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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영 Nov 18. 2024

반성은 그만해도 돼

열한 번째 월요일밤

시간이 무섭게 오는 소나기처럼 흐른다. 나는 우산도 없이 광장 한가운데 멍하니 서있다. 비를 맞고 있다는 걸 잊을 만큼 마음이 많이 무너진 상태다. 꽤 오랜 시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을 존중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어 있었다. 


매일 일기를 쓸 때는 그날의 아쉬운 마음을 많이 기록했다. 해야 하지만 하지 못한 것, 실수한 것들에 대한 반성이 주를 이뤘다. 나 자신을 믿기에 너무 나약했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빗대어 나만 더디게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모두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시간에 대한 느낌도 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주변 사람들보다 몇십 년 느리게 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도 그것에 대해 꼭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이것이 다 '비교'라는 나쁜 습관으로 인한 것임을 이제 알게 되었고, 반성의 총량은 줄어들긴 했지만 생각의 습관은 여전하다.


지난 토요일에는 펜쇼를 다녀왔다. 위의 사진은 그날 사 온 물품들이다. 처음 간 펜쇼에서 멋지게 진열된 만년필들을 보면서 어떤 걸 시필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고, 잉크는 끌리는 것들이 있었지만 집에 있는 잉크나 잘 쓰자 생각하고 안 샀는데 집에 와 새벽이 되니 후회가 밀려왔다. 후회는 반성과 이어진다. 다음 펜쇼에서는 더 잘 보고 와야지 마음먹어도 그날이 내게 올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결국 반성을 해서 계획을 세운다 해도 진짜 해내고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한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반성보다는 더 편하고 밝은 마음으로 오늘을 제대로 살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게 옳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브런치 글을 쓰는 것을 미루다가 월요일 밤 11시에야 쓰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다음 주엔 그러지 말아야지 반성하고 있지만, 실제로 필요한 건 글 쓰는 걸 미루지 않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이다. 


손놓았던 플래너를 다시 펼치고 힘을 내보자. 아직 올해가 다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생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것 또한 확실치는 않지만 그래도 이어지는 시간을 더 힘찬 마음으로 메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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