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같았으면, '
'원래 같았으면,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은 그 자체로 행복이지만 어쩐지 늘 예측 가능한 삶이란 어딘가 심심한 느낌이 든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이 카페에 들어오지 않았을 텐데. 원래 사려던 책은 이게 아니었는데. 원래 같았으면 그날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을 텐데. 약간의 푸념처럼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대한 원망처럼 들리기도 할 것이나 가끔은 예상치 못한 좋은 상황을 맞이했을 때 쓰이기도 한다. 원래 같았다면 떨어져야 했을 시험인데. 원래 같았다면 너랑은 친구가 되기 어려웠을 텐데, 처럼.
좋은 상황, 나쁜 상황을 다 떠나서 '원래 같았으면, '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화자가 현재 예상치 못했던 공교로움 속에 놓여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우직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답다. 하루하루를 즉흥적인 느낌에 맡기며 아무 계획 없이 살아가는 삶도 아름답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치밀하게 세운 계획이 틀어졌음을 깨달았을 때 너털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 계획 없이 살다가 예상치 못한 위기에 봉착해 거대한 계획을 적당히 세우기로 결심하는 사람이다. 어쩐지 약간은 자포자기한 듯한 허둥지둥의 순간이, 가장 인간다운 느낌이 들어서 좋다.
지난 5월 초, 이른바 황금연휴가 있었다. 특별히 어디에 놀러 갈 만한 상황도 아니고 기묘한 징검다리 형식의 연휴인 탓에 우리 가족은 거대한 계획보다는 소소한 소풍과 나들이들을 계획하고 있었다. 제노 엄마는 봄날에 기뻐하며 연휴에 사용할 나들이용 돗자리도 주문해놓은 채였다.
그런데, 우리는 연휴 내내 단 한 차례도 나들이를 나가지 못했다. 그 흔한 산책마저 30분 단위로 마치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연휴 내내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가 휘몰아쳐 방진 마스크를 착용하고도 도저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의 대기질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연휴 막바지 즈음 지난 7일간의 평균 통합대기 수치를 확인했더니 무려 338이었다. 방독면이 필요할 정도로 오염된 공기가 한반도를 훑고 지나간 것이었다. 하필 그것도, 연휴 시작 전날부터 연휴 마지막 날까지.
되는 대로 햇살이는 실내로 데리고 다니며 어떻게든 놀아줄 수 있었지만 야심차게 제노와 놀아줘야지 하고 계획했던 모든 나들이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 나 버렸다. 연휴 내내 30분씩 함께 산책과 배변을 하러 나갈 때마다 미세먼지 어플을 체크하면 나름 괜찮을 때엔 250에서 나쁠 때는 400까지 통합대기 오염도 수치가 치솟았다. 제대로 환기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바깥세상은 우리와 전혀 무관한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마스크를 전혀 착용하지 않은 사람도, 그런 대기 상태에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공원에서 노는 가족들도 보였다. 뭐, 사람마다 각자의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고 삶의 방식과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니 이 이상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어쨌든, '원래 같았으면' 즐겁고 행복했어야 할 연휴가 답답하고 매캐한 공기로 가득했다. 억지로 산책을 길게 하며 운동을 격렬하게 시키자니 제노 역시 오염된 공기에 치명적인 해를 입을 수 있었다. 반려견의 경우 밖에서 활동을 할 때 인간보다 호흡량이 약 1.5배가량 많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보다 더 많은 오염물질을 마시고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산책을 하는 이유가 맘껏 뛰놀고 냄새를 맡게 해주기 위함인데 억지로 맞는 마스크를 씌우고 나가봤자 별 의미도 없다. 사실 반려견 마스크라는 것이 존재한다 한들, 제노같은 털북숭이에게는 똑바로 밀착시켜 착용시킬 수 있을 리도 없다. 나만 해도 면도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끈을 세게 조여도 마스크가 고정되어있기 어려운데 온몸에 털밖에 없는 녀석 위에서는 마스크가 아마 둥둥 떠다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연휴만큼은 '원래 같았으면'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진정 승자는 이 죽음의 공기를 벗어나 해외에 나갔던 분들이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연휴 막바지 즈음에 이르러 반가운 비 소식이 있었다. 