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꾸다

고요를 꿈꾸다

by WriteWolf


뜻하지 않게도 시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세상에 있었고, 주위를 에워싼 삶이라는 여정은 여간 소란스럽고 번잡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늦은 밤의 적막이란 딜레마였다. 온전히 누리자니 세상으로부터 도태되는 것 같고, 잠을 청하자니 삶에서 줄어만 가는 고요한 공기가 아까웠다. 물론 해가 떠 있는 밝은 시간의 고요라는 것도 존재하지만 이 시대에서 누리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사치였다.


아침 이른 시간 산책을 다녀오는 길. 길거리로 나서기 시작하는 이들의 찌푸린 표정. 그들이 올라타는 지하철, 승용차, 버스 등의 굉음에 휩싸여 숨쉬다 보면 고요 누리는 것이 진정 우리 삶에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 든다.




시끄럽고 화려한 삶, 치열하고 열정 가득한 삶은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잠시 숨을 고르며 세상을 관조할 여유를 가지는 삶은 더욱 아름답다.


소란스러운 하루하루가 타자他者를 향한 것이라면 고요의 시간은 온전히 자기自己를 위한 것이기에. 일부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균형 속에 공존해야 마땅한 두 필의 말인 까닭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슈베르트의 '마왕'이라는 곡에서처럼 삶이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체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정신없이 쫓기는 동안 품속의 아이, 혹은 내면의 순수는 우리 자신을 향해 경고한다. '지금 우리는 마왕에게 쫓기고 있다'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소중히 품고 있던 아이는 이미 숨이 다하고 만 뒤였다는 '마왕'의 줄거리처럼, 숨이 넘어가던 아이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이지 않았던 스스로를 책망하며 비통에 잠기고 싶지는 않았다.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들, 불만 가득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 숨 가쁘게 자신을 향한 채찍질에 여념이 없는 이들.체를 알 수 없는 이 추격전이 끝났을 때,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품에 안고 출발했던 가치는 과연 온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까.


이 삶의 종점에서, 품속 가장 소중한 마지막 1 인치는 과연 여전히 빛나고 있을까.





고요에는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 침묵과는 달리 의도를 띄지 않은 자연스러운 적막이며, 굳이 홀로 누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한가로운 호수의 잔잔한 수면을 바라볼 때, 혼자보다는 생각과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와 함께할 때 더욱 큰 평화와 위안을 얻을 수 있듯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에도 억지 소통에 힘을 쏟고 시간을 낭비하는 일 없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관조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으, 인연으도 크나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수백 명, 수만 명이 한 곳에 모여 필요 이상의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아름다운 풍경을, 혹은 이른 아침이나 저녁 무렵의 고요를 만끽하는 상상을 해 본다. 수천, 수만의 들숨과 날숨이 뒤섞이고 공존하지만 어느 하나 지저귀는 새소리와 흐르는 물소리를 방해하지 않는, 고요를 누리기 위한 거대한 암묵의 약속. 고요함을 위해 모여든다는 상상만으로도 부서지는 파도가 아닌 거대한 조류의 일렁임이 느껴지는 것 같아 온몸에 전율이 든다.


두 명. 세 명조차 시끄럽기 위해 모이는 세상이다. 하물며 천 명, 만 명의 모임이란 누구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한 회합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지쳤다. 소리에 지치고, 더 큰 소리에 지친다. 자기가 옳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귀 기울이고 조용히 공감의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고요라는 가치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쁘게고 숨 가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샌가 마음과 정신에 마치 좀 먹은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것 다음엔 저것, 저것 다음엔 또 다른 무언가를 반복해야 하는 삶 속에서 모든 이음새를 완벽하게 메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요란, 끝없이 회전하는 삶 속에서 벌어진 틈새를 메우고 기워나가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한껏 액셀레이터 페달을 밟은 다음 발을 떼고 흘러감을 즐기는 기분이랄까.



밤바다의 고요함도, 숲 속의 정적도, 때로는 차를 세워둔 지하주차장의 적도 좋다. 고요함이란 그 자체의 성격상 절대적인 정의를 우기지 않는다.


따라서 무작정 잠잠하거나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닌,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워 마음속 수면에 잔잔한 파문만이 이는 상태를 고요라 정의하고 싶다.





때로는 온갖 빛으로 수 놓인 야경을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안도감과 평정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중정動中靜이라는 말처럼 때때로 고요는 의외의 장소에서 떠오르기도 하는 법이다.

다만 우리는 지나치게 현대의 굉음과 일상적인 소음(white noise)에 익숙해져 있어 '이것이 고요한 상태구나'하는 자각을 느끼기 위해 다소의 정적을 필요로 할 따름이다.




고요한 시간을 누리기 위해 시끄러운 시간을 희생하려 애쓰고 있다. 물론 균형적이지 못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고요의 소중함을 깨닫기까지 희생시키고 만, 두 번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고요했던 시간들이 너무 많 까닭이다.


더 이상 남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 마왕에 쫓기고 싶지 않다. 급히 달리던 잠시 말을 멈추고, 품안의 소중한 가치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며, 고요를 찾아 말머리를 돌린다. 그곳에서는 같은 마음을 품은 이들과 만나게 되리란 기대를 품고.






삽화 : Cover . Alexander Volkov 作 / ⅰ. Moritz von Schwind 作 / ⅱ. Akos Birkas 作 / ⅲ. Vladimir Potapov 作 / ⅳ. George Dmitriev 作 / ⅴ. Zachary Johnson / ⅵ. Andrew Wy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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