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루틴

by 네오

날씨가 더워졌다. 시간이 잘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벌써 1년의 절반이 더 지났다니.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일부러라도 피했다. 일단 나 자신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 그렇다고 태업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잠깐 추스르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더 나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고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산출물이라 생각했다.

루틴이 잡혔다.

술자리를 없애니 더 심플해졌다.


일, 운동, 공부, 집안일, 상담, 적게 먹기. 반복 또 반복


더운 여름이라 흘리는 땀에 비해 먹는 것이 부실하게 느껴졌다.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건강검진을 앞두고 체중을 다시 불리긴 싫었다. 굶지 않고 자주 먹었다. 배고프면 단백질이나 견과류를 조금씩 먹었다. 근육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출처 : Unsplash>


눈바디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더 선명해진 복근. 그런데 예상은 했지만 안면의 지방 빠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보는 사람들 마다 걱정했다. 어디 아픈 것 아니냐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이 나이에 다이어트를 한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는 것 같았다. 가끔 보는 사람들 뿐 아니라 매일 보는 동료들도 내 변화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매일 보는 장모님 뿐 아니라 가끔 보는 어머니도 걱정을 하기 시작하셨다. 아내도 조금 걱정하는 눈치였다.


몸은 계속 좋아지고 있었다. 인바디 수치도 좋고 몸과 마음과 정신력 컨디션도 괜찮았다. 이렇게 까지 좋은 컨디션은 최근 몇 년 간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나아지고 있다는 나에 대한 최면도 컨디션 호조에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영양에 신경을 썼다 치더라도 그 무더운 여름을 나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니...


어쩌면 9월 초의 건강검진이라는 시험에 대한 강박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가을이라 하기엔 무더웠던 날. 다시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인바디 수치를 찍었다.


한편, 가장 더운 7월과 8월의 토요일은 하루 종일 학원에 있었다. 오전 4시간, 오후 4시간. 토익의 거장, 장인이라 불리는 두 분의 강사. LC 선생님은 나보다 조금 더 연배가 많고, RC 선생님은 약간 더 적은 듯 보였다.

<출처 : Unsplash>


내 기억의 작년 여름은 더웠지만 더울 틈 없이 조용했다. 진지했지만, 들떴으며, 보람찼지만 답답했다. LC는 기세, RC는 반복. 내가 정의 내린 토익이다.


그러나 난 토익보다 다른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20년 넘게 토익을 쌓아온 장인들의 그 노력과 열정. 수많은 경쟁자들이 진입했다가 이탈하는 치열한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두 사람. 커리어의 정점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더 오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의 그분들. 오직 한 우물만 파고 있는, 그러나 열정과 노력은 조금도 식지 않는 모습. 난 영어보다 그분들의 그러한 모습에 더 배울 점을 느꼈다.


강의 중 아주 약간의 틈에 커리어적인 말씀도 하신다. 아마 그분들의 고민을 눈치채지 못한 수강생이 더 많았을 것이다. 난 아마도 다른 수강생들과는 조금 다르게 느끼겠지. 본업에서의 실력, 후배 강사들과의 관계, 회사와의 애증, 커리어의 미래, 지금보다 더 에너지가 넘치던 왕년의 회상 등...


나와 연배가 비슷한, 전문적인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의 모습에 나의 모습을 투영해 보았다. 나는 저 정도로 치열했는가, 여전히 지금도 저 정도로 거칠게 살고 있는가, 저만큼 고민하는가, 내 모든 것을 내 커리어에 쏟아붓고 있는가. 성공의 유무를 떠나 두 분 선생님들의 치열한 모습에 매일 숙연해졌다. 그리고 아무리 학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라 하더라도, 그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열심히 하고 싶었다. 아마 많은 수강생들이 저분들의 에너지를 받고 나처럼 행하지 않았나 싶다. 진심은 언제나 느껴지는 법이다.


풀타임으로 토익을 준비하는 분들이 짧은 기간 내 원하는 점수를 받게 하기 위해 숙제가 엄청나게 많다. 평일 반의 경우 매일 수업 듣고 숙제하면 하루가 다 필요한 분량을 토요일에 한꺼번에 내준다. 매일 4시간 이상 하지 않으면 숙제를 다 할 수 없다. 본전을 뽑는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그 보다 그분들을 믿기에,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하고 싶은 순수하게 학생의 마음이 더 앞섰다. 인생과 커리어가 걸린 일이었지만 왠지 그런 마음이 더 앞섰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몇 달간 가족에게 특히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이게 뭐라고... 가족들에게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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