그런 생색 없는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가끔은 내가 나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 그런 마음들을 되새긴다. 내가 베푼 조그만 호의들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에필로그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려서 민망한 마음과 송구한 마음이 동시에 듭니다. 8월에 어느 정도 써뒀던 글이지만, 건강 문제로 지난 8월은 회복하는 기간을 가졌고, 다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갈 힘이 생겨서 지금이라도 올립니다. 뭔가 새삼스럽게도 글을 쓴다는 게,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것 자체의 행복,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행복이 있어 띄엄띄엄하더라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