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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Apr 21. 2017

어른을 꿈꾸다


 "누구나 언젠가 어른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어른이 되느냐이다. 훗날 어른이 되기를 꿈꾸는 아이들이 닮고 싶어 하는 어른이 있는 반면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어른이 있다. 단지 나이라는 시간의 척도로 어른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일이야말로 어른들의 세계를 혼돈으로 이끄는 가장 큰 원인일지도 모른다."


 내뱉은 말을 모두 지키지는 못할지라도 그에 책임을 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진심 어린 사과와 더불어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는 사람.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거나 남의 공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앗으려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언행이 어린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

 이루지 못한 꿈을 다른 존재에게 투사하여 이루려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은 현실과 타협하고서 다른 이들에게는 타협 말고 꿈을 좇으라 말하지 않는 사람.

 꿈을 이룬 자, 꿈을 좇는 자, 꿈을 이루지 못한 자를 차별하거나 구분 짓지 않는 사람.


어쩌면 지나치게 완벽한 그림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싸우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상대로 싸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늘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

 이겨야 하고, 이루어야 하고, 정복해야 하고, 어딘가에 깃발을 꽂아야만 웃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가장 많은 깃대를 꽂은 사람을 어른처럼, 마치 따라가야 할 발자취를 남긴 존재처럼 여기는 세상이 도래했다. 



 기억나는 가장 멋진 어른은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길에 쓰러진 노인의 기도를 확보하고 기다리다가 다시 가던 길을 유유히 가던 어느 의사였다. 도로를 가로지르다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난 동물을 발견하고는 걸치고 있던 옷가지로 차디찬 몸뚱이를 덮어주던 어느 아주머니였다. 역사에 진입하는 열차를 발견하지 못한 아이를 구하고 대신 두 다리를 잃은 어느 역무원이었다. 같은 이유로 타국에서 세상을 떠난 어느 청년이었다. 거창한 신념이나 이념을 말하지는 않지만 야심한 밤중에 인적 없는 횡단보도의 신호를 지키고 서 있는 꼿꼿한 어느 할아버지였다. 


 세상은 언젠가부터 작고 소중한 가치들보다는 크고 시끄러운 것들만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이 그렇다고 해서 [어른]의 정의가 그저 시끄러운 사람들로, 지킬 수 없는 말로 번지르르한 사람들로 바뀔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든든하고 멋진 어른이란 밤하늘 저 멀리서 빛나는 별 같은 모습이 아닌, 때로는 따뜻한 바위 같고 때로는 포근한 나무 그늘 같은, 늘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멋진 어른이 되기를 꿈꾸지만 더 값비싸고 빛나는 무언가를 걸친 모습을 완성하는 것이 그 방법이라 믿는 듯한 세상이 되었다. 물론 풍족함이라는 가치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나 그러한 모습들 속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함께 잘 살아가야 한다는 공생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남들보다 나은 옷가지, 나은 주거, 나은 이동수단을 꿈꾸며 이를 척도로 성공한 어른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여과 없이 흡수된다. 그 또한 다음 세대에 전하고자 하는 현실의식이자 신념이라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양날의 검이 된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가져서 멋지고 성공한 어른이라 불린다면, 같은 논리로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일로 모든 것을 잃게 되면 순식간에 초라하고 실패한 어른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어른이란 그런 것이었던가. 우리가 늘 기대고 싶고, 믿고 싶고, 의심하지 않는 어른이란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으며(적어도 우리의 눈에는) 침착하게 눈앞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마주해나가는 듬직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포탄을 수없이 쌓아놓고 여유만만한 어른보다,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업은 등이.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직장에서 무엇을 하는지, 승진을 했는지, 해고를 당했는지, 그저 놀았는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마주하는 것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소위 [어른]이라 여기는 이들의 표정이다. 그 순간 녀석들은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 다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다만 굳이 풀어내지 않을 뿐, 그 찰나의 표정 하나로 아이들은 우리 어른이라는 한낱 유약한 생명체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깨닫는다. 


 완벽한 어른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꿈꿀 수는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늘 웃으며 귀가할 수는 없다. 다만 어른의 귀가는 아이들에게 있어선 세상과의 접점이고, 어른이 웃고 있느냐 찌푸려 있느냐를 통해 바깥세상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억지웃음을 짓지는 않아도, 적어도 어른이 되어갈 아이들에게 세상의 무게와 현실의 온전한 차가움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걸로 지금은 충분하지 않을까. 


"어른들은 늘 편안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 우릴 따뜻하게 안아주셨어. 

추울 때도, 더울 때도, 우리가 슬플 때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따뜻한 어른이기를 꿈꾼다.




삽화 : Cover . Steve Hanks 作 / ⅰ. Juan Luis Jardi  / ⅱ. Alex Kanevsky 作 / ⅲ. Iman Maleki 作 / ⅳ. Tony Karpinski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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