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꾸다

열쇠를 꿈꾸다

by WriteWolf


복도 끝에 놓인 오래된 서랍장. 세 칸씩 두 줄로 총 여섯 개의 서랍이 달린 이 서랍장은 기억이 시작된 이래 늘 그곳에 있었다. 위쪽 서랍 칸에는 늘 비상약이나 반창고, 가위, 자그마한 약병이나 단추 꾸러미 등이 담겨 있었고 아랫줄에 위치한 양쪽 서랍에는 달콤한 사탕이나 초콜릿이 이따금씩 숨어 있곤 했다. 그런데 아랫줄 가운데 서랍만은 항상 같은 물건을 품고 있었다. 그 안에는 아주 오래된 열쇠 하나가 오롯이 놓여 있었다.


공연히 그 열쇠에 대해 궁금증이 떠올랐던 어느 가을날, 어른들에게 열쇠의 정체를 구한 적이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어른들 모두 그 열쇠의 존재와 위치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기대와 어긋난 부분이라면 그들 중 누구도 무엇을 열기 위한 열쇠인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설렜다. 아무도 그 용도와 출처를 알지 못하는 열쇠라니. 오래된 열쇠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일종의 모험이 시작된 것만 같아 어린 마음에는 파도가 일렁였다.



정체를 모르면서도 어른들이 이 수상한 열쇠를 서랍장에 계속 간직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아랫줄에 있는 서랍을 쓸 이유가 없어서 굳이 손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오늘날 어른이 되어버린 그들의 기억 속에서도 그 열쇠는 항상 그 서랍장, 그 서랍 칸 안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렇지 않으면 서랍장을 만든 장본인이 애초부터 넣어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열쇠는 늘 그곳에 있어왔다. 이를 모두가 당연히 여겨 누구도 알려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일상 속 신비가 되고 말았다.




흔히 열쇠란 잠긴 문의 자물쇠나 잠금장치를 열기 위한 도구라는 뜻을 가진다. 한글의 직설적인 묘미에 초점을 두자면 무언가를 [열]기 위한 [쇠]로 만든 물건이라는 뜻일 것이라 추측해볼 수도 있다. 열쇠라는 단어를 그저 단순하게 풀이하자면 이 정도에서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열쇠가 가진 역할과 그 관념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면 [열쇠]라는 개념이 예상보다 훨씬 깊고, 복잡하고,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살면서 열쇠로 걸어 잠근 것은 소중한 보물만이 아니었다. 두 번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몽땅 던져 넣고는 언젠가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까지 시간을 흘려보내며 숙성시키기도 했다. 열어보려는 의도보다는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게 걸어 잠그는 의미가 더 컸기에, 그 열쇠는 일부러 눈길과 손이 잘 닿지 않을 곳에 내팽개쳐두었다. 어쩌면 [열쇠]라는 말보다 [잠금쇠]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몰랐다.


문을 열기 위한 똑같은 장치를 두고 어떤 것은 열쇠, 어떤 것은 잠금쇠라고 마음껏 규정지을 수 있는 근거는 손님을 맞이하는 집주인의 태도와도 같다.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는 인연이 찾아오는 날의 현관문은 활짝 열려 누군가를 기꺼이 맞이하고 마주한 이들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이때 현관문에 달린 잠금장치는 집안에 기거하는 주체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열어젖히기 위한] 장치가 된다. 반면 수상한 이들이 집 주위를 배회하는 탓에 불안한 집주인에게 있어 현관문에 달린 잠금장치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안전과 안온함을 위해 의도적으로 [잠가 두기 위한] 장치가 되는 것이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잠금쇠]로서의 열쇠가 아닌, [열쇠]로서의 열쇠다.




열쇠의 존재는 그 자체로 어딘가에 잠금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잠금장치가 무언가로 향하는 길을 잠그고 있다는 점은 잠긴 문 너머에 무언가 소중한 것이 간직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소중한 무언가를 뒤로 한 채, 언젠가 다시 만날 순간을 기약하며 안쪽 호주머니에 소중하게 품는 열쇠. 어딘가에 고이 간직한 소중함에 자물쇠를 채운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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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가장 무겁고 또 무서운 열쇠는 기껏해야 몇 자리 되지 않는 숫자였다. 전화번호보다는 짧고 통장 비밀번호보다는 긴,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담기지 않은 숫자의 배열이었다. 분명 그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어야 했다. 다만 묘하게 잊히지 않아 일상이 되었고, 결국 삶 자체가 휘둘렸다. 급기야는 그 숫자가 인도하는 좌표가 곧 인생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함의도 담고 있지 않은 피상적인 모습을 너무나 가벼이 여긴 탓이었을까.


이처럼 인생 가장 중요한 열쇠는 항상 금속 재질의 기다란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무심하게 훑고 지나간 신문 활자 몇 줄에서, 때로는 추운 날 가로등 아래에서 마신 따뜻한 코코아 한 잔에서, 때로는 어지럽게 흩어진 접시와 와인잔의 모습으로. 문득 마주친 일상의 모습 그 자체가 열쇠의 모양이 되어 잠금장치를 스르르 돌려낸다. 잠들어 있던 모든 기억을, 절절함과 그리움까지 하나, 둘 열어젖히며 펑. 펑. 불꽃놀이를 시작한다.


숨겨둔 것이 내가 아니라 조금은 억울하다. 그럼에도 문이 열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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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처럼 마주친 보물단지 열쇠만큼 반가운 것이 또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열쇠를 이용해 소중한 존재가 무사함을 재확인하는 순간이리라. 열쇠가 항상 소중한 것으로의 길인 것만은 아니듯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는 열쇠도, 새로운 날을 여는 열쇠도 어느 날 갑작스레, 때로는 마치 우연처럼 나타난다.


서랍장 속에 잠들어 있던 열쇠가 무엇에 닿을 수 있는 길을 열어젖힐 수 있는지 지금은 알 도리가 없다. 소중한 가치를 어딘가에 고이 간직해 둔 사람도, 그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지금은 이곳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자칫 무의미해질 수도 있는 열쇠의 존재가 이토록 따뜻하고 고맙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어쩌면 앞으로의 무언가를 열어낼 수 있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복도 끝에 놓인 오래된 서랍장. 그 아랫줄 가운데 서랍에는 항상 같은 물건이 담겨 있었다. 그 안에는 아주 오래된 열쇠 하나가 오롯이 놓여 있었다. 설령 아무것도 열 수 없는 열쇠일지언정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곳에 머무르기를 바란다. 그리고 끊임없이 어딘가에 간직되어 있을 소중함을 상기시켜주기를 소망한다.


하나의 [희망]으로서.





삽화 : Cover . Salvador Dali 作 / ⅰ. Skurktur 作 / ⅱ. Carsten Holler 作 / ⅲ. Jefferey T. Larson 作 / ⅳ. Jim Clements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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