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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늑대 한 마리가 마음속에 살고 있었다.

by WriteWolf


엄밀히 말해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동물 삽화집에서 달리는 늑대의 모습을 베껴낸 그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잭 런던의 어느 소설, 어미가 집을 비운 사이 밖으로 굴러 떨어진 새끼 늑대가 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공격해대는 어미 칠면조를 얼떨결에 죽인, 그 가슴 뛰는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첫 사냥을 계기로 한참 동안 숲을 헤매다 자신의 둥지를 찾아 돌아간 새끼 늑대가 어미 늑대로부터 뜻밖의 위협을 받고, 뒷편에 어른거리는 동생 새끼 늑대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보금자리였던 곳으로부터 쓸쓸히 발걸음을 돌린 순간부터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늑대 한 마리가 마음속에 살기 시작했다.

늑대는 특별한 동물이다. 어느 사냥꾼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에게 있어 늑대보다 훨씬 위험하고 무서운 것은 바로 들개라고. 늑대는 굶주렸을 때에만 사냥을 하지만 들개는 사냥을 하나의 오락으로 여긴다고. 먹지도 않을 약한 동물들의 사체를 여기저기 널브러뜨려 놓는 건 항상 들개들이라고. 들개는 자기들보다 강해 보이는 적을 만나면 숫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어도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바쁘다면서, 늑대들이 무서운 건 아무리 두렵고 강한 적을 만나도 자신이 배가 고픈 한, 또한 먹여 살릴 새끼가 존재하는 한 거리를 두고 잠시 전면전을 피할 뿐 낮이고 밤이고 끝없이 추격해 온다는 점이라고. 굶주림에 적응된 몸이 길게는 한 달에 가까운 추격전을 가능케도 한다고. 새끼 늑대나 둥지를 지키는 어미 늑대, 그리고 사냥감과 혈투를 벌이는 늑대가 아니고서는 늑대를 사냥하거나 추격할 수 있는 동물은 우리 인간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냥꾼의 눈빛에는 낭만과 공포와 추억이 서려 있었다.


마음속에 둥지를 튼 늑대는 항상 굶주려 있었다. 역동적이거나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으면 항상 조용히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원한다는 눈빛이라기보다는 나를 책망하는 듯한, 어쩌면 나의 어떤 움직임을 기다리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가 굶주려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무엇에 굶주려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덕분에 새로운 경험이나 일을 도모할 때마다 잠시 적막을 찾아 조용히 마음속 늑대에게 '이거니? 이거면 됐니?'라는 물음을 던지곤 했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도 아니구나, '로 끝나곤 했지만.



눈을 감고 늑대가 살고 있는 마음속 굴(den)을 들여다보지 않을 때면 늑대는 항상 굴 앞에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쫓아 달려나가지도, 그렇다고 얌전히 엎드려 휴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울부짖거나 짖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머릿속 늑대의 모습이란 항상 이빨을 드러내거나 사냥감을 쫓아 달리는 사나운 이미지들로만 점철되어 있던 까닭에 그 정적인 모습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눈썹 하나 변치 않은 채, 늑대는 마음속에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의 막연함과 매캐함에 답답해진 나는 문득 늑대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눈을 감았다. 그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들여다 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는 자책과 함께. 특별히 먹이를 주거나 쓰다듬어 줄 수는 없어도 가끔씩 들여다 보고 말을 걸어주는 것이 내 안의 특별한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자 예의라고 생각했다.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 굴 앞에도, 굴 안에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놀라지 않았다. 어렴풋이, 그가 달리기 시작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향하는지, 바라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사실은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그가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무언가로 인해 허기가 해소되어 이제야 달릴 기운을 되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약간 아쉬웠지만, 동시에 기뻤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존재는 아름답다. 늑대도 분명 해방감을 느끼겠지만 더욱 큰 안도와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내쪽이었다. 본의 아니게 들어와버린 늑대를 마음속에 기약 없이 가두어 놓아야 한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더불어 답답함을 느꼈다. 울타리를 친 것도, 목에 사슬을 매어둔 것도 아닌데 움직이지 않는 늑대의 그림자는 내게 있어 큰 위안인 동시에 부담이었다. '저기에 저러고 있을 녀석이 아닌데, '



이제부터 나는 마음속에 살던 그 덩치 큰 늑대를 찾아 나설 셈이다. 달리는 동안이 아니라면 분명 어디선가 하늘을 보면서 휴식을 취할 테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커다란 늑대의 실루엣은 지평선에서든 수평선에서든 눈에 띄는 모습일 것이다. 아무런 방향감각 없이 무턱대고 길을 나설 생각은 아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덕인지 눈을 감으면 어느 지평선 근처를 거닐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아지랑이처럼 흐늘대는 상像이긴 하지만 어렴풋한 방향 정도는 잡을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녀석은 늑대였다.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도 분명 어느샌가 흘러들어와 자리 잡은 어떤 동물이나 존재가 있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본다. 다만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 다만 눈길을 주었던 것이 너무 오래되었을 뿐, 곰 한 마리, 연어 한 마리, 노루 한 마리, 솔개 한 마리, 어쩌면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난날 내면의 동반자에 두어 차례 더 신경과 시선을 돌렸던 덕에 오늘 향할 지평선을 얻었다.


'답은 모두 내면에 있다'는 격언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오늘처럼 흐린 날은, 잠시 눈을 감고 마음속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삽화 : Joshua Bronaugh 作 (커버) / ⅰ. Matthew Hasty 作 / ⅱ. Nick Andrew 作 / ⅲ. Andrew Wyeth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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