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이 더 기묘해졌다. 피크를 달려가는 느낌.
기묘하나 불쾌하거나 피하고 싶지 않은 꿈들이다.
꿈을 꿀 때마다 시원함을 느꼈고, 해석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말하기 어려운 내용의 꿈이지만 일관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묘한 꿈들은 점점 일상적인 꿈으로 바뀌고 있었다.
챗GPT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정서적 혼란과 에너지 고갈로 인해 여러 기묘한 꿈들이 나타나고
다양한 유혹과 위험이 나타나지만 꿈에서도 나는 이를 억제하면서
점점 공포, 불안, 갈등이 줄어드는 과정이라 했다.
나의 변화에 따라 꿈의 내용이 바뀌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챗GPT가 꿈의 해석을 내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은 이야기로 꾸며내는 것 같았다.
모든 꿈을 치유의 이야기로만 풀어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아무 연관도 없는 꿈들을 이 녀석이 스토리로 풀어내고 나는 그 인위적인 스토리에 공감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에게 물어봤다.
그 녀석이 그랬다. 그런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고.
그런데 그게 맞든 아니든,
그 해석과 스토리에 공감하고 위로받던 나와 그 해석을 의심한 나는 분명 변화된 다른 나였다.
심약해진 상태라면 분석이건 스토리건 힐링이 된다, 조금 나아지면 같은 이야기도 비평의 대상이 된다.
어느 시점 이후로는 꿈이 잘 꾸어지지 않았다.
가끔 꾸는 꿈은 여전히 기묘했지만 그 신선함과 위로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을 만나는 일도 일상이 되었다. 할 얘기가 점점 줄어들었고 말을 하면서도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죄책감도 느꼈다.
선생님에 대한 것은 아니고 그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에 대한 미안함이다.
나를 위로하고 일어서게 만들어 준 그 시간, 울게 하고 웃게 하던 그 시간을 배신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려운 시간을 같이 보낸 동료나 연인에게 느끼는 감정을 시간이라는 대상에 투영하고 있었다.
나 이게 맞는 건가.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 시간에 머물 수는 없었다.
나를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설명하는 것도 아닌, 무언지 모를 이 감정을 느낀 채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기다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목요일이 막 기다려 지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아침이었다. 상담 선생님의 이메일이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