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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Aug 05. 2015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Ⅶ

'매력'


 연재를 시작   .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팔불출 제노 아빠가 되어다.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견종의 특징과 역사, 그리고 간략한 소개를 바탕으로 글을 이어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객관적이고 담담한 이야기 전달자  해 무던 애를 썼지만 이미 제노에 대한 애정이 듬뿍 글에 쏟아져 들어가버린 듯하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제노 이야기만 해볼까 한다.


시베리안 죠스놀이 중인 제노. 이 사진 찍고 대차게 혼났다.



"우리 제노는 -



 

- 장난감을 참 잘 가지고 놀아요"



 제노와 함께하면서 지출한 금액 중 사료값 다음으로 많이 들어간 것이 바로 장난감다. 반려견이 장난감을 잘 가지고 노는 모습은 견주의 행복이기도 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장난감이 버텨낼 경우의 이야기 다. 제노가 생후 3~4개월을 넘기면서부터 까지 갖고 있던 장난감   씩 파기 시작했다. 오리, 기린, 도마뱀, 상어, 불가사리, 밧줄매듭, 고무공, 테니스공 등...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큰 맘 먹고 선물해준 비싼 장난 사흘 만에 목 윗부분이 다 터지고 풀려, 터뜨리고 난 폭죽처럼 되어버렸다. 잘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선물해줘서 감사하다고 전해야 할지, 아니면 벌써 이렇게 되어버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형형색색의 장난감들.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시베리안 허스키가 절  갖고     장난감이 몇 개 있다. 그 첫째는 테니스공이다. 유치가 나 있는 시절의 강아지라면 크게  상관없지만 이갈이가    허스키는 테니스공을 씹어서 부순다. (제노가 두 개째 터뜨렸을 때부터 우리는 테니스공을 모두 치워버렸다) 문제는 이 녀석들의 뭐든지 삼 버릇에 있다. 물론   뱉어두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미국에서는 주인이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 테니스공을 부수어 삼키다가 질식사한 허스키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우리 는 괜찮아~'와 같은 신뢰의 마인드도 좋지만, 단 한 차례  반려견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므로 가급적이면 테니스공보다는 애완견 전용 던지기 공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단단한 뼈로 만들어진 개껌이다.  사슴 정강이뼈를 좋아한다고 하여 거금을 들여 제노에게 사준 적이 있었다. 약 45분쯤 뒤, 거실에서 캑캑거리는  소리가 들려 뛰쳐나가 보니 사슴뼈가 앞니 뒤쪽과 목구멍 사이에 걸려 제노가 반쯤 경련을 하고 있었다. 씹고 먹으면서 놀다 보니 길이가 차츰 짧고,  수 있겠다고 판단한 제 무리  뼈가 목구멍과 입안 사이에 걸려버린 것다. 제노의 목구멍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까스로 뼈를 끄집어낼 수 있었지만 하마터면 '향년 3개월'이 될 뻔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소뼈가 아니면 제노에게 주지 않는다. (거대한 소뼈가 실내에서 굴러다니는 소리는 상당히 시끄럽다. 공동주택이라면 자제하는 편...)


호랑이의 일생


제노가 파멸시킨  장난감 중 호랑이가 있다. 3개월 무렵의 귀여운 허스키였던 제노에게 알맞은 튼튼한 장난감이었다. 제노가 호랑이를 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달 하고도 반이었다. 겉면의 노란 가 다 벗겨지고 얼굴이 뜯겨나간 호랑이는 점차 ' 흰 원통 모양' 다.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를 가지고 놀던 제노가 호랑이는 저쪽에 버려둔 채 무언가를 씹고 있었다. 깜짝 놀라(사슴뼈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입을 벌려 꺼내보니 호랑  가장 강력한 봉제선 안쪽에 숨겨진 플라스틱 삑삑이였다. 호랑이는 심장까지 파헤쳐진 것이었다.


