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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소영 Jun 09. 2023

힘주고 일어나기

자궁내막증 수술 이야기 마지막

[20230427]

이른 아침, 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탔다. 아산병원까지 좀 거리가 있는 데다가 출근시간과 겹쳐 엄청 밀리는 바람에 택시비가 3만 7천 원이 나왔다. 평소에 비싼 요금 때문에 택시를 거의 안 타는 내게는 아주 큰 금액이었지만, 수술 걱정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 담당 간호사님 만나 수술, 입원, 설명 듣고서 채혈실 가서 피 뽑고, 신관 3층 당일수술센터로 바로 올라갔다.


11시쯤 당일수술센터에 들어갔다. 우선 환자 인식 인식표(팔찌)를 받고 환자복을 갈아입은 후, 키와 몸무게, 혈압을 재고, 동의서와 수술 준비 상태 확인을 위한 예진을 받았다(4월 10일에 예진받을 때 기침이 난다고 말씀드려서 수술이 취소되었었고, 며칠 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었다.). 원래 수술 시간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고 해서 예진까지 서둘러 받고 대기했는데,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 했다. 12시 30 넘어 준비실에 들어갔고, 정맥주사를 왼팔에 꽂고 휠체어에 탄 채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휠체어에서 내려 수술대위에 올라가면서 상의를 탈의하고, 오른팔이 아프다고 말씀드리니 차려 자세로 팔을 고정해 주셨다. 그다음 산소마스크를 쓰고 마취 시작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그 후엔 기억이 없다.


회복실에서 눈을 떴다. 보통 회복실에서 간호사님이 잠들지 말라고 한다거나 호흡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내 기억엔 그런 게 없었다. 그냥 눈을 떴는데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는 않았고, 수술 전 검색하며 예습한 대로 호흡을 계속하려고 노력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던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침대에 누운 채로 병실로 이동했다. 병실 침대로 몸을 옮길 때 잠깐 아팠고, 그 후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고통을 0-10으로 나눠 표현하는 방법 알려주시고, 무통주사 달아주시고 등등의 시간이 흘렀다. 이때가 5시 20분쯤이었는데, 물은 8시 이후로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계속 호흡하면서 안 자고 버텼다. 사람들이 이때 엄청 목이 마르니 거즈를 적셔 입에 물고 있으면 참을만하다고 했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목도 입술도 심하게 마른 느낌이 아니라 잘 견딜 수 있었다. 8시가 되어 드디어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상체를 일으킬 수가 없어서 컵으로는 물을 마실 수 없었고 다행히 가져간 뽀로로 보리차 병으로 누워서 물을 한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꿀꺽꿀꺽 마시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사레들릴까 봐 조심조심 마셨다.


9시쯤 지혈주사 맞고 10시에 소등했는데, 옆 칸 보호자분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 못 들다 병원이 엄청 덥네, 좀 힘드네 그런 생각을 하며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간호사님이 시간 되어 오셔서 열을 재보시더니 열이 많이 난다고 하셔서 그때서야 아 내가 열이 있구나 알았다. 그때부터 밤새도록 열이 내리지 않아, 아이스팩 겨드랑이에 끼고, 애인이 물수건 해서 계속 이마에 올려주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무통주사는 통증이 심하지 않아서 아주 가끔 눌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꾸욱 깊게 누르지 않아 제대로 안 들어가고 있던 거였다. 수술부위 통증보다 나를 더 괴롭혔던 건 배액관으로 인한 통증이었는데, 몇 시간마다 간호사님이 오셔서 배액관 막히면 안 된다고 뭔가 조치를 취하실 때마다 뱃속을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중엔 배액관 손보기 전에는 항상 무통주사를 눌렀는데 아주 조금 덜 아플 뿐 여전히 강도 10의 고통이었다.


[20230428]

힘든 시간을 보내고 아침(내 기준에서는 새벽)이 되었고, 6시쯤 소변줄을 제거하고 10시까지는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봐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 아침부터는 죽 포함한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물 마시는 것도 수월해졌기에 10시 이전에 문제없이 소변을 볼 수 있었다. 9시쯤 수술해 주신 의사 선생님 회진 오셔서 수술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5센티 정도 큰 혹이 있던 왼쪽 난소와 난관 제거했고, 오른쪽 난소에도 1-2센티 정도의 혹이 있어서 제거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자궁 뒤와 장의 유착이 심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유착을 제거했고, 그것 때문에 수술이 길어졌고 열도 났던 것 같다고 하셨다. 원래는 2박 3일의 입원 일정인데, 열이 내리지 않으면 하루 더 있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오히려 잘됐네 싶은 마음이 들었다. 2박 3일 동안 수술을 회복하고 퇴원한다는 게 너무 힘겹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 그리고 유착 방지를 위해 많이 걸으라고 하셨는데, 처음에는 한 걸음 떼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아주 천천히 움직여 병동 복도를 한 바퀴 돌면 벌써 힘들어서 병실로 돌아와 누웠다. 그렇게 걷고 눕고 먹고를 반복하며 입원 둘째 날이 지나갔고, 밤에는 꽉 찬 5인실에서 코 고는 사람들과 소곤대는 사람들에 지쳐 에어팟 프로로 장들레 님 새 앨범을 들었는데, 덕분에 평화로운 밤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20230429]

