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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Apr 12. 2017

꿈을 꿈꾸다

 꿈을 꾼다.

 나도 꿈을 꾸고, 당신도 꿈을 꾼다.

 

 봄에는 여름을, 여름에는 겨울을, 겨울에는 또다시 봄을 꿈꾼다. 아이러니는 늘 지금과 다른 어떤 것을 꿈꾼다는 점이다. 분명 어느 시절엔가 꿈꾸던 순간이 지금인데도, 오늘 꾸는 꿈은 그 시절 영사기에서 돌아가던 장면과는 또 다른 그림을 그려낸다.






 항상 요란할 필요는 없다. 화려할 필요도 없다. 세상을 정복하는 일, 만병통치약을 개발하는 일, 대단한 부자가 되는 일이 꿈일 수 있는 만큼 갓 구운 빵을 기다리는 일도, 아이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떠나는 일도, 봄바람에 달콤한 낮잠을 만끽하는 일도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꿈인 법이다.


 배우는 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원대하고, 고귀해 보이는 이상이었다. 이른바 현실적이라는 사람들 역시 꿈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 모두가 꿈꾸고 있었다. 다만 '목표', '성과'와 같은 말들이 '꿈'을 대체할 뿐이었다.


 모두가 큰 꿈과 야망을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은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말하는 것 역시 다를 바 없는 폭력이었다. 꿈이란 그만큼 가지가 많은 나무였고, 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그 모습이 변하곤 하는 허깨비 같은 매혹이었다.






 무거운 꿈을 품어보았다.

야망과 고귀한 이상, 가치관으로 출발한 여정은 처음엔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이내 꿈의 중량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너무 먼 곳을, 요원한 곳을 꿈꾼 것은 아니었을까. 숨이 턱턱 막히고, 발걸음은 종아리까지 깊이 잠겨갔다.


 가벼운 꿈을 품어보았다.

즐겁게 살아보자는 마음, 인생은 한 번뿐이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모든 상황을 즐기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다짐을 하고 길을 나설 때마다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날은 맑았다. 그런데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두 다리는 늘 땅에 맞닿아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 현실이라는 이름의 중력은 훨훨 날아다니도록 풀어둔 마음과는 달리 두 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그저 막연했다.

꿈을 꾼다는 일이 이토록 복잡하고 또 신중함이 필요한 일인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꿈을 꾸는 것과, 꿈을 향하는 것은 바게트 빵의 맛을 상상하는 일과 바게트 빵을 사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일의 차이와도 같다. 때로는 이뤄낸 꿈의 달콤함보다 꿈꾸던 시절의 상상 속 성취감과 기쁨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꿈을 이룩하는 것 자체보다 이상적인 삶의 그림을 그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꿈꾸는 시간이 더욱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러한 모든 감상은 아마도 지금 꾸고 있는 꿈을 이룬 뒤에나 부릴 수 있는 사치인 것이다.



무거운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상, 야망, 의미와 같은 뿌리 없이 꿈꾸는 나무는 그 가지를 뻗어나갈 수 없다.

두텁고 육중하지만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이상과 신념이란 어쩌면 매 순간 맹렬히 좇지 않아도 가장 깊숙하고 조용한 곳에 소중히 담아두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가벼운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삶이라는 것이 즐겁지 않다면, 그리하여 열매가 달콤하지 않은 나무는 건강할 수 없다.

일상의 즐거움과 시름을 잊기 위한 여흥이란 항상 소중한 순간들이며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이유이니까.



 

주어진 하루 동안 가능한 일을 모두 마치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향한다.

차디찬 맥주병을 꺼내고,

이어 들려올 퐁- 하는 소리와 함께

꿈꾸던 오늘 하루가 비로소 완성될 것만 같다.



 꿈을 꾼다.

 나도 꿈을 꾸고, 당신도 꿈을 꾼다.




삽화 : Cover . Jacek Yerka 作 / ⅰ. Aron Wiesenfeld  / ⅲ. Eric Zener 作 / ⅳ. Rozanne Hubbard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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