 이때 배운 것이 있다. 삑삑 소리가 나는 봉제 장난감 안의 플라스틱 삑삑이는 삼키기에 매력적인 모양이지만 결코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 없는 크기다.  반려견이 가지고 노는 삑삑이 봉제 인형의 수명이 거의 다해간다면 빨리 새것으로 교체해주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상어의 일생

 또 다른 인상 깊었던 장난감으로는 상어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애완동물용 장난감    회사의 야심작 봉제인형 중 하나로, 10까지의 내구도 수준  7에 해당하는 튼튼한 녀석이었다. 상어는 호랑이보다 더욱 긴 약 3개월을 버 뇌수가 튀어나와  다. 이마 약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간파했는지는 모르겠다.  사진을 보면 사망한 상어 뒤로 제노가 상당히 악질적인 미소를 띠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 ( ! )  이틀 전에는   장난감 중 내구도 9로 분류되는 불가사리 운명했다.  장난감  회사의 홍보영상에는 내구도 8짜리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사자와 호랑이, 그리고 곰이 등다. 완력은 부족하지만 철저하게 약점만을 공략한 제노는 혹시 천재?!



- 냄새가 나지 않아요"



 실내에서 반려견을 기       이른바 '개 냄새' .   유분이 활발하게 분비되는 단모종을 기르는 경우  심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베리안 허스키는? 전문서의 내용에 의하면 시베리안 허스키는 서양에서 개 특유의 냄새가 거의('전혀'에 가까울 정도로) 나지 않는 견종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제노의 경우, 제대로 목욕을 시켜 놓으면 매일 산책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 뒤까지도 어스름하게 샴푸 향기가 풍긴다.   제노와 함께 노는 불도그, 레트리버, 시바견  견주들 목욕을 시켜도 빠르면 사흘, 오래가도 일주일 안에 다시 냄새가 난다면서 제노를 부러 (물론 우리에겐 명불허전의 허리케인급 털갈이 시즌이 있).


비누향 나는 남자입니다


 개인적으 나는 후각이 예민한 편이며, 특 개 냄새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사실    '어쩔 수 ! 감내!'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이게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허스키에게선 개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 실내에서 기르는 많은 반려견들을 접해 보았지만 시베리안 허스키만큼 (기본 위생 관리만 잘 해주면) 선천적으로 냄새가 나지 않는 견종은    .




- 가족들을 정말 좋아해요"



 아주 어릴 적(2~3개월) 제노는 아빠 엄마와 떨어져 있는 상황에 불안감을 느꼈다. 혼자 남겨진 것 같으면 때로는 하울링을 하기도 하 방문을 열어달라고  긁어대기도 했다. 그런데 3~6개월 사이의 제노는 조금 달랐다. 같이 잘 놀다가도   시간이 되면 집에서 가장 어둡고 구석진 현관 한쪽 귀퉁이에 가서 누워 있곤 했다. '혼자만의 공간이나 시간이 필요한 걸까?', '현관 쪽 바닥이 시원해서 그런가?' 등 제노 엄마와 함께 의아해하곤 했다.


뭐.하.세.요.?

 그랬던 제노가, 이젠 우릴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딜 가도 쫓아다니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화장실 문에 기대어 눕는다. 잠시 휴식이라도 취하고자 침실에 들어가면 바로 이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뜨겁고 열정적인 눈빛으로 어느 새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안 된다고 단호하게 소리치지 않으면 초당 3cm씩  밀고 들어와 침대 아래에 눕거나 우리가 잘 보이는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만다. 가끔은 너무 쫓아다니,  큰 덩치로 들이미는 등 성가시게 하는 통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저리  가 있!" 하고 버럭 짜증을 내면, 입에 물고 있던 장난감을 일순간에 툭! 하고 바닥에 떨어뜨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 표정에 세상을  잃은 듯한 허망함이 담겨 있어서 우리는 항상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제노~"하면서 우리 24킬로그램짜리 진드기를 찾아 나선다. 토라져 있거나 의기소침해있나 싶어서 들여다보면 전혀  . 그냥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집구석 어디선가 신나게 발랑발랑 뒤집고 있다.


제노는 사람을 정말로 좋아한다.

다른 개들도 좋아한다.

고양이들도 좋아한다.

새들도 좋아한다(?).

먹는 것도 좋아한다.

못 먹는 것도 좋아한다.


