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꾸다

유랑을 꿈꾸다

by WriteWolf

누가 부르지 않아도, 무엇이 떠밀지 않아도, 잠자리가 안온해도, 언젠가 한 번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기를 꿈꾼다. 손짓하는 세상은 상상 속 토끼굴이거나 구름 위에 가려진 세상이거나 혹은 지구 반대편 어딘가의 풍차 돌아가는 마을. 사랑하는 사람,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짐을 나눠지고 떠나도 좋지만 가벼운 배낭 하나만 둘러메고 홀로 훌쩍 떠나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순간 가장 절실한 것을 고스란히 내려놓고 떠나는 것. 마치 애초부터 중요한 것 따위 이 삶에 존재하지 않았던 양, 억지로 자유를 찾아 나서겠다는 반대방향으로의 질주가 아닌 얼마간의 망각을 갖는 것이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세상 모두가 어딘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당장 급행열차의 티켓이 매진될 것 같아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오히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의 여유로운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하여 닿을 수 있는 곳이나 닿고자 하는 곳이 아닌, 닿게 되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다.




흔들림 없이 일상을 걷고 걸어 결국 당도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꿈꾸던 세상이려나,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맞이할 그저 변함없을 마지막 일상이려나. 무엇을 향하는 것인지 알고자 잠시 길에서 벗어나 멀찌감치 떨어져 본다. 고작 어제까지 분투하던 길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어째서 이 길로 온 것일까.'


추상적인 의문에 구체적인 정답은 존재할 수 없는 법이지만 그러한 무책임하고 잔혹한 비약은 한 켠으로 밀어둔다. 이토록 찾아 헤매고 있다면 단지 찾지 못했을 뿐 분명 정답이 어딘가 흩날리고 있을 것이라 믿어버리는 것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처럼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면 그 역시 나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 언제나 고무적인 하릴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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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시절 꿈꾸던 것은 돌아갈 곳이지만 머무르는 시절이 찾아오면 또다시 떠돌기를 꿈꾸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일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모든 일들이 어느새 양 발목과 어깨의 묵직함으로 자라났다. 짊어진 것인지 짊어지워진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중량감은 늘 길 위에 든든한 발자국을 남기면서도 상상 속 해방감을 꿈꾸고 갈망케 한다. 이 무거운 짐이 과연 내 것이 맞는 것인지, 만일 그렇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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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있는 삶이란 아름답지만 약간의 불신이 섞인 삶은 더욱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무거운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짊어진 삶에 대해 갖는 순간순간의 의구심은 어쩌면 가장 건강하고 균형 잡힌 정신을 증거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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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부조화라는 말이 있다.


돛단배로 치자면 순풍과 역풍이 함께 부는 바다를 뜻하며

자동차를 예로 들자면 후진기어와 전진기어가 함께 작동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

그로 인한 마찰음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적인 불편함.


유랑이란, 훌쩍 떠나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지부조화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과정을 말한다.

일상이라는 족쇄를 벗어던지고 떠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떠날 곳을 찾고 헤맨다.

도시에 묶여 있는 몸임에도 틈만 나면 항구를 서성이거나 부둣가에 앉아 먼 바다를 내다본다.

꿈꿀 수밖에 없어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그 자유로운 세계가 꿈속에 펼쳐지길 기대한다.




떠난다는 것은 사실 어딘가에 정착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딘가에 정착하는 일이란 어쩌면 하나의 길, 하나의 삶을 택해 [이곳으로 나아가리라]는 일종의 다짐과도 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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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인지부조화의 속박을 벗어던지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바로 끊임없이 꿈을 꾸는 것이다.

제아무리 부질없어 보여도, 무의미해 보여도,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도,

결코 그 꿈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희망을 가질 필요는 없다.

희망이란 스스로 사진 허상이 불러 일으키는 고양감일 뿐,

자신 외 누구도 그 희망을 합당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는 까닭이다.

희망은 늘 비합리적이며 꿈이 결국 크나큰 실망감으로 돌아오는 것은 모두 억지로 희망을 가지는 탓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라는 주관성은 대부분의 경우 꿈의 이룩을 위한 연료로 이용되기보다 절망의 원료와 근거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니 희망이라는 염료를 빼고, 조금은 담백하게 꿈의 끈을 혁대에 동여매 보는 것이다.


그렇게,

약간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꿈을 꾸다 보면,

꿈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어느새 족쇄는 헐거워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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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언젠가는,

떠나고자 하는 곳이 곧 머물고자 하는 곳이길.

또한 머물고자 하는 곳이 바로 훌쩍 떠나 닿게 된 곳이길.




삽화 : Cover . Jacek Yerka 作 / ⅰ. Rachel Bingaman 作 / ⅱ. Alexander Bolotov 作 / ⅲ. Justyna Kopania 作 / ⅳ, v. Jeff Rowland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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