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행복과 불행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바로 얼굴이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얼굴 표정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다채로운 표정의 변화가 오직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야생 동물이나 반려견에게 있어서는 꼬리를 흔들거나, 짖거나, 으르렁거리거나, 눈을 꿈벅거리는 정도가 감정이나 의사 표현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반려견의 입양 전/후를 비교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가정에 입양되기 전 사진들은 하나같이 슬프고 기운 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반면, 가정에 입양되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반려견들의 표정은 이전의 사진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해맑고 밝아보였다.
표정도 표정이지만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바로 반려견의 '눈빛'이었다. 위의 기사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나는, '과연 제노도 우리 곁으로 오기 전과 후의 표정이 달라졌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서 제노 군은 세상에 싫은 것 따위 존재하지 않는 오로지 양(陽)의 기운으로 충만한 꼬마 남자아이다. 하지만 막상 되짚어보니 제노와 처음 만난 뒤 누군가에게 그 만남에 대해 언급하면서 '깊고 슬픈 눈을 가진 녀석'이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지인도 눈이 참 슬퍼 보인다고 대꾸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부터 나는 수천 장에 달하는 제노 연대기급 분량의 사진첩을 뒤져대기 시작했다.(대기권 돌파 속도로 지나가버리는 시베리안 허스키 어린 시절의 소중함에 대해 주변에서, 그리고 책에서 닦달해댄 덕에 어릴 적 제노의 사진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동시에 참 아련한 점은, 아무리 많아도 그 사진의 수가 앞으로 더 늘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일단 애련하고 안타까웠던, 우리 품에 안기기 전 제노의 눈빛을 보자.
제노와 만난 첫 며칠간(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결정을 내리고도 데려오기까지는 일 주일 정도 시간이 걸렸다) 찍은 사진들은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슬픈 표정뿐이었다.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스트레스, 불안정하고 어수선한 주변 정황, 누구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 이는 마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신생아처럼 보였다. 물론 당시 우리는 마냥 신이 나 있어서 제노의 표정이나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못했다. 게다가 제노의 밝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저 '어린 녀석 주제에 깊고 우수에 찬 눈을 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철없이 좋아했다.(반성, 또 반성)
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 더 어렵게, 조금 더 소중하고 신중하게 제노의 표정과 눈빛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하루 이틀 정도 더 일찍 곁에 데려왔을 거란 생각은 들지만 크게 달라졌을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제노는 분명 웃으면서, '지난 일? 그런 건 다 잊었으니 놀아주세요!'하며 달려들 테니까.
깊은 우울로 가득하던 제노의 눈은 우리 가정에 합류하면서 점차 그 음영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사진첩을 훑어보기 전까지도 우리는 제노의 눈빛, 표정 변화에 대해 깊이 있게 인지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점점 나아졌던 것 같아' 정도로 자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신없던 당시를 떠올려 보면 그처럼 아주 미묘한 차이를 짚어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첫 2~3주간 제노의 눈빛은 '슬픈 눈'에서 '무심한 눈' 혹은 '무표정한 눈'으로 점차 변해갔다. (푸른 눈동자를 갖고 태어난 시베리안 허스키의 눈동자는 어릴 때에는 짙은 사파이어 색이었다가 점차 성장하면서 밝은 하늘색으로 변해간다)
굳이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더라도(솔직히 많이 안으로 굽었다. 나도 안다....) 어릴 적 제노는 참 예뻤다. 품에 안겨 올려다보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제노도 안겨 있는 걸 참 좋아해서 아침에 출근하기 전이나 퇴근한 다음 30분씩, 길게는 한 시간씩 안아주곤 했다. 팔이 저려서 더 이상 안고 있을 수가 없을 때에야 내려주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해 오히려 속상하다. (당시 생후 2개월에 데려온 제노는 몸무게가 이미 6kg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과 습관 때문인지 현재 23kg에 육박하는 제노는 아직도 안기는 걸 좋아한다. 번쩍 들어 올려 안아주다간 이젠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아주지 못하지만 바닥이나 소파에 앉아 무릎 위에 제노를 올려놓으면 내려갈 생각을 안 한다. 제노의 체온은 약 39도이다. 푹신푹신하고, 따뜻하고, 마치 솜이불로 포장된 느낌의 쌀 한 가마니가 무릎 위에서 새근대면 나는 늘 잠에 빠지고 만다. 어제도 제노를 안고 있던 나는 여지없이 잠이 든 채로 엄마에게 발견됐다.
제노가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무표정하지만 그래도 가끔 만족스러운 상황에는 놀라우리만큼 밝고 쾌활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백신 접종이 끝나지 않아 야외 외출은 자제했지만 열심히 놀아준 다음, 밥을 실컷 먹고 난 다음에는 눈빛도 표정도 맑아졌다. 눈빛과 더불어 우리에 대한 제노의 반응과 열정이 점차 커져가던 시절이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있을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편안하다'와 같은 심적인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듯했다. 표정과 눈빛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그 여유가 우리의 눈에, 그리고 카메라 렌즈에 포착되기 시작했다.
잠자는 모습이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이라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물론 똑같이 잠이 들어 있을 뿐이지만 어쩐지 더 평화롭고 기분 좋게 자는 듯한 모습이어서 참 기뻤다.
모든 것을 좋아하는 제노는 드디어 우리를 '극도로' 좋아하기 시작했다.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사고를 치던 시기이긴 하지만 마치 뜨거운 모루 위에서 담금질을 해야 좋은 물건이 탄생하듯 제노와 우리의 관계도 지속적인 조율과 적응, 이해 속에서 더욱 깊어져 갔다(좋게 표현해서 담금질이지 끝없는 분노와 진정의 연속이었다). 별의별 희한한 표정과 제스처, 버릇과 장난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이제 너무 편안해졌다'는 느낌이랄까?
'웃는 얼굴 뒤에 칼을 갈고 있다'는 말은 적어도 반려견의 세계에서만큼은 통용될 수 없는 표현이다. 그들은 애써 행복을 가장하지도, 불행을 감추지도 않기 때문이다. 동전을 넣으면 그에 합당한 가치의 상품이 떨어지는 자판기처럼, 우리가 쏟아붓는 애정과 관심이 제노의 눈빛과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동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운 자연의 질서다.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종을 개량하고 수천 년에 걸쳐 보전해 낸 추크치 족에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고 한다.
이승을 떠나면 우리는 천국의 문 앞에 당도하게 된다. 그 문은 우리의 개(시베리안 허스키) 두 마리가 지키고 있다. 만일 삶에서 자신의 개들에게 친절과 따뜻함을 베풀었다면 그 개들의 환영을 받아 천국에 입성할 것이지만, 무자비하고 잔혹한 행위만을 개들에게 일삼았다면 영원히 천국의 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이승과 저승을 논하기에 한참 앞서, 우리는 어쩌면 이미 반려견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매일같이 자신의 하루하루를, 동반자에 대한 진심과 자세를, 세상이 바라보는 가면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이미 심판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 글 예고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Ⅵ : '구전'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