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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Apr 24. 2017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XXVIII

'미세먼지의 습격'


 공기가 심상치 않다. 연신 뉴스에서 공기가 어떻다느니 날이 좋으니 나쁘니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의 농도란 것은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믿을 건 직접 밖에서 숨 쉬고 공기를 느끼는 나 자신의 감각뿐이었다.


 지난 몇 년 새 우리나라의 공기 질은 급격하게 악화됐다. 옛날부터 봄철 황사 정도만 어찌어찌 견디면, 그리고 가끔 대기가 정체되어 도심 스모그가 자욱하게 끼는 날 정도만 제외하면 가시거리가 현격히 줄어든다거나 외출 뒤 기관지가 답답하고 칼칼해졌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날들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미세먼지]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던, 아니 사용할 필요조차 없던 시절이었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리라.


황사만 피하면 청명하기 그지없었던 예전의 봄 하늘,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던 걸까.


 그런데 요즘, 특히 작년 즈음부터는 저 멀리 누운 산의 능선이 또렷하게 보이는 날이 절반으로 줄어든 듯한 느낌이다. 에어컨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하기 전인 4월부터 6월까지는 창문을 다 열어놓고 생활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런데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바깥세상의 시야와 가시적인 대기의 청명함을 가늠하고 그걸로도 부족해 핸드폰의 미세먼지 측정이나 관측 어플을 이용해 실제 바깥 대기의 질을 따진다. 아무리 화면에 뜨는 수치가 낮아도 바깥이 뿌옇고 가시거리가 짧으면 창문을 열고 환기하기에 꺼림칙하고, 아무리 창밖이 맑아도 미세먼지 수치라는 것이 보통 수준 상단 너머에 위치하고 있으면 마음 놓고 창문을 열어젖힐 수가 없게 되었다.


 미세먼지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두 눈을 못 믿고, 정말 결함이었는지 인위적인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난 몇 년간 백령도의 미세먼지 관측소가 실제 먼지 수치의 10분의 1로 측정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기사를 접한 뒤부터는 쉬이 대기 오염도 관측소나 그들의 관측 수치도 믿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모든 것에 대한 불신이 미세먼지처럼 둥둥 떠다닌달까.




 어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해상 기상 예보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듯, 매일 두세 차례 한두 시간씩 허스키를 끌고 밖으로 향해야 하는 내게는 대기 오염도가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출하는 제노 -  이젠 미세먼지가 자욱해도 외출해야 한다는 항목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사실 이제껏 날씨나 기후 등에 크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살아왔다. 비가 내리는 걸 좋아했고, 가랑비 정도는 우산을 쓰지 않고 그대로 맞곤 했다. 제노와의 산책이나 운동도 10m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퍼붓는 날이 아니고서야 빼먹지 않았다. 눈 오는 날은 우비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대신 군용 부츠를 신었다. 제노와 함께 눈밭을 맘껏 뒹굴고 뛰놀 심산으로.


 이런 무감각한 듯한 생활 방식은 지난겨울 내내 지속되었다. 미세 먼지 주의보가 내리거나 수치가 높다고 해도 넥 워머 하나 두르고서는 "아무리 미세먼지가 극성이라고 해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서 뛰고 걷다 오는 게 건강에 낫다"면서 의기양양하게 한참 동안 밖을 누비고 다녔다. 실제로 3월 말 정도까지는 그렇게 생활했다.


그런데,


 미세 먼지 수치가 높고 초미세먼지라는 외계 바이러스 이름 같은 현상까지 겹친 어느 날이었다. 바깥공기는 알 수 없는 뿌연 색으로 자욱했다. 제노 엄마는 내게 예전에 황사 때를 위해 구비해 둔 KF80짜리 마스크가 있으니 꼭 착용하고 나가라고 했다. 마침 제노와 강도 높은 러닝을 할 작정이었던 나는 날도 더워졌는데 답답하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어떻게 뛰라는 거냐면서 제안을 거절하고 제노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약 40분을 달리고 마무리로 15분쯤을 걸으며 산책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제노의 저녁 식사를 준비해주고, 물을 먹이고, 햇살이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낸 뒤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햇살이의 놀이 매트 위에 벌렁 드러누웠는데 그때부터 계속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물을 들이켰다. 이는 몸이 수분을 필요로 하는 갈증이라기보다는 정말 문자 그대로 '목이 마른다'는 느낌이었다. 목이 하도 말라붙고 건조해서 계속해 축여야 하는 느낌이랄까. 계속 물을 들이켜는 와중에 점차 콧속에서도 건조한 매캐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클라이맥스는 눈이 따갑다는 사실도 뒤늦게 인지한 순간이었다.


 주마등처럼, "오늘은 미세먼지에 초미세먼지까지 겹쳐서 하루 종일 환기도 못할 정도였으니 꼭 마스크 착용하고서 제노 데리고 나가요." 하는 제노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자는 아내 말만 잘 들으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산다'는 말의 신봉자였던 내가 광신자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가벼운 표현들로 써내려 왔지만 사실 문제는 심각했다. 앞으로도 제노를 데리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야외를 돌아다닐 텐데, 그러한 일상 속에서 미세 먼지라는 것은 딱히 피할 수 있는 방도가 없는 일종의 화학무기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제노 엄마, 햇살이와 제노까지 다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가야 하는데 이대로 무턱대고 산책을 다니다가는 담배도 안 피우는데 기관지나 폐에 문제가 생겨 수명이 단축될 것만 같았다. 계속해 물을 들이켜고, 코를 풀고, 따가운 눈을 비비는 자신을 바라보며 정신이 번쩍 든 것이었다.


