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번째 월요일밤
피크민 블룸을 다시 시작했다. 피크민 블룸 게임이 시작될 무렵에 좀 하다가 핸드폰이 과열로 힘들어해서 그만두었는데, 작년 말에 친구들이 많이 하길래 다시 깔아서 버벅거리는 폰으로 하다가 너무 오랜 시간 붙들고 있는 것 같아 과감하게 지워버렸었다. 그런데 최근 폰을 바꿨고 계속 깔까 말까 고민하다가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깔아버린 것이다.
피크민 블룸은 수집이 굉장히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도 뭔가를 모으는 걸 좋아해 집이 물건으로 가득 차 한계에 이르렀는데, 게임에서도 또 뭔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피크민의 데코를 모으고, 피크민의 밀접도를 높이기 위해 먹여야 하는 꽃의 정수를 모으고, 그 정수를 먹여 피크민이 피워낸 꽃잎을 따다 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거기다가 또 매달 바뀌는 이벤트에서 모아야 하는 아이템이 있다. 이번 달은 닌텐도 콘솔 이벤트가 진행 중이라 게임기 단추전지를 모아야 하고, 전지를 특정한 개수만큼 모을 때마다 내 캐릭터가 게임에서 입을 수 있는 티셔츠나 특별한 모종을 주기 때문에 꽤 집중하게 된다. 단추전지는 걸어서 모을 수도 있지만, 화려한 버섯의 전투에 참여하면 꽤 많은 양을 주기 때문에 그쪽을 더 선호하게 된다.
이렇게 써두니 꽤 복잡한데 어쨌든 목표는 '좋은 걸 모으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목표와도 비슷할 수 있겠다. 미니멀리스트에게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계속 뭔가를 사게 되어있고 이왕이면 산 물건이 좋은 것이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그 좋은 것들을 예쁘게 장식해두고 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예전에도 여기에 쓴 적이 있지만 내 작은 집은 물건으로 매우 포화상태다. 지금 갖고 있는 물건의 반 이상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물건 때문에 생활의 불편함을 겪고 있다. 물건이 많다는 건 신경 써야 하는 대상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집에 사는 나의 정신건강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버리는 것보다 사들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오늘도 뭔가를 사 왔고 집에 오는 중 매우 후회를 했다. 돈을 많이 낭비했다는 것도 후회스러웠지만 집의 상태를 외면하고 또 자잘한 물건들을 사 왔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충동구매를 줄이고, 게임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나쁜 습관들로 자학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다.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나를 힘들게 하는 온갖 생각들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통장의 잔고와 진전 없는 작업과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나 자신을 비난하게 했다.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심호흡을 하고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우는 것도 사치라는 생각 때문에 요즘은 가급적 울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힘든 마음을 억누르고 하루를 시작했는데 도망치기 좋은 곳이 보이니 쉽게 선택해 버린 것이다.
외면은 쉽다. 하지만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 똑바로 바라봐야 받아들일 수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과한 걱정은 멀리 치우기도 하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렇게 내가 갖고 있는 것들(시간, 음악적 재능, 조금밖에 남지 않은 통장잔고)을 낭비하다가는 억지로 현실에 머리를 처박게 되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안다.
다시 갖고 있는 물건들을 줄이자. 피크민은 게임하는 시간을 정해두거나 다시 지우자. 충동구매는 이제 정말 그만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엉망진창인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또 정신이 드는 게 많이 한심하지만 그래도 오늘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실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