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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Oct 04. 2015

 ⅲ : 유기동물(Rescued)을 품는다는 것,


 반려동물과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가정에 합류해 오랜 시간을 함께한 존재일 수도 있고, 우여곡절 끝에 여러 손을 거쳐 흘러들어온 존재일 수도 있다. 산책 중에 목줄이 끊어져 길을 잃은 녀석, 훈육에 한계를 느낀 주인이 버린 녀석, 잠깐 문이 열린 틈에 나갔다가 영영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녀석 등 그 사연은 끝이 없다. 그리고 이처럼 비운을 겪은 반동물들을 '유기동물(遺棄動物)'이라 부른다.


 유기(遺棄)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내버리고 돌아보지 않음'이다. 즉 유기동물이란 책임자, 혹은 보호의 의무를 가진 존재로부터 내버려지고 돌아보아지지 않은 존재이다. 우리가 '유기동물'이라 이름 붙인 존재들에 대해 서양에서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여 (어떠한 위험한 환경이나 상황, 혹은 존재로부터) '구조받은(Rescued)' 동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면 우리식 표현에 존재 상황에 대한 보다 정확한 묘사가 담겨있지만, 한편으로는 운 좋게 '구조받은' 듯한 녀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량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냉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다소 아쉬운 구석도 있다.




 몇 해 전부터 매우 긍정적인 사회적 흐름이 눈에 띈다. 바로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유기동물 구호 및 입양 운동이다. 수도 없이 버려지고 내쳐지는 불쌍한 동물들의 사연을 읽다 보면 사정만 면 농장을 하나 차려 수백 마리를 데려다 풀어놓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많다. 많은 분들이 이와 같은 측은지심으로 유기견을 입양해 기르거나 여러 방면으로 구호 활동을 하고 있지만, 유기되는 동의 숫자는 그러한 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웃돌고 있다.


 

아무 생각 없는 제노

내가 품고 있는 말썽꾸러기 시베리안 허스키, 제노에게는 친한 골든 레트리버 친구가 둘 있다. 두 친구 모두 어릴 적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유기견이었다. 지금의 견주는 외국인인데 한국에 와서 한 마리를 생후 4개월 무렵에, 다른 한 마리는 12개월 무렵에 데려왔다고 한다. 둘 모두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고 했다.


 도저히 그렇게 착하고 예쁜 녀석들을 내팽개친 전 주인들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골든 레트리버 두 마리에게 각각 잰더(Xander), 아스가르드(Asgard)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노를 데리고 산책할 때면 종종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반려견들의 경우, 유기견이 겪을 수 있는 '천지신명이 보우하시는' 정도의 행운을 누린 것이다.


동네 덩치들 회합 - 제노 / 잰더 / 아스가르드 / 구이다 (이때 제노는 아직 어렸다. 지금은 리트리버들과 거의 비슷한 크기)




 일반적으로 유기동물들이 맞이하는 운명은 그리 희망적인 것이 아니다. 학대를 자행하는 견주에게 입양되어 더 큰 상처를 안고 다시 보호소로 향하거나, 입양조차 되지 못해 안락사를 당하거나, 공식적인 보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손에 들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행히 예전에 비해 요즘에는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절차와 심사가 매우 까다로워져 좋은 주인의 품에 안기게 되는 사례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유기동물 입양 절차일 뿐 알음알음으로 이루어지는 재입양 등은 여전히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 사회에서 유기동물이 처한 상황들에 관한 내용은 신문 기사나 뉴스로도 여러 차례 보도되어 굳이 더 자세한 소개나 설명이 없어도 어느 정도 인식이 이루어져 있는 편이다. 이번 편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유기동물들이 처한 상황이 아닌, '유기동물을 입양하는 일' 자체에 대한 단상이다. 즉, 유기동물의 보호자가 될 존재들을 향한 내용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유기동물을 품어본 경험이 없는 분들은 이러한 입양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버려진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 품은 마음의 상처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유기(되었던)견을 직접 데려온 적이 있었다. 강아지를 꼭 키우고 싶다는 지인이 있었는데 마침 다른 지인이 새로 데려온 강아지 한 마리가 원래 기르던 반려견과 잘 지내지 못해 새로운 가정을 찾고 있다 하여 중개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다.

첫 주인으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고 비 오는 날 전봇대에 묶여 오들오들 떨고 있는 녀석을 내버려둘 수 없어 데려온 것이라고 했다.


 데려온 녀석은 덩치가 조막만 했지만 방어본능과 공격성이 거의 투견 수준이었다. 발로 차인 적이 많은지 사람이 주위에서 발을 조금만 움직여도 물어뜯으려 들었고, 경계하고 싫어하는 물건들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미 2~3살을 넘겼기에 훈육으로 성격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일반적으로 반려견의 성격은 보통 생후 4~12개월 사이에 형성되어 평생을 간다고 한다).