연휴 내내 지구가 반대 방향으로 잠시만 자전해주거나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거의 기우제를 지내고 있던 나는 저녁부터 내린다는 비 소식에 오전부터 제노와 나의 우비를 정비하면서 이를 갈고 있었다. 비에 젖어도 좋으니 제노와 멀리까지 나가서 맘껏 뛰놀고 오자는 마음이었다. 비에 젖을 작정이면서 왜 우비를 챙기느냐고? 엄청난 황사와 미세먼지 직후의 비가 그리 맑은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노 역시 저체온증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흠뻑 젖은 녀석을 완전히 건조하는 데 걸리는 두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사실 제노와 빗속을 3~40분씩 누비다 보면 바닥에 고인 물이 튀고 옆으로 들이치는 빗방울로 인해 제노나 나나 절반은 흠뻑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좋아하는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God is in the rain." 이 구절이 등장하는 장면은 주인공 여성이 고난과 역경을 가까스로 견디어 내고 자신의 가장 큰 두려움을 극복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호흡곤란에까지 처했던 이 여인은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바깥공기를 쐬고 싶다고 말하고, 또 다른 주인공이 그녀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발코니로 데려간다. 그녀는 자신에게 코트를 둘러주려는 제의를 무시하고 빗속으로 한 발짝 나아간다. 그리고는 빗속으로 걸어 들어가 양 팔을 하늘로 벌리고 마음껏 빗방울로 대변되는 세상을 만끽한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주인공은 과거 자기 자신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되찾으며 양팔 벌려 포효했던 불구덩이를 떠올린다.
연휴 마지막 날 내리는 비에 흠뻑 젖는다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그들이 겪었듯 갑갑하고 매캐한 나날들의 끝에 내리는 빗방울을 만끽하며 앞으로 새로운 날들이 펼쳐지기를 고대하는, 일종의 의식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에 반전이 있다면,
그날 저녁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저녁이 오기 전에 소나기가 한 차례 지나가버렸다. 철저히 준비한 제노와 내가 우비를 뒤집어쓰고 밖에 나갈 무렵에는 이미 빗줄기가 멎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공기가 조금 나아졌나 싶어 확인해보니 통합 대기 지수는 100대 초반으로 떨어져 있었다. 우비를 껴 입고 제노 엄마의 성화에 마스크까지 단단히 착용하고 시커먼 우비로 뒤덮인 거대한 개를 끌고 밖을 나다니는 모습은 아마 볼만 했을 것이다. 다만 휴일 내내 황사가 심했던 데다가 비 소식까지 더해져 제노와 내가 걷는 수 십 분간 마주친 행인은 거의 없었다.
습하고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서 통풍이 전혀 되지 않는 우비를 뒤집어쓰고 방진 마스크를 착용한 나는 완전히 땀에 절어서 귀가했고, 우비를 뒤집어쓴 제노 역시 더위와 습기에 헥헥거리며 함께 돌아왔다. '원래 같았다면' 우리는 기분 좋게 비에 젖어서 돌아왔어야 했다. 정말이지 '원래 같았다면'이라는 말에 끝없이 배신당하는 기분이었다.
우리 가족의 연휴 계획은 원래 같았다면 완벽한 황금휴가여야 했으나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해 폭삭 망해버렸다. 이에 크게 실망해 '원래 같았다면'이라는 불확실성에 대한 기대의 감정을 더 이상 좋아하지 말까 고민도 해 보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번 연휴가 조금 어긋났을 뿐 지금까지의 삶은 모두 '원래 같았다면'하고 생각하던 순간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다시 깨달았다.
원래 같았으면 이번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연재 내용은 30회차로 예고해두었던 '알로페시아 X'에 관한 내용이었어야 했다. 다만 돌연 정해둔 대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규 회차도 특별편도 아닌, 원래 같았으면 없었을 즉흥적인 제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두서없고, 흘러가는 느낌이지만 부디 독자분들께서는 필자의 괴상한 변덕이구나, 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주시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진짜 다음 글 예고
ⅳ : 제노의 인생템 (시베리안 허스키를 위한 물건들을 소개합니다)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XXX : '알로페시아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