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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Jan 15. 2017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특별편 ⅲ : 너의 이름은,


  "제노!"

하고 부르면 귀가 쫑긋! 하면서 푸르고 커다란 눈으로 아빠를 올려다본다.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견딜 수 없는 아이처럼 모든 감각을 곤두세운 것이 느껴진다. 


아... 아무 이유 없이 불렀는데...;;


 작년부터 제노의 목 관절이나 근육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하네스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하네스의 양옆엔 벨크로 찍찍이가 달려 있어 패치나 야광 스카치 등을 부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굳이 그런 패치를 사거나 이용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벨크로에 온갖 나뭇잎과 이물질이 들러붙는 상황이 반복됨에 따라 하네스를 살 때 함께 온, 하네스 브랜드 이름이 크게 박힌 패치를 달고 제노와 외출을 하곤 했다. 문제는 몇몇 분들이 옆에 달고 다니는 하네스 브랜드 이름이 제노의 이름인 줄 알고 강아지의 이름이 줄리우스냐고 물어오는 데 있었다. 


 반려견을 열심히 산책시키는 분들이라면 상당수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이겠지만 하루에 두세 번씩 산책을 다니다 보면 제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을 수도 없이 많이 만나게 된다. 대화의 내용은 주로 1. 이름이 무엇인가 2. 종은 무엇인가 3. 성별은 무엇인가 4. 실내에서 기르는가(대형견일 경우) - 로 압축된다. 요즘 같은 혹한기나 지난여름 같은 혹서기에는 얼른 산책과 배변을 마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늘 반복되는 질문과 답에도 조금은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 개는 줄리우스가 아니에요, 제노랍니다. 그리고 남자아이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이름표를 만들어 붙여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좀 더 잘 찍고싶었으나,,, 정말이지 요즘은 너무 춥다......


 다행히 손재주가 좋은 제노 엄마의 동생, 다시 말해 처제가 박음질 공예(?) 자수 공예(?) 미싱... 공예(?)..... (미안.... 형부가 잘 모르겠다..)에 일가견이 있어 그쪽의 반려견 사료를 제공하고 제노의 이름표 제작을 의뢰하는 거래가 성사되었다. 영문 글자체와 사이즈만 정했을 뿐인데, 아무튼 공예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처제는 독자적인 센스를 발휘하여 꿀벌과 수컷 기호까지 이름에 포괄시키는 걸작을 완성시켜주었다. 베이스는 무려 진(청바지)소재!....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 바느질의 세계에는 진정한 무뇌한이자 문외한이다...


 제노의 이름표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하네스를 바꿔 착용할 때도(추후의 글에서 언급하겠지만 근거리 산책용과 장거리 산책용이 있다 - 사실 쓸데없다) 꼭 떼어다 붙이고 외출하곤 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제노의 이름을 묻고 성별을 묻는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젠. 이름표가 예쁘니까! 


요즘은 날이 너무 춥다. 아침과 저녁의 산책을 나갈 때면 하의로는 내복만 두벌을 껴입고 상의로는 세벌을 껴입고, 넥워머에 두꺼운 비니 모자에 헤드폰으로 귀마개, 장갑까지 착용해야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올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을 열고 나가면, 뼛속까지 얼얼하게 만드는 차가운 공기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제노는 급 흥분하여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데도 늘 상쾌하고 즐거운가보다. 하긴, 나 또한 매일 반복되는 일상임에도 늘 얼어 죽을까 봐 두려우니..




방금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이상한 놈이..


제노는 아주, 매우, 극렬하게 잘 지내고 있다. 물론 소소한 문제들은 있었다. 어디서 간식을 잘못 받아먹는 바람에 피부에 발진이 올라와서 무릎 쪽의 털을 탁구공만큼 밀어내고 치료를 해야 했다거나, 원래 먹던 사료에 질려 새로운 사료에 도전했더니 다음날부터 눈물을 줄줄줄 흘리는 멀라이언처럼 되는 바람에 원래 사료로 돌아와 최적의 배합을 고민해야 했다거나, 말라뮤트 친구랑 너무 신나게 뛰어놀다가 발톱이 한 개 아작 났다거나... 뭐.. 이 정도면 평화롭다. 평화로운 편이라고 봐야 한다. 


요즘 들어 갓 돌을 넘긴 딸내미가 제노를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 제노뿐만 아니라 제노를 닮은 허스키 인형을 두 개씩 들고 제노를 쫓아다니고, 아빠가 간식 주는 장면을 보고서는 간식 봉지를 열지도 않은 채 꺼내는 시늉을 해서 제노에게 손을 들이민다거나, 어디로 사라졌나 해서 찾아보면 제노 털을 뜯고 있다거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제노 엄마와 나는 참 뿌듯하고 뭉클하게 느낀다. 아기나 다름없는 녀석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면서 함께 유대를 형성해가는 모습이 참 따뜻하게 느껴져서. 물론 큰 개와 아이를 함께 양육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선 추후에 따로 글을 적을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제노는 무사하고, 제노 아빠인 나도 좀 춥지만 무사하다. 

근황을 전하는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특별편은 이 글을 마지막으로 마치려 한다. 

제노에 늘 관심을 가져주시고 큰 사랑을 베풀어주는 분들께, 여기까지 관심을 가져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특별편을 마무리해야했다. 


상당히 긴 시간, 여러 가지 변화를 맞이하고 안정을 찾고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필요했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제노에 대한 또다시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하나둘씩 다시 샘솟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어질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제 2부는 오는 28일의 제 22화를 시작으로 매 8일, 18일, 28일에 연재될 예정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은근히 스케줄에는 철저하니,,,, 휴재나 밀리는 일은 없을 가능성이 높을 거라 믿는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마도). 물론 몇 회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어버버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제노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 같으니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 : 제노랑 셀카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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