사실 우리는 제노의 어릴 적 모습에 혹여나 외출 호텔링  분리불안증세가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4~7개월 사이엔 혼자 두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사고를 쳐댔기에, 그러한 현상이 혹여나 분리불안증의 전조 아닌가 하는 불안이 컸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간의 사고들은 그저 이갈이와 더위로 인한 스트레스의 표출이었던 듯하다. 요즘은 엄마와 아빠가 외출 준비를 하면 와서 무슨 옷을 입나 구경하다가, 나가기 직전에 '간식 주세요' 애교를 조금 부린 다음, 혼자만의 행복한 수면을 즐길 준비를 한다. 그냥 선풍기 앞에 드러눕는다. 밖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열에 일곱 정도는 쉬야 한 번 안 하고 자다가 일어나 엄마나 아빠를 바라보면서 기지개를 쭉쭉 켠다. 나간다고 짖거나 돌아왔다고 짖는 법도 없다. 예전에는 좋아서 날뛰 했었는데, 요즘은 엄마와 아빠가 돌아오는  당연하다고 느껴지는지 ' 일이 지금 일어났군'하는 표정이다.

아 딥슬립 중인데 뭐 하는 거예요...... 근데 잘 나왔어요?


 방문을 닫고 들어가지 않으면 제노는 항상 발치에 와서 잠에 든다. 아무리  시원한 냉돌침대가 있어도,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어도, 헥헥거리면서 더위를 참는 한이 있어도 아빠나 엄마의 발치가 바로 자기가 누울 곳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사진은 바로 이 글을 작성하면서 의자 아래에 곤히 잠든 제노의 모습과 셔터 소리에 잠시 눈을 떠서 올려다보는 제노의 모습이다. 더 어릴 적엔 이렇게 자면서 코도 골고 방귀도 뀌는 바람에 작업실 공기가 혼탁해졌는데 요즘은 그런 생리현상이 현저히 줄어들었다(왜인지 모르게 조금 아쉽다).


얼마 전에 전사한 초고강도 불가사리 장군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입에 문 채로 잠드는 일도 흔하다. 꼭 아빠와 엄마가 보이는 위치에서 장난감을 열심히 가지고 놀다가,  ,    누군가 한  시선에서 놓치지 않으려 애쓰다가 잠든다. 졸려서 눈이 꿈벅꿈벅한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감지 않으려 애를 쓰다가 이내 꿈나라로 끌려들어가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못해 잠을 다시 깨우고 싶어질 정도다.


 이토록 열정적이고 순수한 애정을 받는 일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나중에 꼭 자녀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반려견이 널 사랑하듯 너도 그 녀석에게, 그리고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사실 '매력'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한 가지 회의감이 들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제노의 매력적인 부분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내 모습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만을 골라 '매력'이라 부르는 것도 지나치게 내 가족에 대해 '판단'하고 점수를 매긴다는 느낌이 들다. 여기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고 또 상식적인 선에서 '장점'으로 여겨질 만한 특징들을 골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


 그러한 형식적인 모든 부분을 제쳐두면, 지금의 내게 있어 제노의 매력이란 '제노'라는 존재 그 자체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실수로 대변을 밟아도 괜찮다. 심하게 장난을 치다가 본의 아니게 내 팔에 상처를 입혀도 괜찮다. 밥투정을 부려도 괜찮고,    조금 밀고 들어오려 해도 괜찮다. 물론 그러한 상황에는 어김없이 엄하게 혼도 내고, 야단도 치고, 소리도 지른다.


 허나 사랑한다는 표현은  "사랑해"라는 말이 아니어도 수없이 많다. "조심해", "안전벨트 꼭 매", "밥 잘 챙겨먹었지?", "진작 나한테 말하지", "잘 자", "그렇게 하면 안 돼!" 등 어떤 말도 '사랑한다'는 표현일 수 있는 것이다. 제노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는다.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나고 나서도 곧바로 다가와 놀아달라고 꼬리를 흔들며 핥아대는 모습을 항상 보아왔기에.


 만일 무한한 사랑을 받기 위한 자격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 역시 무한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가'가 아닐까?


4 A.M. 아빠 작업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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