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바구니 채로 눈앞에 놓여있지는 않았다. 어느 모퉁이나 벽 틈새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민 채, 지나가는 나그네 앞에 등장할 순간만을 가늠했다. 운명이란 항상 그랬다. 찾을 때면 가혹할 정도로 숨었고, 피하려 할 때면 해일처럼 밀려와 휩쓸었다.
공교롭다는 말이 있다. '솜씨나 꾀 따위가 재치가 있고 교묘하다'는 정의를 가지지만, 실제로 문장이나 일상생활에서 공교롭다는 표현이 쓰였을 때 이 표현이 과연 어떤 상황을 뜻하는 것인지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공교로운 상황, 공교로운 입장, 공교로운 사건 - 하나같이 무어라 절대적으로 정의하기 힘든, 약간의 신비감마저 느껴지는 형용사.
솜씨가 재치가 있고 교묘하다는 표현은 상황, 입장, 사건을 설명하지만 어쩐지 깔끔하게 나누어 떨어지지는 않는다.
공교롭다는 표현에는 항상 알 수 없는 배후가 숨어있다. 공교로운 상황과 입장을 만들어 낸 어떤 존재, 혹은 그 힘에 대한 암시가 항상 숨죽인 채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서구에서는 이를 두고 'coincidental'이라 표현한다. 이를 두고 우리는 또다시 '우연적'이라 해석한다. 수식적 개념에서라면 'coincidental = 우연적 = 공교롭다'와 같은 공식이 성립하겠지만 공교롭다는 말과 우연적이라는 표현은 어감은 물론이거니와 근본적인 태생 자체가 다르다. 마치 신의 존재를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관점처럼.
우리는 우연이라는 단어 속에서 사건이나 상황이 발생하기까지의 비논리성과 더불어 인과 관계를 벗어난 어떤 변칙성을 찾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나 숨은 인과적 흐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우선 배제한 다음, 결과만 놓고 '불규칙한 우연이었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교롭다는 표현에는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운명의 얄궂음에 대한 탄식과 동경이 함께 담겨있다. 우연이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그에 대한 감상을 그저 자연스러운 무작위로 단정 짓는다면, 공교로움은 삶 속 사소함 하나하나까지도 어떠한 의미가 담긴, 보다 거대한 그림을 연상한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거나 반씩이나 남았다는 류의 관점 차이를 예로 들어서는 공교로움과 우연을 구분 짓기 어렵다. 둘 사이에는 관점 이외에 더욱 뚜렷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 바로 '희망'이다.
우연적인 일을 겪을 때, 삶의 깊은 깨달음을 얻거나 두근거리는 흥분을 느끼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 일어난 일이 '우연적'이라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반면 공교롭게 느껴지는 순간은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삶을 한 차례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더불어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어렴풋한 신비감과 더불어 이 세상이 마치 촘촘하게 잘 짜인 직물과도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굳이 피부로 느낀 뒤에야 납득이 가능해진다. '우연으로 가득한 날들', 그리고 '공교로움으로 가득한 날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서로 다른 것처럼 주절주절 늘어놓았지만 공교롭게도 그렇지만은 않다. 우연은 늘 공교로움으로 이어지는 발단인 까닭이다. 한 번의 우연, 두 번, 세 번, 그렇게 무작위적인 사건들이 실은 마치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연속으로부터 피어나는 느낌, 뜻하지 않은 작은 놀라움의 흐름을 두고 비로소 '공교로움'이라 일컫는 것이다. 마치 꽃잎 하나씩에 집중하여 들여다보다가 잠시 거리를 두고 지켜보니 한 송이 완연한 꽃이더라는 자각처럼.
어쩌면 공교로움이란, 연속되는 우연을 접하면서 '우연이 실제로는 우연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깨닫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많은 일들은 우연찮게 일어나지만, 그 모든 것이 실로 우연적인 발생일 뿐이라면 이 삶은 정말이지 감동이나 희망 따위 깃들지 않은, 메마른 인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운명이라 믿거나 혹은 자유 의지라 믿는 등의 정신적 사치를 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잠깐이라도 오늘 아침에 스쳐간 사람의 옷깃 속에, 어제 쥐었던 커피잔에, 내일 우연히 오르게 될 지하철에 그저 우연을 넘어선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 믿어볼 수 있다면.
눈에 보이는 일반적인 잔혹 안에도 어떤 복선과도 같은 스토리가 숨겨져 있다고 믿을 수 있다면, 다소나마 이 세상이 즐겁게 살아볼 법한 곳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언젠가 이 모든 날들이 공교롭게 느껴질 그 공터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삽화 : Cover . Liu Maoshan / ⅰ. Roy Tobora 作 / ⅱ. Cristoforo Scorpiniti 作 / ⅲ. Thomas Kinkade 作 / ⅳ. Silvia Moccia 作 / ⅴ. Vladimir Sorin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