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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Nov 11. 2016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특별편ⅰ: 함께 달린다는 것


  졸린 눈을 비빈다. 침대 옆으로 던져둔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눈꺼풀을 굳게 닫은 채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 양치질을 한다. 들어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는 두 눈꺼풀의 점착력은 늘 인상적이다. 


 닫혀 있는 화장실 문 밖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과 함께 문에 무언가 스치는 듯한 소리가 난다. 


'왔구나.'





 억지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그토록 싫을 수 없었다. 내키지 않는 일을 묵묵하게 해내는 능력을 나타내는 수치가 있다면 나는 아마 '0'을 기록할 법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마다 어떤 일을 반쯤은 '억지로' 해내고 있다. 바로 저 문 반대편에 기대고 누워 내가 나오길 기다리는 어떤 생명체를 위한 일을..


그 어떤 생명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평일이나 휴일이나 항상 정해진 시간에 이 야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한다는 건 큰 귀찮음이자 고역이다. 언젠가부터 잔디 위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재미를 알아버린 이후로 실내에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고 모든 걸 참고 또 참는다. 무시하고 내버려두면 방광염 생기고 이상한 곳에 똥덩어리를 놓아두는 등의 난리가 날 것이 자명하기에, 그래도 일단 주인이라는 위치에 있으니 데려온 책임은 져야 한다며 또 다리 넷 달린 쌀 한 가마니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 


죽기보다 더 나가기 싫었던 어느 비오는 날,


 귀찮다는 점과 쉴 수 있는 날이 없다는 걸 제외하면 좋은 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선 살이 찔 틈이 없다. 빠짐없이 하루에 7~8킬로미터를 빠르게 걷거나 뛰는데 어지간한 폭식이나 고칼로리 식단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몸의 부피가 늘어날 수가 없다. 둘째로 실내에서 위생적으로 불결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대형견을 위해 준비했던 배변판도, 할인행사 때 박스로 구매해 둔 배변패드도 전부 반려견을 기르는 지인들에게 나누어 줘버렸다. 쓸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집에서 나던 강아지 배설물 냄새도 아예 없어졌다. 셋째로 운동만 잘 시켜주면 집에서는 정말 얌전하고 얌전하고 또 얌전해서 오히려 다가가서 시비를 걸거나 장난을 치게 되는 순박견이 된다. 




 모든 걸 차치하고, 만일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최적의 날이라면?


시베리안 허스키라는 생명체와 함께하는 산책은 그야말로 [천상의 외출]이 된다. 


어느 주말 오전 7시 - 그곳엔 우리밖에 없었다. 



 영상을 올리고 싶었지만 일단 녀석을 데리고 뛰면서 촬영한 기록물을 보니 더 정신이 없어질 정도로 흔들려서 깔끔하게 마음을 접었다. 


날도 좋아서 아빠는 신났는데 자기는 너무 뛰어서 지쳤으니 집에 가잔다. 
저 무시무시한 얼굴로 자꾸 뽀뽀를 하려 든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아무리 늦거나 이른 시간이어도 나는 어떤 공원에서도 제노를 풀어줄 수가 없다. 녀석이 공격적이거나 누군가에게 달려들기 때문이 아니다. 허스키들은 지나치게 뛰는 것을 좋아해서 잠깐 새나 고양이 등에 흥미를 가져 달려갔다가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허스키 양육 전문 서적에서도 수 차례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절대로 울타리로 사방이 가로막힌 공간이 아니라면 허스키의 목줄을 풀어줘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기쁨을 만끽하면서 달리다가 이제 주인에게 돌아가야지, 하는 순간 녀석들이 뒤를 돌아보면 이미 몇 킬로나 달리고 난 다음이다. 돌아가는 길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끔 우리 허스키는 달라요, 하고 풀어주는 분들도 있다. 물론 우리 제노도 대체로 내 주위를 벗어나지 않고 부르면 곧잘 돌아온다. 하지만 중대형견종중에 가장 빈번하게 실종되고 또 나이를 먹어서도 실종되는 견종이 바로 허스키이며,  단 1%의 확률이라고 하더라도 백 번 풀어주면 그중 한 번은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아닌가. 나는 그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견주일 뿐이다. 대신 가끔 교외로 데리고 가서 넓은 울타리가 있는 곳에서 맘껏 다른 개들과 뛰놀게 해준다. 


 



 제노의 외출이 예전과 달라진 점은 더 이상 목줄이 아닌 하네스를 착용하고 운동이나 산책을 한다는 것. 썰매견이다 보니 워낙에 목이나 척추가 튼튼하지만 그만큼 힘이 좋아 목줄만으로 통제하려다가는 장기적으로 보아 목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슴과 몸통으로 장력을 통한 통제력이 분산되도록 하네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제노 이야기를 적다 보니 가볍게 쓰려던 특별편의 내용이 자꾸만 길어진다. 


그러니 오랜만의 인사는 여기서 끝!


하네스 설명서도 안 읽은 아빠 탓에 거꾸로 착용한 채 상당히 불편하게 강변을 산책한 제노제노
목욕하러 가느라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태웠는데 뭐가 이렇게 큰거냐
자기 자리에서 코오- 잠든 우리 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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