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월요일밤
오늘은 짧은 시 하나 올려봅니다.
선물 받은 만년필의
잉크가 마른 지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가
어딘가에 닿았을 때
갑자기 생각난 그
잉크가 말라붙은 펜을 꺼내
물에 담가두었네
쌓여있던 검정이 씻겨나가고
다시 쓸 수 있게 되어
어느 것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네
잊혀지는 건 쓸쓸하지만
단단히 굳은 잉크가
결국 증명하게 되는
삶
- 오소영
당근에 만년필을 키워드로 등록해 두었는데 어제는 몽블랑 149가 떴고 순간적으로 구매 시도를 할 뻔했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만년필들이 아주 고가는 없지만 필감이 꽤 괜찮아서 필사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 참기를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 오늘 생각하니 아까웠다. 꽤 저렴한 가격에 미사용 제품을 팔고 계셨는데 어떤 분께 받은 만년필이길래 10년을 고이 보관만 하시다가 헐값에 판매하시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내가 자주 들르는 만년필 네이버 카페에는 매일 새로운 펜을 샀다는 글과 필사가 올라온다. 그걸 보면서 자극을 전혀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관심 없던 펜인데 글을 읽고 사고 싶어지기도 하고, 필사를 멋지게 한 사진을 보고 자극받아 글씨 연습책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시간이 감당할 수 없는 만큼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면 그건 지나친 욕심이겠다.
오늘밤엔 그동안 게을리했던 독서를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 좋은 구절이 나오면 필사도 하고. 가질 수 없는 펜들을 갈망하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펜들을 더 아껴줘야지. 사람도 마찬가지로 날 아끼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을 나도 더 보살펴야 하듯이. 언제나 떠나고 나서 후회하고 죄책감 가지는 버릇 이제 버릴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