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전'
그동안 연재해 온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를 한 차례 훑어보니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러쿵 저러쿵 여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척 하면서 결국엔 '우리 예쁜 제노 우쭈쭈'하는 내용이었다는 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제노가 아닌(물론 포함되지만)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매력적인 견종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부제가 '구전'이라 하여 꼭 설화나 민담처럼 오래 된 이야기만을 전하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시베리안 허스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 종의 유래, 흥미로운 일화 등을 함께 소개하여 이 견종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조금이나마 풍요로워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첨부되는 시베리안 허스키 사진들은 저작권 탓에 우연히 가장 가까이 있는 시베리안 허스키, 제노를 모델로 할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해 주시면 좋겠다 ㅎㅎㅎ)
흔히 우리는 시베리안 허스키 견종을 두고 간편하게 '허스키'라고 부른다. 외국에서는 허스키, 혹은 '사이베리안(발음상)'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추크치 족이 품종을 개량하고 보호하던 긴 역사 안에서 불리던 고유의 이름이 있을 터이지만, 차르 정권이 유목민인 추크치 족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그 이름도, 종(種)도 눈보라에 묻혀버렸다.
오늘날 이 견종을 일컫는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시베리아에서 온 견종인데 어린 나이부터 짖어대는 소리가 다른 견종들에 비해 매우 굵고 '허스키'하다고 하여 허스키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다.
두 번째 설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미국인들은 알래스카 지방의 에스키모들이 기르던 개들을 두고 '에스키(eskie)'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런데 시베리아에서 추크치 족의 개들이 새로 들어오면서 본래 에스키모들이 기르던 거대한 썰매개들과 구별할 단어가 필요해졌다. 그 결과 '시베리아에서 들어온 에스키모들의 개'라는 의미를 담은 '시베리안 에스키'로 불리다가 점차 발음의 편의상 '허스키'로 변화,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두 번째 설이 보다 정확한 '시베리안 허스키'의 어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 시베리아 태생의 견종이 미국에 가서 이름을 얻게 된 것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추크치 족이 차르 정권에 희생되는 과정에서 오늘날 시베리안 허스키라 불리는 견종에 관한 모든 역사적 자료와 전통이 개들과 함께 제거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시베리안 허스키를 볼 수 있는 것은 추크치 족의 뛰어난 썰매개들에 깊이 매료된 당시 알래스카 상인들이 그 개들을 북미 대륙으로 들여놓았던 덕분이다. 그때 북미 대륙으로 수입된 개들이 바로 현존하는 모든 시베리안 허스키의 뿌리이며, 이들이 '시베리안 허스키(Siberian Husky)'라는 정식 명칭으로 등재된 것은 19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시베리안 허스키의 기원은 시베리아 북쪽에서 생활하던 추크치 족이 썰매개, 즉 사역견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전통적으로 수렵, 유목에 기반을 두고 있던 추크치 족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견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3,000년에 달하는 오랜 세월에 걸쳐 품종을 교배, 개량했다. 그 결과 적은 양의 음식만으로도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으며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오늘날의 시베리안 허스키가 탄생했다. 오늘날 시베리안 허스키의 털이 짧고 곱슬거리는 내측모와 길게 내뻗은 외측모로 구성된 이중모 구조를 띄고 있는 것도 추크치 족이 끊임없이 개량한 결과이다. 외측모가 지나치게 길거나 곱슬거리면 수분이 엉긴 채 얼어붙어 저체온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내, 외측모의 길이와 그 모질까지도 계산하여 품종을 개량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종의 체형과 그 구성 비율 하나하나까지도 최고의 썰매개 혈통을 유지하고자 추크치 족이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결과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상당히 부자연스럽고 잔인한 유전자 조작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당시 추크치 족과 시베리안 허스키들은 시속 150km의 바람이 불고 섭씨 영하 70도를 넘나드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생존해야 했다. 부족과 개는 서로에게 있어 생존 수단이자, 동반자이자, 가족이었다. 실제로 대기근이 찾아와 수많은 이들이 아사하고 개들 역시 거의 대부분 굶어 죽어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살아남은 강아지가 전 부족에서 단 두 마리뿐이었는데 (이 강아지들이 오늘날의 시베리안 허스키로 이어진 것이다!), 추크치 족 여인들이 발 벗고 나서서 모유를 물려 살려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들 간의 유대란 감히 오늘날의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견종의 역사는, 만일 추크치 족의 역사와 같다고 본다면 최대 3천 년이며, 최소로 잡아도 어림 잡아 수백 년이다. 시베리안 허스키와 함께한다는 것은 대자연의 역사가 그대로 담긴 존재와 함께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추크치 족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에 걸맞은 개를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새끼들이 태어나면 가장 뛰어난 체형과 성격, 지능을 가진 암컷과 수컷 한 마리씩만을 골라 무리로부터 떼어낸 다음 가장 좋은 먹이와 훈련을 제공하면서 가장 왕성한 시기를 골라 교배시켰다. 이 선별 과정은 마을 장로에 의해 매우 엄격한 감독하에 이루어졌으며 교배용으로 선별되지 못한 자견들은 곧바로 중성화해 사역견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러한 순혈 보호와 품종 개량이 추크치 족 내에서만 적게는 수백에서 길게는 수천 년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시베리안 허스키'라고 불리는 견종의 역사와 독자적인 개체성이 얼마나 확고한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봄이 찾아오고 계절이 따뜻해지면 시베리아 북방 민족인 추크치 족에겐 개들을 먹여 살릴 식량이 부족해졌다. 때문에 봄이 오면 새끼들을 제외한 모든 부족의 개들을 일거에 들판 위에 풀어놓고 스스로 생존할 길을 찾게 했다. 첫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져 사냥감이 부족해지면 살아남은 개들은 하나 둘 부족의 거주지로 돌아왔다. 그들은 그렇게 돌아온 개들만을 데리고 다음 겨울을 났다.
