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꾸다

천둥을 꿈꾸다

by WriteWolf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소리가 울리는 날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흐릿한 하늘이 번쩍거리고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들려오는 순간. 마치 긴장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낙뢰가 땅에 닿고, 하늘에서 목소리가 울려오기 직전까지의 긴장감이 좋았다.


얼마나 크게 울릴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울려올까.

이미 지나간 것은 아닐까?


마음이 가라앉을 때면 늘 천둥을 떠올렸다. 번개나 낙뢰라는 단어와는 달리 천둥이라는 단어는 공간감을 지니고 있었다. 내게 있어 천둥은 피하거나 두려워 할 현상이 아닌, 우리가 한곳에 존재함을 증명하는 현상이었다.


바쁜 일상, 가파른 현실에서 살아남다 보면 주위를 둘러싼 환경 총합이 곧 세계관이 되어버리곤 한다. 작업실의 푸른 벽지, 손때가 묻은 키보드, 익숙한 엘리베이터와 부엌, 편안함을 느끼는 침대, 때로는 늘 이용하는 지하철 역 7-3번 플랫폼 정도가 어느덧 삶에서 돌고 도는 트랙이 되고 마는 것. 평온과 안정은 분명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만 맴돌다가, 혹은 적당히 위치를 바꾸는 트랙을 쫓다가 시간이 되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삶은 원치 않았다.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멀리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들린다. 흐리고 나른한 오후의 피로감에 잠겨, 아무런 동기나 기력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렇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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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둔 창틈으로 우레와 같은 소리가 흘러들어와 뒷골을 강타했다. 정말 우레소리였다. 바로 근처 건물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순간적이지만 "정신 차려!", 아니면 "왁!"하고, 하늘 위의 누군가가 경종을 울린 느낌이었다.


나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비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곧 당도할 기색이 하늘에 역력했다. 지붕이 가까스로 머리 위를 덮은 공간을 찾아 천둥과 천둥소리를 만끽하기로 결심했다. 천둥소리를 표현하는 우르릉 쾅! 같은 의성어를 적기엔 어쩐지 쑥스럽지만, 울려 퍼지는 대기의 공명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렇게 나는 비가 내리기까지의 짤막한 소절.

천둥이 주인공인 바로 그 짧은 시간을 두근거림 속에 보낼 수 있었다.




천둥이 좋았다.


알고 있는 세계, 이곳을 둘러싼 일상적인 환경이 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마치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계도 분명히 존재한단다. 그곳의 소리를 들려줄게.' 우리보다 약간 덩치가 크고 더 똑똑한 누군가가 저 위에서 그리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면 이 관 안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고심하며 뒤척뒤척거리는데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관 뚜껑을 열어젖히며, "이봐, 그 비좁은 곳에서 혼자 뭘 낑낑대는 거야? 가끔은 나와서 바깥바람도 좀 쐬어줘야지!"라며 손을 내미는 기분이었다.




늘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땅 위의 생명체들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햇빛과 빗방울이다. 햇빛은 공기처럼 늘 주어지는 까닭에 따로 감사함을 표현하기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반면 빗방울이 땅과 우리를 적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그래도 세상은 우리가 계속해 살아가길 바라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우리를 버린 건 아니구나.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천둥이 치는 날을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웅대함 속에서 드는 경외감이 인간에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눈에 비치는 모든 것 이상의 현상과 세계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세상을 다시금 예측 불가능하고 변덕스러운 곳으로 만드는 동시에, 타성에 젖은 정신을 번쩍 깨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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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뢰를 지켜보다가 문득, 어쩌면 번개야말로 하늘과 이어진 가장 확실한 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찰나의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분명 존재하지만 도저히 이를 수는 없는 길.





어느 샌가 천둥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 흔치는 않지만 언젠가 올 것임은 분명하다.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이에게, '언제'라는 약속이 주어진다면 세상은 정말이지 재미없는 곳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만 '분명' 찾아온다는 약속이 있다면, 우리는 또다시 미소 지으며 내일의 아침해를, 어쩌면 천둥을 기다릴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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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 bolt the mighty oak I struck."

"강건한 참나무를 향하는 한 줄기 천둥으로, 나는 내리쳤다."





삽화 : Cover . Steve Hanks 作 / ⅰ. Steve Hanks 作 / ⅱ. Jacek Yerka 作 / ⅲ. Jeremy Mann 作 / ⅳ. David Jay Spyker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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