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no GO'
모바일 게임 '포켓몬 GO'가 대유행이다. 학창 시절 포켓몬에 열광하면서 자란 세대라고 하기엔 약간 올드하지만 워낙 당시의 열풍이 대단했었기에 그 위용은 익히 알고 있었다. 몬스터 볼이라는 도구를 던져 갖가지 포켓몬들을 수집하고 강화하면서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만으로도 포켓몬스터라는 콘텐츠를 만들어 낸 닌텐도의 아성이 느껴졌다.
작년 여름 속초에서 포켓몬스터가 출몰한다는 소식이 우리나라를 강타했고, 포켓몬 GO가 정식으로 서비스되지 않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은 포켓몬을 잡기 위한 속초행 광풍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해가 채 지나기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포켓몬 GO 게임이 정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어 오늘의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한참 동안 포켓몬은 물론 만화 캐릭터들과도 전혀 무관한 삶을 살던 나는 가까운 친구로부터 한참 동안 게임에 대한 소개를 듣게 되었다. 이 포켓몬 GO 게임이 휴대폰이나 전자기기의 위치기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며, 기존의 게임들과는 달리 많이 걷고 돌아다닐수록 게임을 더욱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고도 전혀 관심이 없던 나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래? 어디 한번 설치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포켓몬 GO 앱을 설치했다.
사흘? 나흘이 채 지나지 않아 내 레벨은 제법 높은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열심히 하는 분들에 비하면 느린 성장 속도일지는 모르나 출퇴근과 육아 육견 및 모든 사회적 생활을 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셋 있었다.
1. 집에서 포켓 스탑이 두 개, 때로는 세 개가 잡혔다. 5분 간격으로 포켓 스탑이 충전되므로 포켓볼이나 아이템이 마를 날이 없었다. 포켓볼은 늘 100개 이상 들고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틈날 때마다 수집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던 것을 제외하면 야외에서 이동하며 모은 아이템의 개수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2. 제노와 하루에 두 차례 산책을 다녀오는데, 오가는 산책로에 포켓 스탑이 약 스무 개쯤 있어서 30분쯤 산책을 가볍게 다녀오면 스탑을 대략 3~40개는 찍고 돌아오게 되었다. 포켓몬들을 잡느라 열 걸음 스무 걸음마다 멈춰 서야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을 잘 맞춰나가면 학원이나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포켓몬의 출현율을 높이기 위해 유료 아이템을 온 데 다 걸어두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포켓볼을 던지고 잡고를 반복하곤 했다.
3. 제노와 산책을 두 번 나가면 한 차례는 꼭 조깅을 하기 위해 약간 거리가 있는 공원에 들르는데, 이곳이 포켓몬의 숨은 명지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포켓몬 앱을 켰다가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포켓 스탑이 오밀조밀 수도 없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공원에 들어갔더니 성인 남성 여성 5~6명이(영하 10도였다) 조형물 아래에 모여있길래 뭔가 했더니 다들 열심히 포켓볼을 돌리며 그때 출현한 신뇽을 잡고 있었다. 나도 합류해 열심히 잡았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면 포켓 스탑을 약 40번~50번 정도 찍고 나오게 되었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집에서 시간 날 때 스탑을 건드려 필요한 자원을 모을 수 있고, 제노 산책을 두 차례 다녀오면 최소 50~ 최대 150 차례 포켓 스탑을 건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포켓몬 GO를 하기엔 그야말로 천혜의 환경이자 완벽한 일상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반려 동물이나 허스키 제노 이야기가 보고 싶어 오신 분들에게 매우 죄송하게도 지루하고 복잡한 포켓몬 GO 앱과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게 되었다. 다만 포켓몬 GO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들이 지금부터 등장할 제노의 이야기를 잘 와 닿지 않는 뜬구름처럼 느끼지 않으셨으면 해서, 최소한의 배경 설명에 할애를 하다 보니....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포켓몬 GO 시작 뒤 엿새 째, 미련 없이 포켓몬 GO 앱을 삭제했다.
자, 한번 상상해보자. 포켓몬스터 한 마리가 등장하여 핸드폰을 꺼내 터치하고 녀석을 상대하여 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0초~1분이다. 제노와 함께 산책하는 시간이 한 시간이었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잡은 포켓몬의 수를 따져보니 총 38마리였다.