심한 열은 내렸는데 미열이 계속 남아있어서 하루 더 있다 퇴원하는 걸로 결정이 되었다. 토요일이 되니 병실의 다른 분들이 모두 퇴원을 하셔서 5인실을 1인실처럼 편하게 사용해서 좋았다. 퇴원은 내일이지만 아침에 다른 분들과 함께 소독하고 배액관 제거 후 스테이플러로 고정받으러 소독실에 남자 간호사분의 안내를 받아서 갔는데, 소독을 받고 난 후에도 별다른 안내가 없어 물어보니 그냥 알아서 다시 병실로 찾아가야 하는 것 같았다. 안내해 주셨던 간호사분이 돌아가는 길까지 잘 안내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같이 갔던 다른 분들과 함께 씩씩하게 병실로 돌아왔다. 쾌적한 병실에서 애인이 사 온 과일도 먹고 빵도 먹고 편한 시간을 보냈다.


[20230430]

드디어 퇴원!!! 입원비를 병실이 있는 층에 있는 휴게실의 키오스크에서 낼 수 있어서 편하고 좋았다. 짐을 싸고 옷을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가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감아야지 했다가 커트까지 했는데, 나중에 오래 앉아있으니 힘들어서 좀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며칠 만에 머리 감고 살짝 짧은 길이로 커트하니 개운하고 아주 좋았다. 또 택시를 타고 긴 거리를 이동해 집에 돌아왔다. 맛있는 한식을 배달시켜 먹고 쉬는데 수술받고 입원하고 나오는 데까지 있었던 많은 분들의 도움이 떠올라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수술 후 이야기]

5월 4일에 집에서 가까운 산부인과에서 실밥과 스테이플러 제거를 받았다. 제거 후 스테리 스트립이라는 고정용 테이프를 붙여주셨는데 계속 밴드가 붙어있던 곳에 더 심한 자극이 생겨서인지 배꼽 양 옆으로 물집이 생겼다. 처음에는 아주 작아서 이러다 없어지겠거니 했는데 나중에는 엄지손톱보다 큰 크기가 되어서 걱정이 되어 아산병원에 문의를 드렸는데, 원래는 수술 후 첫 외래 진료가 5월 16일이지만 당겨서 10일에 진료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 10일에 가서 수술 후 경과 얘기를 하고 물집을 보여드렸더니 피부과에 가봐야겠다고 하셔서(아무 조치도 안 해주심) 아산병원 피부과는 진료자리가 없어서, 천호에 있는 피부과에 가서 물집의 물 제거하고 소독 후 드레싱을 받았다. 그다음 날 집에서 가까운 피부과에 가니 항생제 연고 바르고 듀오덤 계속 갈아주라고 하셔서 그렇게 관리하는 중이며, 18일인 지금도 나으려면 한참 멀었다.

자궁내막증 수술 후에는 재발방지를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게 되는데 보통 비잔정을 많이 처방한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비잔을 3년 먹으면서 부작용(체중증가, 유방에 혹 발생)이 심했기에 말씀드렸더니 루프린 주사를 맞아보자고 하셨다. 1년에 2번 6개월 간격으로 맞고, 3개월에 한 번은 초음파를 보러 와야 한다고 하셨다. 앞으로의 관리가 재발여부를 결정하니 호르몬 치료 잘 받고, 평소 생활습관 잘 교정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수술 후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조심스럽다. 예전처럼 다리의 반동으로 일어난다거나 하면 배꼽부터 깊숙이까지 당기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수술 전에 코어의 힘을 만들어두면 나중에 회복이 빠르다는 말이 이해가 가면서 실감이 난다. 그런데 침대에서 다리를 먼저 내리고 팔로 침대를 미는 느낌으로 일어나면 당기는 느낌도 없고 훨씬 수월하다. 어딘가에는 힘을 줘야 일어날 수 있지만 그 힘을 주는 부분이 어디냐에 따라 고통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신기하다. 난 사람이고 살아있고, 몸은 복잡하고 병이 나기 쉬우며 잘 관리하기는 어렵다. 아픔을 많이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어디에 힘을 줘야 일어나기가 수월한지 꼭 기억해두고 싶다. 지금 몸도 마음도 누워있는 나를 위해서.




2023년 5월 18일에 쓴 글인데 올리는 것이 늦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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