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마친 어느 날, 먼지와 땀투성이인 몸을 이끌고 욕실로 향했다. 온몸에 물을 끼얹어 개운함을 입었다. 욕실을 나와 물기를 털어내던 도중 문득 순조로운 일상에 무언가 빠진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해내려 갖은 애를 써 보아도 희뿌연 구름 같은 잔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엇일까, 무엇이었을까 되뇌며 거실로 나오자 창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따금씩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지난밤 읽다가 창가에 놓아둔 작은 책이 보였다. 바깥 날씨처럼 다소 우중충한 회색, 어쩌면 잿빛에 가까운 뒤표지를 내려다보던 나는 마치 창밖의 물줄기가 정수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늘한 기운은 목덜미와 어깨를 거쳐 등줄기에 닿았고 아킬레스건에 그 송연함이 닿을 정도였다.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책의 뒷면에는 세 구절이 적혀있었다. 어쩌면 현실, 망각 등의 단어로 애써 외면하고 살아온 바로 그 이야기. 욕실을 나오면서 느낀 알 수 없는 결핍감에 대한 답이었다.
[어쨌든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내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므로]
소중한 것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리 무거운 존재감인지 잘 알지 못했다. 너무 익숙해졌다거나 지나치게 어렸다는 핑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부재를 경험해보지 않았던 까닭이다. 존재의 소중함은 그 부재를 통해서만 깨우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결코 직접 겪고 싶지 않을 이른바 진리라는 것의 한 조각이었다.
어느 날 삶에서 사라져 버렸다. 존재가 부재로 넘어갔음을 실감한 바로 그 순간부터 진짜 삶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삶이란 늘 잃어버린 소중함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며 하루하루는 그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한 페이지인 법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불어닥친 바람에 첫 페이지가 본의 아니게 열려버린 것이었다.
존재의 부재로의 전환. 다시 말해 '상실'이라는 것을 경험함에 있어 가장 화가 치미는 부분은 바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고 뒤흔들렸음에도 나머지 세상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가고 굴러간다는 사실이다. 몇 번이고 다짐했다. 결코 잊지 않겠노라고, 세상 모두가 잊어도 나만은 늘 가슴 한편에 부둥켜안고 있겠노라고.
시간이 흘렀다. 사흘이 흐르고, 일주일이 지나가고, 몇 달이 접히고, 자연스레 달력 수십 장이 넘어갔다. 다시 첫 단락의 어느 날의 일상으로 돌아와 목욕을 하고 나온 나는 어느 책의 표지에 쓰인 한 단락의 시를 읽고 잠시 말을 잃는다. 그리고 더듬었다. 필사적으로 찾으려 애썼다. 평화롭고 순조로운 일상으로 보낸 오늘 하루 동안 나는 몇 차례나 그 소중함을 떠올리고 간직했는지를. 나 역시 시간이 흐르면 소중했던 기억을 잊어가고 잃어가는 한낱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를 어떻게든 건져 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전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저녁 무렵 목욕을 하고 나와 무심코 어느 시를 마주하게 되기까지 나는 단 한 차례도 그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에 대해 떠올리지도, 기억하지도, 추억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바쁘게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시간이 가면 희미해질 것'이라는 말 역시 가장 부정하기 바빴던 혐오스러운 표현이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나의 소중함을 뇌리에서 그리고 기억 속에서 차츰 지워간 것이었다.
화가 났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점차 잊어가고 있는 한심하고 나약한 자신에게. 분노와 고심 끝에 결심한 것은 바로 타투라고도 불리는 문신이었다. 잠시 그려졌다가 지워지는 것이 아닌 영원히 남는 문양. 쉬울 수 없는 결정이었다. 주변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마저 좋지 않게 바라볼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남들이 흔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치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가 존재하는 법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가족들이 반대를 해도, 어른들이 전혀 이해를 해주지 못해도, 길거리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따가워도 좋았다. 적어도 하루 한 번, 목욕을 마치고 물기를 닦을 때 눈에 닿는 위치에 새겨져 있어 잠시나마 그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리고 되새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만 있다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타투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아팠다. 바늘이 닿는 순간, '아, 이런 걸 시작해버리다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한 통증에 놀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문양의 첫 점이 찍혔고 되돌릴 수 없는 그림이 시작되었으니 그저 참고 견딜 뿐이었다. 바늘이 닿고 잉크가 스며들 때마다 흥건하게 피가 흘러나왔다. 문득 인생에서 또 다른 소중한 존재들을 품에 들이던 과정이 떠올랐다.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어쩌면 이토록 고통스럽게, 피를 흘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소중해지고 애착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념도, 사랑하는 존재도, 소중한 그 무언가도, 배 위에 새겨진 이 작은 장미 그림도.
문신, 타투에 대해 세상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간직할 가치를 담은 그림이라면, 상징이라면, 언어라면. 그리고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기 위해, 잊어서는 안 되는 어떤 가치를 의식적으로 환기하기 위해, 각오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가까운 곳에 수놓아도 좋은 것 아닐까. 순간적인 충동이나 감정에 휩싸여 그럴듯해 보이는 그림을 마구잡이로 그려 넣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설명하고 수긍을 구할 수 있는 신념과 가치의 상징이니까.
이미 떠난 것은 어쩔 수 없다. 떠나보내야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다시 나타나길 기다려야지.
하지만 잊고 마는 것은 온전한 자신의 책임.
어떻게든 돌이켜야 했다. 아파도, 싫은 소리를 듣게 되어도, 피가 흘러도,
잊어서는 안 되는 소중함을 늘 곁에 간직하고 싶었다.
소중한 존재가 있었다
더 이상 곁에는 없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시들지 않는 장미 한 송이를 헌화했다
더 이상 곁에는 없지만
소중한 존재가 있었다
삽화 : Cover . John Poppleton 作 / ⅰ. Francesca Woodman 作 / ⅱ. Gabriel Picart 作 / ⅲ. Pol Ledent 作 / ⅳ. Marco Grassi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