쉽게 말해 녀석과 함께하는 산책시간 60분 중 최소 20분, 최대 40분 동안 나는 길을 가다 멈춰 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처럼 신나서 달려 나가던 제노는 영문도 모른 채, 나의 "기다려! 제노! 얌전히 있어!" 하는 외침을 들으며 우두커니 앉아서, 혹은 서서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제노 녀석이 느낄 의아함에 대해 아무런 의식도 하지 못했다. 밖에 데리고 나와서 배변과 배뇨를 마쳤고, 바깥공기를 충분히 쐬며 긴 거리를 걸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여긴 것이다. 그러나 제노는 신이 나서 달려 나간 바깥세상에서 열 걸음, 스무 걸음마다 멈춰 세우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아빠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는 제노와 조깅을 하다가도 헤드폰을 통해 들리는 포켓몬의 등장 소리에 화들짝 놀라 멈춰 핸드폰을 꺼냈고, 제노가 가장 좋아하는 공원 풀밭 위에 올라가서도 녀석과 놀아주기는커녕 수많은 포켓 스탑들 사이를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까 고민하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가상 세계의 예쁘장한 애니메이션으로 이루어진 '몬스터'들을 터치한답시고- 현실 속에 멈추어 서 있는 내 두 다리만, 휴대폰 화면만을 들여다보는 내 두 눈만, 그리고 열심히 몬스터 볼을 돌리고 있는 내 손가락만 오매불망 바라보고 있는 진짜 나의 털 뭉치 몬스터와 싸늘한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포켓몬 GO에 빠져 근처의 공원이 어쩌니 천혜의 환경이니 떠들어대던 내가 문득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아내의 한 마디였다.
저녁 산책을 다녀와 제노와 산책하는 삶과 포켓몬 GO의 완벽한 궁합에 대해 침을 튀기며 예찬론을 펼치던 내게, 햇살이에게 우유 젖병을 물리고 있던 아내가 웃으며 물었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니 다행이네. 근데 당신이 포켓몬 잡을 동안 제노는 뭐해?"
내 대답은 분명 '얌전히 기다리지', '기다리면서 주변을 킁킁대면서 놀고 있지'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나는 제노와 이른 산책을 나가 또 포켓몬을 켜들었다. 포켓몬을 다 잡고 박사에게 보내느니 뭐니 마무리를 한 다음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는 순간, 옆의 사진에서처럼 우두커니 앉아 내가 하는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가 시야에 확 들어왔다. 분명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노의 처연한 모습과 지난밤 아내가 별 뜻 없이 내게 던진 물음이 한 데 모여 아빠의 정신을 들게 한 것이다.
그날 점심, 나는 포켓몬 GO 앱을 지웠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제노는 영하 8도의 날씨였음에도 아빠와 함께 공원에서 한참 동안 신나게 뛰어놀았다.
어떤 것인지 알았으니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 여전히 공원에는 추운 날씨에도 많은 분들이 두툼한 옷을 껴입고 나와 포켓몬을 잡고 있다. 누군가는 연인과, 누군가는 친구들과, 누군가는 아빠 엄마와, 누군가는 자식과 함께 나와 포켓몬을 잡으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생경하면서도, 그리고 메마른 듯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든다. 다만 내 파트너는 함께 포켓몬이라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종족이 아닐 뿐이며 나는 가상 속 괴물들보다는 현실 속 게으름뱅이 털 뭉치가 더 중요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사실 나 역시 제노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포켓몬 GO라는 시스템에 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하의 날씨에 하루 두 차례 세 차례씩 밖으로 나가 5~10km를 걸을 일도 없었을 것이며, 혹한의 공원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장소라고 여겼을 것이다.
더 이상 핸드폰을 붙들고 있거나 포켓몬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나를 보고 아내가 왜 포켓몬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내 아내이자 제노와 햇살이의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겼다.
"우리 둘이서도 감당하기 벅찬 포켓몬이 현실 속에 이렇게 둘이나 있는데 무슨.."
그렇게 나의 짧은 포켓몬 GO 일기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상기하는 계기를 남기며 'no GO'로 막을 내렸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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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XXV : '허스키를 기른다는 것 (上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