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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May 01. 2017

오로지를 꿈꾸다


 때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떠올리려 애를 썼지만 아무런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잊으려, 잊으려 애쓴 적도 있지만 당시에는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고 그저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영원히 장으로 내려가지 않는 되새김질처럼, 지나칠 수 없는 도돌이표처럼, 반복 버튼이 잘못 눌려 같은 장면이 끊임없이 재생되는 영화의 어느 장면처럼. 



 그로부터 긴 세월이 지난 어느 아침, 식탁 위에 놓인 그릇의 사소한 배열을 보고 불현듯 지나간 날들의 감상이 떠올랐다. 문제는 그렇게 잊지 못하던 것이 무엇이고, 그 그리움이 어떤 공기였는지를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는 점이다. 언제부터, 그리고 어디서부터 변해버린 것일까.




 모든 가능성이 펼쳐진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서 도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며 그 정적과 하릴없음을 꿈꾸고 찬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란 불확실한 모든 것을 마주했을 때 처음에는 설레고 경외를 느끼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보다 확실하고 예측 가능한, 단단한 무언가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별보다는 보이는 별을, 멀리 있는 별보다는 가까이 있는 별을, 손이 닿을 수 없는 별보다는 손이 닿을 수 있는 별을 선호하고 마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태초적 구성이, 아무래도 조금 잘못되어 있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바라보고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없었다. 이것저것 다 잘하고 싶었고, 또 눈이 여럿 달린 것처럼 세상 전체를 아우르는 시선을 가지고 싶었지만 지나친 욕심이었다.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에 집중할 때 적어도 일 인분은 해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뷔페가 싫었다. 이것저것 다 간을 보다가 결국 무엇을 먹었는지도 애매한 기분으로 출구를 나서는 기분이 싫었다. 무엇을 먹었느냐고 묻다가도 뷔페에 다녀왔다고 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이 싫었다. 사소하지만 작은 식사 한 끼에서도 도무지라는 가치관은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이다. 






 집착이라거나 미련이라기보다는 그저 끌림이고 꿈이었다. 집착이란 대상은 물론 자신마저도 파괴하는 습성을 지닌다. 미련이란 그저 조금 더 육중한 애매함일 따름이어서 막상 기회가 주어져도 온전히 뛰어들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꿈이란 마치 늘 눈가에 아른거리는 구름과도 같아서, 눈을 감으면 잔상이 남고 눈을 뜨면 선명하게 보이는 듯 해도 그 테두리를 특정 지을 수 없는 뭉글함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꿈과는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꿈도 섣불리 다가오는 일이 없었고,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꿈에 다가가려고 무의미한 발버둥을 치지도 않았다. 


 다만 늘 주시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쪽에서는 그랬다. 늘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고, 혹여나 꿈으로 인해 실망하게 될까 멀찍이서 그저 할 수 있는 일만을 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살면서 점차 사라져 가는 것들이 있다. 마치 쓰면서 지워지는 혼몽처럼,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차차 흐려지다 결국 사그라지는 것들. 불어오고, 불어 가고, 지나가고, 스쳐가고.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진 민둥 언덕에 도달했을 때 꿈은 여전히 구름처럼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시간이 멈추고 바람도 멈췄다.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으니 꿈에 다가가는 수밖에 없었다. 닿을 수 있을까, 실망하지는 않을까 의문을 품을 여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애당초 우리가 도무지라는 벌판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한한 가능성을 만끽하고 많은 것을 시험해보며 자신을 깨달아가기 위함이지만, 정작 궁극적인 이유는 정반대 지점에 놓여 있다. 모든 가능성을 다 시험해보고 난 뒤 가장 올바르고 적합한 단 하나의 길, [오로지]를 택하기 위함이다. 


 때로는 여러 길을 오가는 것이 자신만의 길일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어느 길도 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로서의 오로지를 깨닫기 위해 도무지라는 과정을 꼭 거쳐야만 한다는 점이다. 도무지라는 벌판에서 끌리지 않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지우다 보니 남은 것이, 알고 보니 처음부터 품고 있던 자신만의 오로지였던 것이다. 




  마지막 남은 이 오로지라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혹은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꿈, 이상, 사랑, 목표, 신념 등 수많은 이름을 가진 오로지는 서두른다고 해서 가까워질 수 있거나 느긋하게 여유를 부린다고 슬며시 다가오는 성질의 별빛이 아니다. 


늘 별빛을 바라보거나, 바라볼 수 없을 때는 마음속에 떠올리며 묵묵하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이들이 있다. 오로지란 이들의 주변을 맴도는 일종의 씨앗과도 같다. 


 때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떠올리려 애를 썼지만 아무런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꿈이자, 삶이자, 열망이자, 이정표이자, 당신인

오로지만을 믿으며 나아간다. 





삽화 : Cover . Dmitri Danish 作 / ⅰ. Marc Chagall  / ⅱ. Xi Pan 作 / ⅲ. Etam Cru 作 / ⅳ. Magritte 作 / ⅴ. Joseph Lorusso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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