이처럼 한 해의 반 가까이는 스스로 대자연 속에서 생존하고, 나머지 반은 인간의 품 속에서 삶을 찾았던 허스키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야생에서의 처절한 생존 본능을 함께 갖추게 되었다.
추크치 족의 썰매개가 알래스카의 상인들을 통해 처음 북미 대륙에 소개되었을 때, 북방의 목양견 사모예드나 사역견 알래스칸 말라뮤트와 같은 거대하고 육중한 견종들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시베리안 허스키를 두고 '시베리아 시궁쥐'라고 놀려댔다. (실제로 시베리안 허스키는 성견이 되어도 20~25kg 정도이지만 알래스칸 말라뮤트는 50~60kg, 사모예드는 30kg에 육박한다)
그러나 조롱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베리안 허스키만으로 구성된 개썰매 경주팀이 제대로 된 준비나 훈련 없이 첫 출전한 경주에서 8팀 중 3위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알래스카 전체, 나아가 북미 대륙의 개썰매 경주 대회는 점차 허스키의 독무대가 되어갔다. 당시 북미 동부를 주름잡던 아더 월든이라는 남자는 평균 45kg에 달하는 마스티프종들로 이루어진 당대 최강으로 불리던 개썰매 경주 팀을 꾸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어부, 레온하르트 세팔라라는 남자의 시베리안 허스키 경주팀에 무참히 패배했다. 당시 세팔라가 데려온 허스키들의 평균 몸무게는 18~23kg밖에 나가지 않았다.
비밀은 체격에 있었다. 마스티프나 말라뮤트종이 허스키보다 두 배 가까운 중량과 힘을 자랑함에도 심폐 기관과 심장의 크기는 약 30%밖에 크지 않은 탓이었다. 30% 정도 큰 심장과 폐로 두 배 이상 나가는 몸을 지탱하려니 회복에 필요한 휴식 시간은 길어지고, 지구력은 허스키에 비해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시베리안 허스키의 사역견, 썰매견으로서 완벽하리만치 뛰어난 힘과 지구력, 회복력은 오랜 세월에 걸친 추크치 족의 연구와 품종 개량의 결과물이었다.
개썰매 경주보다도 '시베리안 허스키' 종을 더욱 널리 알린 일화가 있다. 오늘날 '발토 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진 디프테리아 백신에 관한 이야기다.
