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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Aug 23. 2015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Ⅸ

'중성'


 꽃다운 미모를 자랑하지만 제노는 남자 아이다. 어릴 적에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성장하다가 변성기를 동반한 사춘기 터널을 '우다다다' 돌파해 역변하고 마 그런 전형적인 남성인 것이다.


 진실을 털어놓자면 제노는 완전한 남성은 아니다. 반려견들이 어릴 적 받는 중성화(中姓化) 수술을 받 . 즉 번식, 엄밀한 의미에서의 '수컷' 역할을 해낼 수가 없 다.

무슨 베르사유의 장미 주인공 '오스카'의 눈망울로 꽃바구니를 갈망한다

- 인지 (認知) Acknowledgement,


 여러 차례 반려견을 키운 적은 있지만 중성화 수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했던 것은 처음이었다. 실내에서 기른다는 , 중대형 견종이라는 점, 그리고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종에 있어서의 중성화 필요성이 나를 고심하게 만들었다. 시베리안 허스키를 다루는 전문가들과 전문 서 하나같이 '특별한 브리딩(번식)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수컷의 경우 꼭 중성화를 해야 한 주장다. 사역견으로서의 공격성 억제, 맘껏 번식 활동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들이 중성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건강 문제였다.


 중성화를 하지 않은 허스키는 평 기대 수명이 10~11년이라고 한다. 이는 중성화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9세 전후로 체내에 온갖 합병증이 생겨날 확률이 허스키 개체 특성상 약 90%에 이르며, 병세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을 경우 운동량의 저하로 인한 또 다른 합병증을 야기하여 악순환의 고리 속에 빠져 순식간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시베리안 허스키 종을 길러낸 북방의 추크치 족 역시 번식을 위한 각 성별의 최고 종견을 제외하고는 곧바로 중성화를 시켰다. 중성화 수술을 거친 허스키의 경우 평균 기대 수명은 13~15년으로 늘어난다. 여러 합병증에 시달릴 위험도 현저히 낮아지  가족의 일원으로, 반려견으로 허스키를 맞이하는 가정의 경우 중성화는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한다.


마냥 아빠 품에 안겨 노는 게 행복한 아가 제노

 꼭 필요한 과정.

 해야만 하는 일.

 제노를 위한 수술.


완벽한 명분이었고 견주로서 가족으로서 충분한 당위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선뜻 제노의 중성화 수술에 찬성표를 던지거나 적극적일 수 없었다. 마음이 그랬다.


- 거부감  Disgust,


 멀쩡하게 잘 크고 있는 녀석의 생살을 찢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자연스러운 성징과 수컷 성견으로서의 삶과 욕구를 '더 건강하게', '더 긴 수명을 위하여', '더 행복하게'라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명분을 들어 인위적으로 제거해버린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노의 아빠는 온건한 중성화 반대주의자였다.


 제노의 주니어를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당시에는 사고뭉치 김제노 하나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  또 다른 생물체는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노 주니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크게 드는 것은 요즘이다. 지나치게 급격한   허스키의 특성상 어린 시절의 모습은 실로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저녁에 방문을 닫으며 잘 자라고 인사할 때의 모습과 다음날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 마주치는 모습이 다르게 느껴질 정도이므로.


나 자신을 완벽히 설득할 만한 명분 없이는 이런 눈빛을 가진 녀석을 수술대에 올릴 수 없었다

 우리는 상당한 기간 동안 고민했다. 제노가 수컷으로서의 '아직은 귀여운' 행동을 해대는 것도 사랑스럽다고 느껴졌고, 점차 나는 모두가 말하는 '상식적인 기준에서의 필요성'을 무시하고 중성화를 하지 않은 채 제노를 품고 가겠다는 마음을 굳혀 갔다.



- 현실  Reality,


  무렵부터 기르는 자견의 경우 보통 생후 5~6개월 즈음하여 중성화 수술을 마친다. 때로는 생식기가 지나치게 발달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생후 7, 8 개월 무렵 중성화를 하는 분들도 있다. 제노가 생후 5개월에 이를 무렵, 내 마음은 중성화를 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90% 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반려견 두 마리를 기르던 한 친구도 중성화를 하지 않고도 20년 가까이  함께했다면서 인위적인 칼질을 반대했다. 혹시 아는가, 정말로 예쁜 제노 주니어를 볼 날이 올지도! 라며 굳게 마음을 먹었다.