 문제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던 주인 쪽이었다. 작고 귀여워서 안아주면 새근새근 잠들고 애교 뭉치인 솜털덩어리를 기대했는데 마침 측은한 마음으로 데려온 녀석이 덩치만 작은 맹수였으니. 다행히 새로운 엄마의 무한한 인내와 사랑으로(뒤편에서 흘린 눈물과 핏방울은...... 휴..) 주인에게 마음을 여는 데 걸린 시간이 약 2년이었다.




- 공격적(방어적) 일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소개한 녀석을 데려온 지 3년, 나는 이젠 좀 나아졌겠지 하고 얼마 전에 손을 내밀어 만져주다가 손가락 피부가 죽-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세게 물렸다.


 한 번 생긴 트라우마와 방어본능은 절대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기견의 경우 견주의 실수로 길을 잃거나 어찌저찌 유기된 것이 아닌 이상 학대받다가 버려진 경우가 많아서, 폭행이나 괴롭힘 등에 맞서기 위한 방어본능이 함께 길러진 경우가 많다. 즉, '공격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아가때부터 키운 제노는 공격력이 '0'. 때론 어디가서 물릴까봐 불안하다.

 평소 주변에 반려동물을 강단 있게 훈육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나 길러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강아지에 대해 '분양이냐 입양이냐'를 놓고 고민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경험이 아예 없다면 켄넬에서 잘 훈련된 생후 1년 무렵의 성견을, 경험이 있거나 훈육할 자신과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자견(새끼) 분양을, 경험이 많아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면 유기견을 데려와도 괜찮을 것 같다고.


 나는 제노를 분양받았다. 인연이 닿은 곳이 유기동물 보호소가 아닌 펫샵이었던 점도 있지만 위에서 소개 유기견을 경험하고선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고 유기견 입양에 대해선 어느 정도 마음을 접은 까닭이었다. 그만큼 단단한 각오와 노력, 결심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운이 좋은 경우도 많다. 조금 어린 월령에 재입양거나 천성적으로 크게 방어적이지 않은 녀석들을 입양할 수 있다면 반려견, 견주에게 그보다 더 큰 윈-윈과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 예상외의 금전적 지출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입양받은 지 열흘도 안 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유기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호소나 단체를 통해 공식적인 입양 절차를 밟으면 평균 이상의 건강상태가 보장된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입양일 경우 녀석들의 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데려와 종합 검사를 해보기 전에는 도무지 알 방법이 없다.


 입양을 받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해보니 잠복 고환에 양 눈 백내장, 설상가상으로 잠복고환은 악성 종양으로 변이 하기 시작했다는 결과가 나와 입양을 통해 절약한 분양비의 약 4배 가까운 돈을 치료비로 지출하게 된 사례도 있었다. 이는 다소 극단적인 예이지만 분양비와 초기 접종비를 아끼고자 무턱대고 유기견을 데려왔다가는 더 큰 돈을 지출하게 될 가능성도 있으며, 많은 견주들이 이러한 과정에서 데려온 녀석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재유기하곤 한다. 버려져서 상처받고, 몸은 아프고, 아파서 또다시 버려져 상처받는 비운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째서 이들이 인간의 무책임으로 고통받고 괴로워해야 하는가?




Nature


 상당히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허스키를 기르다 보니 SNS 등에서 허스키를 키우기 시작하는 다른 견주들이 질문을 해오거나 사진을 올리는 모습을 보곤 한다. 대부분 생후 2~3개월 무렵에 허스키 자견을 데려와 기르기 시작하는데, 그중 몇몇이 채 5개월도 기르지 못하고 새로운 주인을 찾는다느니, 다른 곳에 보냈다느니 하는 것이었다. 물론 다들 사정이 있을 것이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허스키의 생후 4개월 무렵부터 7개월 무렵까지는 '마魔의 구간'이라 불릴 정도로 이갈이도 심하고 개춘기도 까다롭다.

 

 그러나 생후 2~3개월 동안은 매일같이 귀엽다면서 사진을 올려대던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4~5개월에 들어서자마자 가구 몇 번 갉고 문틀 한 번 긁어놨다고 한 생명을 어딘가에 내팽개치듯이 보내버리곤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와 희희낙락하는 모습에 열불이 치밀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 반려견은 삶의 일부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비중일지는 모르나, 우리에겐 다른 가족도, 친구도 있다. 종사해야 할 직장이 있으며 누릴 취미나 생활 방식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러나 반려견에게는 우리가 전부다. 밥도, 간식도, 놀이도, 산책도, 잠도, 가족도, 생활도, 어느 하나 우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따라서 반려동물을 유기한다는 것. 이는 주인에게 있어서는 삶의 일부를 버리는 것과 같을지 몰라도 녀석들에게 있어서는 삶의 전부를 잃는 것이다.


 글에 감정을 싣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조금 격해졌다. 하지만 꼭 호소하고 싶다.


유기견이든 자견이든 제발, 부디, 끝까지 보살피겠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해 달라고. 그럴 자신이 없다면 최소한 녀석들이 어딘가 다른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냥 처음부터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감사하겠다고.


반려동물은 엽고 한가로운 시절에 잠시 함께 놀고 버려도 괜찮봉제인형이 아니라고.


아빠, 빨리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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