1925년, 미국 알래스카주 북서부에 있는 항구도시인 놈(Nome)에서 세균성 급성 감염 질환인 디프테리아가 창궐했다. 역병이 퍼져나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치료를 위한 혈청이 부족해졌다. 필요한 만큼의 혈청을 구할 수 있는 곳은 600마일(약 966km) 이상 떨어진 도시였다. 작은 항구도시인 놈에는 아직 알래스카 철도가 놓이지 않았기 때문에 혈청을 조달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법은 개썰매를 이용한 운반뿐이었다. 당시 개썰매를 이끌던 세팔라(위의 내용에 등장한 개썰매 경주대회 승자와 동일 인물)는 놈으로부터 약 17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운반 중계 팀과 조우하여 혈청을 전달받았다. 위대한 리드견(시베리안 허스키) '토고'가 이끌던 세팔라의 썰매팀은 곧바로 돌아서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알래스카 빙판을 다시 달렸고, 치료 혈청은 군나르 카센이 이끄는 마지막 운반 중계팀을 통해 놈에 전달되었다. 이 마지막 주자인 카센 팀의 리드견이 바로 그 유명한 시베리안 허스키 '발토'였으며, 오늘날 뉴욕 시의 센트럴 파크에는 당시 죽음을 무릅쓰고 '혈청 운반 장정(Serum Run)'에 참여한 모든 썰매견들을 기리기 위해 발토의 동상이 당당히 서 있다. 당대 최고의 리드견이었던 토고는 그 장정으로 인해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세팔라와 함께 감사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아직도 알래스카의 주도인 앵커리지에서는 놈까지의 개썰매 경주 행사가 펼쳐진다고 한다. 총 거리는 1,100마일(약 1770km)에 달한다고......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견종은 도저히 경비견이나 공격용 군견으로는 쓸 수가 없을 정도로 공격성이 부족하고 친화력이 좋아 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훈련 도중 수색견과 탐지견으로 전향시켰다고 한다. 물론 개체 중에는 사나운 시베리안 허스키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성격이 급하다', '일본인은 내향적이다' 같은 표현이 각국의 모든 국민에게 적용될 수는 없는 일반론과 같다. 헌데 사람을 공격한 사례 수 순위를 보면 압도적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핏불테리어와 로트와일러 아래 5위쯤에 시베리안 허스키가 위치하고 있다. 일반적인 허스키들의 모습과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의아한 결과였지만 여기에는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 허스키를 닮은 믹스견 또는 늑대 믹스견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가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견종으로 묶여 분류된 탓이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허스키가 늑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한때 허스키와 늑대를 교배시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떤 견종이건 간에 야생 늑대의 피가 섞이면 언젠가는 사람이나 다른 동물을 공격하고야 마는데, 문제는 시베리안 허스키와 늑대가 섞이면 이를 순종 허스키와 구분하기 어렵다는 데 있었다. (이는 진돗개의 피가 섞인 진돗개 믹스견들이 일반적으로 강한 영역본능과 방어 본능을 타고나는 것과 비슷하다)
추위에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내에서 생활하는데 익숙해진 허스키의 경우 전기장판 위에 올라가 있는 걸 즐기는 녀석들도 있다. 허스키의 털이 두텁다고 해서 밖에 내버려두면 순식간에 감기에 걸린다. 실내에서 거주하던 허스키가 야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몸을 감싸고 있는 털이 혹한기용으로 바뀌는 털갈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허스키는 추위를 효과적으로 막아주는 이중모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이는 비를 맞거나 물에 젖는 경우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안쪽 털의 빽빽하고 곱슬한 구조로 인해 물이 그대로 얼어붙거나, 젖은 상태가 비교적 오래 지속되어 저체온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산책 중 비에 흠뻑 젖은 허스키를 곧바로 말려주지 않으면 저체온증으로 위험한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야생적인' 외모와는 다르게 시베리안 허스키는 장이 매우 예민하고 민감한 편이다. 우유 성분이 들어간 간식이나 가죽 재질의 껌, 미량의 감미료가 들어간 간식에도 쉽게 토하고 설사를 하기 일쑤다. 간식으로 가장 무리를 일으키지 않으며 좋은 성분은 건조, 혹은 냉동 건조된 생선살이다. 실제로 추크치 족이 기르던 개들은 생선을 주식으로 삼았으며, 생선은 최고급 단백질과 지방을 함유하고 있어 시베리아의 혹한기를 견뎌야 하는 허스키들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주식이었다고 한다. (영화 '에이트 빌로우'에서도 아침 식사로 허스키나 말라뮤트 한 마리당 커다란 연어 한 마리씩을 던져준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짖는 모습을 보기 힘든 견종이다. 인간과 함께 생활한 역사가 긴 탓에 영역 본능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노의 경우만 보아도 우리가 열심히 놀리거나 노래를 부르도록 목을 간지럽혀야만 그 목소리를 들려준다. (산책 도중 만난 다른 강아지가 연신 짖어도 제노는 '멍!' 한 번을 안 한다...) 늑대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하울링을 해대는 시끄러운 견종일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어지간히 외롭거나 두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또 훈련이 잘 된 허스키에게서는 하울링 역시 듣기가 쉽지 않다.
다소 딱딱한 문체로 정보 전달을 위한 글을 쓰다 보니 다소 지루해진 감이 있다. 허나, 나는 앞으로도 제노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갈 예정이다. 그 여정을 위해서는 '제노'라는 개체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편애하기보다는 이 녀석이 탄생하여 이곳 내 발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핏줄, 당위성, 개연성을 짚고 넘어가기 위해 한 페이지를 할애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 글은 조금 더 달콤하고 부드러운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이야기가 될 것임을 약속하며, 지금 우리 집에 나뒹굴고 있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사진으로 이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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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Ⅶ :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