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이제껏 여러 사진 기술을 동원해 미모가 극대화된 제노의 모습만을 보여왔다. 그래서 적나라한 제노의 민낯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고자 대담하게도 '영상'이라는 제목을 예고했다. 그게 아마 2 주쯤 전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당시 내가 브런치 동영상 업로드 기능에 대해서만 인지하고 있을 뿐, 자신이 동영상을 전혀 다룰 줄 모른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데 있었다.
비록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지극히 초보적인 짤막한 영상을 몇 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제껏 써 온 그 어떤 글보다도 그 과정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시베리안 허스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낸 이 시점,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휴게소 같은 글을 준비하고 싶었다.
'엄마는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 거실에서 제노와 함께 놀아주었다. 제노는 집에 온 지 일 주일만에 아빠가 좋아하던 담요를 독차지했고, 유년기의 대부분을 그 위에서 장난감을 물어뜯으며 보냈다.'
(영상에 등장하는 목줄, 리드줄, 장난감, 담요 - 모두 사망)
'제노는 아빠나 엄마의 눈이 닿는 곳에 누워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던 모양이다. 지나치게 마음이 편한 나머지 장난감을 입에 문 채로 잠이 들었다. 자다가도 잠깐씩 눈을 떠서 엄마나 아빠가 근처에 잘 있나 확인하곤 이내 무거운 눈꺼풀에 몸을 맡겼다.'
(영상에 등장하는 최고 내구도 장난감인 불가사리 장군 - 영상 촬영 이틀 뒤 사망)
'아빠와 엄마가 입을 모아 한밤중의 제노가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밤 10시만 넘어가면 어김없이 푸른 눈을 껌벅거리면서 졸거나 하품을 해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부성애 모성애 다 튀어나오고 낮에 저지른 사고들도 눈 녹듯이 잊힌다. 반면 아침의 제노, 그리고 식사 직후의 제노는 기피 대상 1호다. 그 발랄함이 폭군에 가깝기 때문이다.'
가끔은 텍스트 일색인 글을 읽기 싫을 때가 있다.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끔은 글만 쓰기 싫어지는 때가 있다. 요즘처럼 이미지, 영상 등 미디어 제작이 발달하고 그 공유 기술이 극에 달한 시점에서 글로만 콘텐츠를 작성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이 앞으로 풀어갈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이야기들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지점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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