 

너희가 곁에 있는 한 아빠는 아파서도 안 되고, 아플 수도 없고, 아플 리도 없단다.




 이젠 통합대기 오염도 수치를 확인하고서 보통 수치 범위의 절반을 넘어가면 무조건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간다. 예전부터 미세먼지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던 시절부터 혼자 공식 인증 마스크를 열심히 착용하고 다니던 친구(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늘 핀잔을 주었는데 막상 실감을 하고 나니 물불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에게 올바른 마스크 착용법 강의도 듣고, 어떤 마스크를 사용해야 하는지도 조언을 들었다. 무조건 식약처 허가를 받은 KF 80이나 KF 94짜리 마스크를 귀에 걸치는 것이 아닌 동봉된 고리를 이용해 머리 뒤쪽으로 고정해야 효과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콧등 부분의 와이어가 완벽하게 밀착되도록 조절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일상생활, 제노와의 산책을 위해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구비해두는 것이 고정지출로 자리를 잡고 말았다. 공식 인증 마스크, 일회용임에도 정말 비싸다. 도저히 나갈 때마다 새걸 뜯을 엄두는 나지 않아 미세 먼지 농도가 높은 편인 날 하루 한 개씩 소비한다. 아침에 쓰고, 저녁에 쓰는 것 정도야 괜찮겠지, 하면서.


 정말 슬픈 현실이다.


꽃이 피었는데 미세먼지도 함께 피었다.




 요즘은 주말이 되면 눈뜨자마자 커튼을 걷고 육안으로 날씨를 확인한다. 미세먼지 수치까지 확인하여 햇살이와 제노까지 데리고 나가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들면 제노 엄마와 나의 아침은 8배속으로 분주해진다. 날씨가 좋다는 것, 그리고 대기오염도가 심하지 않다는 것은 녀석들을 데리고 무조건 봄나들이 산책을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볕과, 꽃과, 싱그러운 새순의 내음, 그리고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선사하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일 테니까.


오랜만에 청명한 날, 이제는 제법 푸른 잔디로 뒤덮이기 시작한 공원에 나와 공놀이하는 햇살이(드리블을 정말 잘한다)


조금은 바보같은 표정의 우리 털북숭이..... 아들..


 아이용 마스크를 준비하고 반려견 전용 마스크를 준비하고 싶어도, 끝없이 헤어밴드나 머리핀을 집어던지는 햇살이에게도, 끊임없이 냄새를 맡고 더운 날일수록 혀를 길게 늘어뜨려야 하는 제노에게도 현실성 있는 방안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이 좋으면 무조건 급 준비와 함께 외출, 최소한 두어 시간을 뛰놀다가 아이들이 지쳐 더 이상 놀 수 없다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하면 귀가한다. 한 주 동안 가장 즐거운 시간이자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주말이면 제노 엄마도 나도 우울해진다. 한 해 중 4월에서 6월까지, 9월에서 10월까지는 야외 활동을 충분히 즐기자고 다짐한 우리에게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뼈아픈 복병이다. 아울러 황사만 피하면 되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우리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이러한 환경에서 커 가야 한다는 사실에 크나큰 미안함도 느낀다. 요즘 들어 주변에서, 특히 자녀가 있는 가정들에서 '다 집어치우고 외국으로 뜨고 싶다'는 표현을 자주 접한다. 다른 여러 가지 요소도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도저히 피할 도리가 없는 대기 오염, 즉 미세먼지다. 공기 오염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소위 대국이라 불리는 어느 나라의 정부에는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고, 대책이라느니 원인이라느니 분석한 것이 우리나라 화력 발전소의 난립 문제라느니 고등어구이 탓이라느니 같은 되지도 않은 소리만 하고 있다.


'우리 아이에게 이런 공기를 마시게 하면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 부모가 노력한다고 어떻게 해소할 수 있거나 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은가.'


 다른 나라에 가 봤자 총기나 마약, 테러가 횡행할 텐데 그래도 여기가 낫지 않나 하는 내 물음에 돌아온 답은, "그런 건 조심하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어. 적어도 맑은 공기를 들이쉬면서 살 수는 있을 거 아냐."였다. 아빠로서,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봄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유모차에서 곤히 잠든 햇살이가 충분히 휴식하고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 (나이키 광고는 절대 아닙니다..)




 부모가 되고부터 하루하루 아이가 커 갈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부모가 되고부터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고민이 깊어진다.

 부모가 되고부터 눈앞에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면서도, 녀석이 앞날에 겪을 일들을 걱정한다.


다 각자의 시대가 있고, 세대가 있고, 또 삶의 방식이 있는 거라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일반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부디 모든 것이 조금이나마 지금보다는 나은 방향을 잡아, 제노도, 햇살이도, 그리고 모두가 더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야외에서 봄날과 가을날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흥. 미세먼지의 습격 따위.


햇살이의 손에 쥐어진 것이, 조금 더 나은 내일로의 씨앗이기를-




다음 글 예고


ⅳ : 제노의 인생템 (시베리안 허스키를 위한 물건들을 소개합니다)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XXIX : 유기견을 만나다

※ 원래 28회차 연재 예정이었으나 사진 파일 준비 관계로 29회 연재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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