 제아무리 사람이 마음을 굳게 다져도 하늘의 뜻은, 순리는 거스를 수 는 것일까. 중성화 문제에 대한 답은 나의 결심과는 무관하게 세상이, 제노를 통해 내려주었다.


이렇게 천진한 녀석을 데려가 억지로 수술대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5개월 무렵이면 어린 수컷 강아지들의 고환이 제 자리를 잡는다. 제노는 5개월이 지났는데도 한쪽 고환이  않았다. 동물병원에서는 6개월까지 기다려보고 그때에도 고환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잠복고환 증세를 의심하여 초음파나 엑스레이 등의 검사를 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6개월이 지나도  고환은 내려오지 않았다. 검사 결과,   복강 내 뒷다리 근처 부위에 잠복해 있었다.  . 설상가상으로 열이 배출되지 못해 이미 일반적인 고환 크기를 훌쩍 뛰어넘는 사이즈로 부풀어 있었다. 그와 같은 상태의 잠복고환을 방치하면 필연적으로 종양으로 발전하고, 결국 4~5년 내에 암으로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답은 이미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 수술  Operation,


 최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조용한 시간에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다. 밤 11시에 수술실에 들어간 제노는 이미 덩치도 18kg에 육박해서 마취약도 마취에 걸리는 시간도 다른 작은 강아지들에 비해 배는 필요했다. 한 시간 정도면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거의 두 시간을 채운 새벽 1시 무렵에 수술이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제노 엄마는 참 잘 자면서 기다렸다. 반면 나는 수술 시작 후 40분 무렵부터 반 걱정, 반 공황에 빠져 있었다. '왜 연락이 안 오지?', '혹시 문제 생긴 거 아냐?', '전화를 내가 걸어봐야 하나? 아냐 수술에 방해되면 안 되잖아', '마취에서 못 깨어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등 덩치에 걸맞지 않은 문장들이 나를 괴롭혔다.


 한창 바쁜 시기여서 철야 작업을 해야 했음에도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미 광견병 백신 사건(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제 8화 내용 참조)으로 홍역을 치른 터라 우리 집 꼬맹이 제노의 건강 문제라면 다소의 트라우마가 생  .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타는 가슴에 차가운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던 순간이었다. 제노의 영양 상태가 좋아(말이 좋아 영양 상태지 다른 말로는 그냥 비만) 피하지방층이 두꺼운 바람에 예상보다 잠복 고환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수의사분의 목소리를 듣고는 신이 나 곤히 잠든 제노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봐, 성공이래!"



- 후일담  Epilogue,


 지나치게 남성스러운(?) 버릇도 없어지고, 성격도 한결 차분해진 제노는 이제 아이를 갖지 못한다. 대신 자신의 건강과 수명을 얻었다(고 믿고 싶다). 건강한 남성으로 만들어내겠다던 아빠의 의지는 무색해졌지만, 만일 제노가 합병증이나 종양으로 인해 고생했다면 예전에 중성화를 해주지 않았던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깨달았지 모든 것이 완벽한 삶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느 온전한 가치 하나를 연료 삼아, 발판 삼아 나아가야만 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었다.


 제노는 건강하다. '덩치'와 복강 내에 자리한 잠복고환으로 인해 중성화 비용은 제노를 데려오는 것보다 더 들었지만 그 이후 심장사상충 예방약을 제외하고는 의료 관련 지출이 없어졌다.


8m 길이의 산책용 줄 .그 맞은편에는 건강한 中姓 제노가,


 의도치 않았던, 희망치도 않았던 중성화 수술이었지만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받아들인 그 결과는 반려견인 제노에게도 견주인 내게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제노의 속은 모르지만 어차피 브리더를 생업으로 삼고 있지 않은 내가 제노의 왕성했을 성욕을 충족시켜 줄 만한 번식 그라운드를 마련해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욕구 불만으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불필요한 스트레스. 그로부터 해방된 제노의 평화로운 모습은 중성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아팠던 마음을 다독여주는 듯하다. 만일 잠복 고환이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성을 살릴 수 있었다면, 여전히 나는 제노의 중성화에 반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모두 지나간 일이다. 지금 고민할 내용은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보다 즐거운 삶을 제노에게 선사하고, 또 함께 살아갈 수 있느냐에 관한 문제여야 할 것이다.


평화, 만족, 행복


우리에겐, 앞으로 함께할 날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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